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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의 풍경
산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아픔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블로그기자단 기장군홍보단 기장군민필진 한국방송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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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지항-지리망산-불모산-달바위-가마봉-옥녀봉-금평항

사량도 산행이 잡힌 3월 12일은 날씨도 쾌청하니 산뜻했다.

가오치항에서 금평항까지 배삯은 단체발행이라 1인 6000원이었다.

사량도 금평항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내지항쪽으로 향했다.

우리는 지리망산에서 옥녀봉방향을 산을 타기로 했다.

인원이 많아서 속도가 느리다. 우리산행팀만 온게 아니고 진주, 인천, 울산등지에서

온 산행팀이 어우러지다보니 그렇다.

사량도 산행은 거의다 돌산, 암벽산행이기 때문에 스틱 사용이 거의 소용이 없는 곳이기도 하다.

스틱은 베낭에 꽂은채로 산행을 하는데, 앞서는 사람들마다 스틱 사용이 서툴러서

자꾸 스틱 뾰족한 끝을 뒷사람 눈앞으로 뻗어서 걷는내내 움찔 움찔 하게 만든다.

안전에 신경써야 하는데, 스틱을 주체를 못하는 모양새다.

달바위를 지나서 옥녀봉쪽으로 향하는 길의 조망은 탁 트여서 시원하다.

봄맞이 산행지로 사랑받는 사량도는 이런 조망때문에 선택되는 곳이기도 하다.

모처럼 날씨도 맑고 시야가 시원하니 더욱 좋다.

계단이 가파르게 설치된곳에 이르면 완전 병목 현상이다.

이런곳, 풍경이도 참 무서워 했었는데, 이젠 제법 의젓하게 걷는다(속으론 쫄아 죽겠다.)

기다려서 걷기를 반복하지만, 사량도 산행은 계속 시야가 열려 있기 때문에 갑갑함은 없다.

조급한 마음이 드는것은 배 시간 때문이지만, 산행 선두이기 때문에 그렇게 서두를 필요는 없다.

달바위에 넓은곳이 있어서 식사를 하고 가자했는데, 이르다고 지나쳐서 결국은

돌산에서 좁은데 자리를 잡다보니 전체 모여 먹진 못했다.

사량도에 첫 산행 올때가 생각 난다.

왠만한 암벽은 우회로를 택해서 혼자걷고 옥녀봉 오르며 얼마 부들 부들 떨었었던지....

정말 기다시피 하던 산행, 얼마나 긴장하고 무서웠던지 다리가 후들거려서 걸음도 안걸어 지던때가 있었다.

산행은 자꾸하다보면 늘기 마련, 산에서 십년쯤 구르다 보니 요령도 많이 늘었다.

지금은 출렁다리가 설치되어 두 봉이 연결되어 있으니 그나마 수월해 졌다.

모처럼 봄맞이 산행 사량도를 찾아서 시원하게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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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도여행 두번째 와인 터널을 갔습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와인한잔 못한것이 못내 아쉬운 여행, 역시 청도 와인 터널 여행은 밤에 와야 제맛일듯 합니다.

그래야 뒤쪽으로 펼쳐진 불꽃 야경을 볼 수 있을테니 말입니다.

청도 와인터널 사진들이 예쁘게 올라와서 늘 부러워서 가보고 싶었습니다.

드디어 일정에 청도 와인터널 여행이 잡혀 있어서 신나게 출발해 봅니다.

청도가 역시 반시가 유명하긴 유명한가봅니다.

와인터널 가기전 주차장에서부터 걸어 올라가는데 양쪽으로 늘어선 간이 판매대에는 감말랭이나 감식초를 파는

상인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청도 감 와인 터널은 일제가 1896년 착공하여 1904년 완공한 구 남성현 철도터널로 길이 1,015m 폭 4.5m, 높이  5.3m 규모입니다.

1905년부터 경부선의 증기 기관차를 운행하였으나 경사가 급하고 운행거리가 멀어

 1937년 현 남성현 상행선 터널이 개통되면서 사용이 중지되었다고 해요.

이 터널은 직육면체의 화강암과 적벽돌을 3겹의 아치형으로 조적하여 건설하여

 11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내부상태가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연중 온도 15도에서 16도 습도 60~70%로 와인숙성을 위한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

2006년 2월 말 부터 청도와인(주)에서 감와인 숙성고와 시음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대요....시음, 못해봐서 아쉽네요.

요즘 젊은사람들의 데이트장소로도 각광받고 있는 청도 와인터널, 연인과 함께하는 여행지로 좋겠네요.

어찌됐든 가보고 싶은 여행지를 들러봐서 만족합니다.

청도여행 가볼만한곳, 청도와인터널은 밤에 가는걸로!

청도 와인터널 위쪽으로  대적사도 있으니, 꼭한번 들러보세요. 걸어가시면 10분내에 갈 수 있습니다.

