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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의 풍경
산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아픔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블로그기자단 기장군홍보단 기장군민필진 한국방송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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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포 과메기 문화관

관림일 및 시간

관람시간 : 09:00~18:00

휴관일 : 매주 월요일(단 월요일 휴일인 경우 공휴일 다음날)

관람료및 주차 : 무료

구룡포 과메기 문화관은 2016년 7월9일 지상 4층,5071㎡ 규모로 건립되어 동해와 구룡포항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뷰포인트를 확보하고 있으며 과메기와 문화를 접목한 공간으로 포항의 바다와 과메기가 궁금하다면 꼭 한번 들러야 할 곳이다.

어린이에게는 바다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어른들에게는 70년대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하는 가족단위 관람객에게 더없이 좋은 명소이다.

 

---포항 구룡포 과메기 문화관 안내 전단에서.....

1층은 특산품 판매장, 다목적 전시실, 체험교실이 있는데 현재 특산품 판매및 체험교실은 운영되고 있지 않았습니다.

2층에는 해양체험관, 과메기 연구센터 사무실

3층은 과메기 홍보관 , 과메기문화관이 있어요.

4층은 해양 생태관-야외전망대, 영상관 카페가 있답니다.

 

포항 구룡포 과메기 문화관은 위용이 대단한데요

좀더 알찬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과메기 시식코너라든지, 과메기 판매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과메기 문화관이니까요,  유래나 전설등의 나열만으로는 너무 단순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거기까지 찾아 갔을때 기억에 남을만한 것이 있으면 좋겠거든요.

과메기를 맛보러 구룡포까지 찾아갔지만 근대역사관 주변의 바닷가 포구에 전문적으로 과메기를 맛 볼 수 있는곳이 눈에 띄지 않아서

많이 찾았는데,

실제로 포항 구룡포까지 찾아갔지만, 과메기를 냉동으로 사 먹을 수 밖에 없어서 너무나 아쉬웠어요.

아무튼 구룡포에 가면 근대역사거리도 있고 과메기 문화관도 있고 근대역사관도 있으니 포항가시면 한번쯤 들러보세요 ^^

 

 

구룡포 근대역사문화거리에서 계단을 통해 공원으로 올라오면 과메기 문화관으로 갈 수 있는데

문화관 가는길의 벽화가 너무 사랑스러워요.

 

과메기 문화관 겉모습은 굉장히

포항 구룡포 과메기 문화관

 

 

 

관목-관매기-과메기

 

과메기의 어원과 유래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1층 기획전시실에서는 김은숙 작가님의 바닷속 고래이야기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구룡포 과메기 덕장의 하루

"과메기 원조"구룡포 과메기 덕장의 하루는 새벽부터 시작된다. 꽁치 손질의 장인들이 머리, 내장, 뼈를 제거하고 세척장에서

깨끗한 해수와 수돗물을 이용하여 여러번 세척한다.

오후부터는 세척된 꽁치를 건조대에 늘어 건조덕장으로 옮기는 작업을 저녁 늦게까지 한다.

건조덕장의 꽁치는 하루 동안 물기가 빠지고 이틀 정도 바람에 건조 되면 맛있는 과메기가 만들어 진다.

구룡포의 유래와 전설

 

신라 진흥왕 때 장기현령이 각 마을을 순시하다가 지금의 구룡포6리(용주리)를 지날 때였다

갑자기 바다에 큰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거대한 용 열마리가 하늘로 오르기 시작하였는데

그중 한 마리가 바다로 떨어졌따.

그러자 바닷물이 붉게 물들면서 폭풍우가 그치고, 바다가 잔잔해졌다.

이후,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한 포구라 하여

"구룡포"라고 한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용두산 아래 깊은 소가 있었는데 이 소 안에 아홉 마리 용이 동해로 승천하였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북극체험 AR

증강체험

 

북극체험관 여기에서는 화면에 북극곰과 고래들이 뛰어올라와요, 가장 인기있는 장소예요.

 

 

posted by 산위의 풍경

구룡포에 문화답사를 다녀왔습니다.

구룡포는 과메기로 유명한데, 이곳에 100여년전의 근대문화거리, 일본인 가옥거리가 있는줄을 몰랐네요.

계속 과메기는 지인을 통해서 몇년째 시켜 먹었었는데, 직접 구룡포를 다녀올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여행의 일정은 구룡포 근대문화거리 일본인 가옥거리와 과메기문화관 그리고 연오랑 세오녀 테마공원을

 다녀오는 것으로 결정지어져 과메기도 먹고 올겸 여행을 떠났습니다.