     주의: 주차장 입구의 상인들은 좀 거친분이 계셨어요. 와인터널로 올라갈때 감 말랭이 맛도 안봤어요. 와인터널에서 내려오다가

위쪽에서 사가지고 내려오는 저를 보더니, "저봐라 저봐! 맛은 여기서 봐 놓고 저 위에서 사온다"면서 대놓고 면박을 주더군요.

아무이유없이 욕을 먹을 순 없잖아요?

" 저, 거기서 맛 안 봤거든요!" 어찌됐든 이곳을 방문하면서 아무곳에서라도 청도의 감말랭이나 감식초를

여행객들이 사가면 좋은것 아닌가?

이렇게 여행객 인상찌푸리게 해야만 하는가? 이런 작은 언행들이  이 곳의 인상을 나쁘게  하는 요인이 될텐데,

다른 여행객들이 마음상하는일 없으면 좋겠어요.

 

 

 

 

 

 

 

 

 

 

 

 

 

 

 

 

 

 

 

 

posted by 산위의 풍경

 이제 봄기운이 사방으로  퍼지는듯 합니다.

매화소식이 반가운 요즘이다보니, 문득 문득 어디 나들이 갈까 하는 설레는 마음이 듭니다.

이번엔 청도와 대구방향으로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 답사가 이어집니다.

그래서 오늘 이곳 청도 읍성과 석빙고를 가보게 되었습니다.

청도 읍성은 고려시대 때 석성과 토성을 혼합해서 쌓았던 것을 조선 선조 23년(1590년)청도 군수 이은휘가 착공,

2년만인 선조 25년에 완공했다고 하네요.

 석빙고는 조선 숙종39년(1713년)축조되었으며 축조연대가 가장 오래된 석빙고랍니다.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 답사팀에서 나눠준 자료를 참고로 돌아 봅니다.

석빙고는 1963년1월21일 보물 제32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빙실의 크기는 길이 14.75m, 넓이 5m ,홍예높이 4.4m 이고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고 해요.

아, 옛날 냉장고 석빙고를 이렇게 마주합니다.

겨울철 강물이 얼면, 얼음을 깨서 저장했겠지요. 무더운 여름날 얼음 한조각이면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시원함을 느꼈겠지만, 일반 서민은 꿈도 못꿀 얼음이었겠네요.

지금이야 흔하디 흔한 얼음, 그때는 보물다루듯 했을것 같아요.

2012년도에 영화배우 차태현이 출연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얼음을 네모나게 잘라서 새끼줄로 엮어 옮기는 장면이 떠오르네요.

청도여행, 하면 떠오르는곳, 청도 와인터널도 있지만 우선 이곳 석빙고와 청도 읍성, 그리고 청도향교까지 둘러보신 다음

와인 터널로 가시면 되겠네요. ^^

그럼 오늘도 즐겁고 편안한 여행하세요.

 

고마청은 민간의 말을 삯을 주고 징발하는 일을 맡아보는 관아이다. 조선 숙종 때 고마법의 실시로 사신이나 수령 등 지방관의 교체와 영송에 따른 제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청도관련 고문헌에 고마청이 최초 기록된 것은 영조 년간에 편찬된 [여지도서](창고)조이다. 이후 1895년 [청도읍지]에 고마청의 위치가 동문안에 있으며 현감 조원붕이 신·구관 환송비용으로 준비된 녹봉을 줄여 세웠고 수기와 현판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문헌 기록을 토대로 청도 읍성 봉원사업의 일환으로 2013년 복원하였다.

 

 

청도 읍성 부분적으로 복원되어 있습니다.

청도 선정비군

선정비는 선정을 베푼 벼슬아치를 표창하고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이곳 선정비군의 비석들은 읍성 외곽 서상리, 동천리, 남성현 등 주요도로변에 세워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비석이 있던 주벼 도로가 확장되면서 발견된 비석들을 도주관으로 옮겨 보관해오다 2008년 청도읍성 동문지 주변으로 이전한 것이다. 시대는 1675년부터 1904년까지 조선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관찰사 2기, 군수 25기, 찰방3기로 모두 30기이다.

 

 

청도읍성에서 가까운곳에 청도 향교가 있어요. 이쪽으로 걸어가면 7~8분정도 소요

답사 팀들이 석빙고를 둘러보고 있습니다.

 

 

 

 

 

아치형으로 돌을 두르고 그위에 상판돌을 놓은다음, 그위에 흙을 덮어 석빙고의 온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석빙고 내부가 보인다. 약간 기울어 물이 빠져 나가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위험하다고 아래로 내려가지 말라고 합니다.

아치형으로

 

 

 

 

 

 

 

posted by 산위의 풍경

대구 국립 박물관을 갔더니 국보와 보물이 여러점 있는 중요한 박물관이군요.

전시실은 고대 문화실, 중세문화실, 섬유복식실이 있으며, 야외 전시품도 있습니다.

 국립 대구 박물관에 가면 해설사가 이어폰을 다 나눠 주더라구요. 주파수를 맞추면 해설사의 목소리가 잘 들립니다.

해설사를 따라서 전시물을 보며 해설을 들으니까 좀더 의미 있는 박물관 여행이 되었습니다.

박물관 어느곳이나 있는 전시작품 말고, 특별히 보물이나 국보가 여러점 있으니 더욱 신경써서 보시면 좋겠습니다.

특히 국보 제 182,183,184 금동 삼존불은 귀한 전시물이예요.

또 송림사 오층 전탑 사리갖춤도 (보물 제 325호), 사자(보물제202호),용머리(보물제 1410호)이거는 우리나라에 딱 두점 있는것이라니 희소가치가 더욱 커 보입니다.

또 섬유도시 대구답게 박물관에 여러 복식 전시물이 있는데, 우리나라 의복구조와 발달, 오방색이 왜 있는지 자세히 알게 됩니다.

섬유복식실에 들어가면서 오방색 염색천을 보면서 젊은 엄마들이 " 아고, 천연염색해놨다 그쟈? 예쁘네" 하면서 지나간다고 해요.

오방색은 음양 오행에 기인해서 염색을 하는것이랍니다.

고대 시대부터, 중세시대까지의 전시물들은 여러점 있습니다만, 그외것들은 다른 박물관에서도 자주 보시는 것이니까,

그것보다는 귀한 보기 힘든 전시물들을 우선적으로 보시길 권해요.

그럼 대구여행때, 꼭 한번 들러보세요. 대구 국립박물관

국립대구박물관

관람시간

평일: 09:00~18:00

토요일/공휴일:09:00~19:00

토요야간개장(09:00~21:00)-4월부터 10월중 매월 토요일

문화가 있는날 (9:00~21:00)-매월 마지막 수요일

*관람종료시간 30분 전까지 입장할 수 있습니다.

휴관일

매년 1월1일, 매주 월요일입니다.

▶전시 해설안내

오전 10시, 11시

오후1시, 2시,3시,4시

 

국보제183호, 대좌까지 같이 있는 관음 보살상이라서 가치가 더욱 높아 해외에 전시도 자주 나간답니다.

 

용머리 (보물 제1410호) 통일신라시대 :당간지주 윗부분 장식으로 여의주 뒤쪽으로 도르래가 있어 실용성을 갖췄다고 합니다.

지상20m위에 장식되었을것으로 추정된다 하네요.

 

 

국보 제182호 신라시대

사리함, 가운데 초록색으로 보이는 유리는 그옛날 페르시아에서 수입한 것이고 그 안에 유곽에 사리가 들어 있었답니다. ^^

송림사 오층전탑 사리갖춤(보물 제325호)-통일신라시대

 

 

 

청자상감 국화무늬 합(이것도 사리함이래요~)

사자 (보물 제202호)통일신라시대 (의성 관덕동)

 

오방색, 음양오행을 나타내는 색.

 

 

 오족도(황제는 칠족도를 수 놓는다고 해요) 임금은 하늘이라 원형을 넣고 신하는 땅을 의미해서 흉배가 네모였대요.

적의본(꿩적사를 쓴다고 해요. 꿩 문양과 꽃무의 보이시죠? 오얏꽃이라고 합니다.)

 

묘족의 복식

행사 대례복(여성)

여자들은 꼭 한번 입으시죠? 결혼할때 폐백복으로~

아기돐복. 옛날엔 돐되기 전엔 흰색옷만 입히다가 돐이 되면, 이렇게 오방색을 넣어 옷을 지어 입혔대요. ^^

앵무복, 암행어사 출또요~~~~~~~할때도 이런옷을 입지요?

겨상도 남자가 무뚝뚝하다는디, 요렇게 자상한 편지가 전해진다네요.

위에는 원본, 아래 흰종이는 위의원본을 다시 써 놓은 것이래요.

 

 

 

 

 

삼층석탑,(고려시대 10세기)

 

토기류와 주먹도끼등 고대 문화실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빗살무늬 토기-신석기

 

 태양처럼 생긴 토기는 의식용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네요.

 

 

호랑이모양 허리띠고리, 말모양 허리띠 고리(원삼국시대)

 

 

 

 

 

 

 

 

 

 

 

 

 

나무모양 금동관

 

 

반가사유상

국보 제184호-신라시대(국보 제 182,183호와 나란히 전시되어 있는 금동삼존불)

 

관음보살(신라7세기)-조형미와 예술미가 있는 보물이라 세계전시를 자주나간답니다.