제일 먼저 소개 할 곳은 이곳 일본인 가옥거리입니다.

아직도 꽤 많은 적상가옥이 남아 있습니다.

개인 주택으로 사용되고 있기도 하고 카페나 식당이 자리하기도 했습니다.

추억의 상점은 어릴때의 군것질 거리들이 있어서 정겨웠습니다.

달고나도 해 볼 수 있고 쫀드기, 아폴로, 라면땅도 있고 호박꿀쫀드기도 있었어요.

피식 웃으면서 이런거는 사 먹어 줘야 한다면서 쫀드기를 잔뜩 사 먹었습니다. 

재미있어서요.  근대문화관으로 개관한 곳은 안에 들어가 볼 수 있는 곳이므로 100여년전 일본인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곳이예요.

2층 3층의 대저택을 짓고 살던 그들이 얼마나 많은 수탈을 일삼았을지, 상상하기도 힘들겠지요.

그래서 역사는 바로 보아야 하고 바로 알아야만 합니다. 아프다 외면하지 말고 바로 보는 시선으로

다녀오시면 좋겠습니다.

구룡포는 어자원이 풍부한곳이었는데, 일본의 어부들이 무단으로 들어와 점령하고 우리의 어자원을 수탈한 곳입니다.

일본의 어부들이 이주해 오면서 구룡포에는 더 많은 일본인들이 살게 되고 잡은 어류를 가공하는 곳까지 만들면서

더욱 부를 축적해 가고 그들이 활개치는 일제 강점기 시기에 우리어민들의 삶은 어땠을까? 하는 마음속의 아픈 속삭임도 들립니다.

근대거리위에 공원과 과메기 문화관이 있어요.  그곳은 다음에 또~ 소개해 드릴게요. ^^

 

가가와현의 가난한 어부들의 조선 출어는 1880년부터 1884년경에 시작되었다.

당시 세토 내해에는 좁은 어장에 많은 어부들이 몰려 들어 크고 작은 분쟁이 끊임없이 벌어졌다.

힘없고 가난한 일본의 어부들은 더 넓은 어장을 찾기 위해 세토 내해를 벗어나 먼 곳의 바다로 향했다.

이들은 더 넓고 좋은 어장에서 만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걸고 항해를 했다.

1883년 조일통상장정이 체결되면서 일본 어민들은 본격적으로 조선해에서 고기를 잡았다.

1908년경 가가와현의 가난한 마을 오다어촌의 어부들과 오카야마현의 어부들이 중심이 되어 구룡포로 이주했다.

구룡포에 본격적으로 터전을 잡은 대표적인 일본 어부로는 구룡포 공원내 공덕비의 주인공인 도가와 야스브로와 하시모토 젠기치가 있다.오카야마현에서 이주한 도가와 야스브로와 가가와현에서 이주한 하시모토 젠기치는 구룡포 일본인  이주 어촌의 두 기둥이 되었다. 구룡포의 풍부한 어자원은 일본 어부들이 꿈을 이루어 주었다.

황금빛 엘돌라도 구룡포는 가난한 일본인 어부들에게 새 시대 새 삶을 열어주었다.

 

----포항 구룡포 근대문화관의 안내문----

 

 

 

 

가가와현의 가난한 어부들의 조선 출어는 1880년부터 1884년경에 시작되었다.

당시 세토 내해에는 좁은 어장에 많은 어부들이 몰려 들어 크고 작은 분쟁이 끊임없이 벌어졌다.

힘없고 가난한 일본의 어부들은 더 넓은 어장을 찾기 위해 세토 내해를 벗어나 먼 곳의 바다로 향했다.

이들은 더 넓고 좋은 어장에서 만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걸고 항해를 했다.

1883년 조일통상장정이 체결되면서 일본 어민들은 본격적으로 조선해에서 고기를 잡았다.

1908년경 가가와현의 가난한 마을 오다어촌의 어부들과 오카야마현의 어부들이 중심이 되어 구룡포로 이주했다.

구룡포에 본격적으로 터전을 잡은 대표적인 일본 어부로는 구룡포 공원내 공덕비의 주인공인 도가와 야스브로와 하시모토 젠기치가 있다.오카야마현에서 이주한 도가와 야스브로와 가가와현에서 이주한 하시모토 젠기치는 구룡포 일본인  이주 어촌의 두 기둥이 되었다. 구룡포의 풍부한 어자원은 일본 어부들이 꿈을 이루어 주었다.