밑의 대좌까지 같이 남아 있기 때문에 더욱 가치가 있는 보물이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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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의 윤증고택(명재고택은) 실재로 윤증선생이 살지 않은것으로 추정됩니다.

윤증선생이 돌아가시기 3년전 지어졌으며 그의 제자들이 윤증선생에게 존경의 의미로 지어드린 고택이라고 합니다.

윤증고택 바로옆에는 노성향교가 있기 때문에 이곳 마을이름이 교촌입니다.

고택 전면에 사랑채가 있고 사랑채 왼쪽으로 안채로 들어가는 대문이 있고 그 대문앞에 향나무로 둘러진 우물이 있습니다.

안채에서 왼쪽으로 돌면 고방이 있는데, 안채의 지붕과 고방의 지붕이 살짝 어긋나듯 비켜 건물이 들어섰는데,

해설사의 말에 따르면 여름의 햇볕은 막고 겨울에 해가 최대한 깊숙히 들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지어진

조상의 지혜가 엿보이는 건물의 배치라고 합니다.

자연석을 그대로 살려 건축한 한옥의 미를 잘 살렸습니다.

그리고 유명인이 찾아와서 가장 탐을 내었다는 장독대, 하루종일 햇볕이 들게 건물 뒤쪽 높게 자리한 장독대가 정갈하니 놓여 있습니다.

안채 오른쪽으로는 사당이 있습니다. 건물 밖으로는 셀수 없이 많은 장독이 있는데, 윤증고택을 대표하는 아름다움이 아닌가 싶습니다.

실재 장을 담은 날이면 인근 주변의 사람들이 도우러 왔었답니다.

300년 약장의 비밀은 고택앞 향나무가 우거진 우물에서 찾을 수 있다는데요.

필자가 주부라서 그런지 이런 설명에 귀가 솔깃 합니다.

원래 향나무의 뿌리가 있는 우물의 물은 불순물을 제거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이 우물물로 장을 담그면 장맛이 좋고 변하지 않았다고 해설사가 설명해주더라구요.

지금도 윤증선생의 후손이 살고 계시기 때문에 안채를 잘 개방하지 않는다는데

운좋게도 필자가 갔던날 개방해주셔서 곳곳을 구경하였습니다.

역시 집은 사람과 함께 해야 노쇄하지 않는것 같습니다.

300년된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정갈하고 잘 보존되어 집이 생기가 있어 보여서 좋았습니다.

어디 유명하다는 고택을 가보면 대게는 비어 있거나 가끔들러 관리만 하는곳들이 많은데

그런곳은 집이 뭔가 모르게 온기가, 생기가 없어 보였거든요.

사람의 체온이 느껴지는 윤증고택이 그래서 더 정이 가는가 봅니다.

즐비하게 놓여진 장독이 아름다운 윤증고택이었습니다.

한평생 학자로 살다가신 윤증선생이 제자들이 어쩌면 선생을 닮게 집을 지어 드린듯 싶습니다.

 

 

조선시대 양반가옥의 전형미를 돋보이게 하는 윤증고택앞 연못

 

 

 

 

 

 

 

 

 

 

 

 

 

 

300년 약간장의 비밀, 바로 향나무 뿌리가 있는 우물. 명재고택 우물물입니다.

한옥과 어우러진 장독이 그림같은곳, 명재고택의 아름다움입니다.

 

 

 

 

 

논산 명재고택(구. 윤증선생 고택)

중요민속문화재 제 190호

소재지 충남 논산시 노성면 노성산성길 50(구 노성면 교촌리306)

시대:조선시대

 조선 숙종때의 학자인 명재 윤증(1629~1714)선생의 고택이다. 고택을 향하여 왼쪽에 장방형의 연못이 있고, 중앙 부분에는 샘이 대지보다 낮게 자리하고 있다.

안채는 평면 (멀경)자 형으로 높지 않은 기단위에 사랑마다오가 바깥마당을 주변에 두었꼬, 안채의 남쪽에는 행랑채가 위치하고 있으며 전체 구조는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안채의 오른쪽 뒤편에는 사당이, 앞에는 사랑채가 위치하고 있다. 대문의 5칸과 행랑채 일부는 후대에 훼철되어 현재는 개방된 상태이고 건물의 일부는 중간에 수리가 있었으며 그 기법은 18세기이 건축 양식을 보이고 있다. 또한 대청, 누마루. 고방등의 짜임색 간결하고 품위가 있으며 안채와 사랑채의 평면은 대체로 중부지아 양식을 따르면서도 남도풍을 가미한 특이한 형태이다. 사랑채 앞의 축대와 샘, 연못과 나무에는 조선시대 정원의 아름다움이 스며 있으며, 뒤안의 장독대와 울창한 숲은 우리나라 살림집의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다. 명재고택은 조선시대 우리 지방의 양반가옥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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