황금빛 엘돌라도 구룡포는 가난한 일본인 어부들에게 새 시대 새 삶을 열어주었다.

구룡포 근대 문화역사거리

 

근대역사관

오전 10시부터 오후 17시까지,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입니다.

 

구룡포 근대역사관

이 건물은 1920년대 일본 가가와현에서 이주해 온 하시모토 젠기치가 살림집으로 지은 2층 일본식 목조가옥이다. 해방 후 개인주택으로 사용되어 오던 것을 포항시가 매입,수리하여 '구룡포 근대역사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건물 내부에는 100여 년 전 모습들이 잘 남아 있으며 당시 생활모습을 다양한 전시자룔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건물은 일본식 건물의 구조적. 의장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구룡포공원에 구룡~

충혼각

 

 

posted by 산위의 풍경

 

사통팔달 교통이 발달하면 그 지역은 문화와 생활이 훨씬 더 유익하게 발전합니다.

소상공인에게도 일단 유동인구가 많아야 유리한 조건이 되겠지요.

기장지역은 작년 12월 30일 개통된 동해선으로 기장 일광~부전까지의 교통로가 하나 더 생겼습니다.

기존의 역들과는 조금 차이가 있는 새로운 노선으로 개통이 되었지요?

학교 가는길에 직접 타 본 시승기를 올려 봅니다.

학교가 화명도 수정역근처에 있습니다.

한국 방송대학교 부산 지역대학이 그곳이 있거든요.

기장에서 가려면 일단 코스가 굉장히 깁니다.

기장에서 학교가 있는 화명동 지하철2호선역 수정역까지 가려면 기장에서 버스로  해운대역까지 가서  지하철 2호선을 환승해서 간다면 거의 2시간 가까이 걸립니다. 몇번 환승안하고 가는대신 돌아돌아 가기때문에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요.

그래서 환승을 많이 해서 불편하지만 그래도 빠른길로 다녔지요. 한번씩 학교에 가려면 긴시간이기 때문에 방송강의를 듣는다든지, 책을 한권 넣어 가서 항상 읽게 되더라구요.

학교에 가는 다른 방법은 기장에서 화명동 방송대학교까지 가려면 기장에서 버스 36번,183번,마을버스 11번 을 타고 안평역에 가서 지하철 4호선을 타고 미남역에서 3호선으로 환승, 다시 덕천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 수정역 가면 이렇게 하면 1시간 20분~30분정도 걸립니다.

또 기장에서 36번 버스를 타고 연산역까지 가서 지하철 3호선을 타고 덕천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해서 수정역까지  이것도 1시간 30분정도 걸립니다.

 

이번에 개통한 동해선을 기장역에서 타면 거제역에서 3호선으로 환승해서 덕천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 수정역까지 갑니다. 집에서 기장역까지 걸어가야 하고 한시간에 두서번 있는 기차 시간을 이용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는군요.

전철이라고 그래서 지하철처럼 자주 있는줄 알았는데, 특히 달리다가도 다른 열차시간이 되면 비켜 기다려야 하기때문에 시간이 더 걸리네요.

무척 편리한줄 알고 탔는데, 이용하시는 분들의 연령대가 높고 옆자리 이웃을 잘 만나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좌석은 지하철 좌석처럼 옆으로 있는데 연세 있으신 아주머니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큰소리로 대화를 하셔서 책을 읽고 있는데

귀가 쩌렁 쩌렁 했어요.

도시에서의 기차여행처럼 낭만을 찾아 이용하면 좋겠지만 바쁜 직장인이나 학생들은 시간별로 되어 있는 동해선이 그렇게 좋은 교통편은 아니다싶은데요, 좀더 자주 있었으면 좋겠네요. 지하철처럼~

어르신들 교통편으로 개통한것은 아닐테니 좀더 실질적으로 많이 이용해야할 학생이나 직장인들이 이용하기 편안한 교통방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출퇴근 시간만 15분 간격으로 운행이 된다고 해요.

 

기장역

동해선 전동열차 개통에 맞춰서 새로 지어졌습니다.

 

동해선 전동열차 시간표

평소에는 25분간격, 출퇴근 시간 15분 간격이라고 하네요~

 

동해선 노선도

부전역-거제해맞이역-거제역-교대역-동래역-재송역-센텀역-벡스코역-신해운대역-송정역-오시리아역-기장역-일광역

롯데동부산 아울렛을 이용할 승객은 오시리아역에서 하차하시면 됩니다.

일광에서 부전까지 37뷴 소요된다고 하는데

전철을 타서부터 그렇고, 역까지 걸어가야지 기다려야지.....빠른게 아니예요~

 

동해선 거제역

 

동해선 역에서

밖으로 나가면 바로 거제역 지하철 2호선 출구가 있습니다. 이곳으로 들어가야 환승 할 수 있습니다.

지하로 연결되었으면 좋았을텐데...

 

거제역

 

 

거제역 풍경

동해선 기다리는데 아무도 없어서 살짝 무서웠다는, 25분 기다리는데....

눈은 책을 향해 있을수 밖에... 시간이 다 되어가니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데요.

 

정영자 시인의 시집 『한세상 동행하는 풍경들』중 <기다림>이란 시를 읽으며 동해선을 타고 기장으로 돌아 오는길

 

내릴차례가 되었습니다. 기장역.

 

차라리 버스로 환승해서 간다면 벌써 반쯤은 갈 시간인데 25분씩 기다려야 하고 다른기차 비켜줘야 하고,,,,이런건 너무 불편하네요.

특히 불편한점 한가지, 롯데카드는 동해선에서 사용이 안된다는거~~~~~~~~~~~~~~~~ 깜짝 놀랬네요.

기장에서 동해선을 탈때는 카드를 찍으니 통로에 불이 들어왔고 통과해서 동해선을 타고 거제역에 내렸답니다.

나가려는 개찰구에서 승인이 안된카드라고 부저가 울리는 겁니다.

뭐지?? 분명히 이걸로 찍고 왔는데.... 여러번 시도하다가 할 수없이 직원을 호출했습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하는 직원의 음성, '네. 기장에서 타고 왔는데 여기 나가려니까 교통카드가 승인 안된카드라고 나와서요~"

직원이 와서 두어번 다시 시도를 하더니 " 고객님 롯데카드는 아직까지 저희한테 사용이 안됩니다." 헐~~~~~~~~~

그럼 개찰구에서는 왜 열렸을까?  필자는  다른카드로 내밀어서 직원이 들어오는 개찰구에다 한번 찍고 카드를 받아서 개찰구에 찍고 나갔습니다.

교통카드로 환승이 된다는 동해선 굉장히 편리한줄 알았더니 어느 카드는 사용이 되고 어느카드는 사용이 안된다??? 이건 또 무슨 황당 시츄에이션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불편은 빨리 시정해야 될것 같습니다.

학교가느라 타본 동해선 시승기,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새로운 교통로가 생겼다는데 의의를 두어야겠네요.

지금은 부전에서 일광까지만 개통이 되어 있는데 차후 울산 태화역까지 확장이 된다고 합니다.

자주 있어서 편리해지는 교통편이길 바랍니다.

 

 

 

 

posted by 산위의 풍경

부산의 대표적 작가중 한분 요산 김정한 선생의 문학관을 찾아가 봅니다.

기장에서 가려면 36번 버스를 타고 연산 교차로까지 가서 1호선 지하철을 갈아 탑니다.

범어사역에서 내려 1번 출구로 나가면 요산 문학로가 펼쳐져 있습니다.

출구에서 나가자마자 바로 오른쪽도로 요산문학로를 따라 걸어갑니다.

900여미터를 걸어가면 됩니다.

요산 문학로를 걷다보면 금정중학교와 청룡초등학교가 있는데 범어사 경내에 있으면서 범어사에서 운영하던 사립 명정 학교가

분리된 것이라고 합니다.

요산 선생이 12세때에 다니던 곳이라고 합니다.

이곳을 지나면 요산 선생의 사람답게 살아가라는 말씀을 벽화에 그리고 작품 설명과 벽화를 보면서 걸을 수 있습니다.

요산 문학관은 언덕에 있습니다.

도착해보니 사무실 직원 한분만 있고 아무도 없었습니다.

문학관 전체를 풍경이 혼자 차지한 기분이었습니다.

1908년~1996년 89세로 타계할 때까지 부산을 지키던 작가입니다. 1931년 24세때 일본 유학중 유학생회에서 발간하던 잡지 『학지광』편집에 참가했으며 『조선시단』『신계단』등에 시와 단편 소설 발표했는데 이때 단편소설 『구제사업』은 작품 제목만 실리고 내용은 전문 삭제를 당했다고 합니다.1932년  12월에 처녀작 『그물』을 <문학건설> 발표했다고 합니다.

등단은 1936년 요산 선생이 29세때 『사하촌』이 <조선일보>신춘 문예에 당선되면서 소설을 쓰기위해 우리말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당시 한글사전이 없었음) 우리말 낱말 사전과 식물도감을 작성하기 시작하여 이후 <우리말>이란 제목의 노트 8권과 <식물연구>라는 제목의 노트 2권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부산중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셨으며 1949년에는 부산대학교에 출강을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1950년 부산대학교에 조교수로 발령 받았는데 6.25발발로 보도연맹 가입자들에 대한 구금을 피해 엄궁동으로 피신중 체포 되기도 하셨답니다.

---위의 내용은 요산 선생의 연보에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요산 문학관은 전시실과 부대시설이 있습니다.

1층은 세미나실이 있어요.

2층은 전시실과 도서관이 있더라구요.

3층은 창작실로 방문객들에게는 개방되지 않습니다.

지하1층에는 강당이 자리했습니다.

요산 선생의 대표적 작품을 살펴보면

1936년에 발표한 『사하촌』1936, 『모래톱이야기』1966, 『수라도』1969, 『뒷기미 나루』1969, 『인간단지』1970, 『사밧재』1971, 『산거족』1971, 『오끼나와에서 온 편지』1977년등이 있습니다.

요산 문학관에 들어서자마자 선생의 생가가 복원되어 있습니다.

요산 선생이 태어난 동래구 북면 남산리는 예부터 김해 김씨(삼현파)집성촌이었다고 하네요.

본향이 경북 청도인 선조들이 이곳으로 세거한 때는 무오사화(1498년 연산군 4년)로 16대조 김일손이 참화를 입은 후랍니다.

조부 대에 와서 종가가 되고  선생이 떠나시고 후배 작가들과 뜻있는 사회 인사들이 생가복원 이야기를 시작해 부산 광역시의 지원을 받아 그 해 12월 퇴락한 집을 헐고 2003년 6월에 공사를 마무리 했대요.

요산 선생의 작품 『수라도』1969년 발표되었는 한말부터 광복까지 한 여인의 일생을 통하여 허진사댁 가족사와 한민족 수난사를 실감있게 표현한 작품입니다.

모래톱이야기는 1966년 발표되었는데 작가가 25년 침묵을 깨고 발표한 작품으로 일제시대부터 낙동강 하루 소작농민의 애환을 그린 작품이예요.

장편 삼별초는 고려 1014년 현종5년부터 1273년 원종 14년까지 월별로 구분해 사건별로 기록해 연표를 작성할 만큼 대단한 자료 수집을 하셨어요.

1970년발표된 독메는 외따로 떨어진 조그만 산이라는 순우리말로 고립촌락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답니다.

국유지 불하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소설이라고 합니다.

사밧재는 1971년 발표되었는데 일제말 배경으로 창씨개명과 학병지원문제를 통해 민족의 저항성을 보여주는 점에서 수라도와 맥을 같이 한다고 하네요.

이참에 요산 선생의 작품에 대해 알았으니 통째로 다 읽으려고 전집 장만을 하려고 주문해 두었답니다.

일부 작품만 읽어서 아쉬웠거든요.

 

말년에 천주교 신앙을 가지셨답니다.

사전이 없을 당시 요산 선생이 만든 낱말 카드.

량이 엄청났습니다.

 

 

 

 

 

 

posted by 산위의 풍경

 

 

남해 여행하면 들러 볼 수 있는 맛집 만영 돌게장정식

집입니다.

남해 금산 산행을 마치고 산꾼들과 같이 들러본 만영.

산행을 마치고 출출한 시간에 들른 만영에서 돌게장정식 만찬을 즐기게 되었네요.

돌게장정식은 먹기 편안하게 잘 손질해서 나와서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더군요.

짭조름하면서도 많이 달지 않고 자꾸 입맛을 당기네요.

원래 게장을 잘 먹지 않는 필자입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입맛을 당기는것을 보니 이집의 솜씨가 좋은가 봅니다.

밑 반찬으로 나오는 것들도 집에서 먹는 반찬처럼 좋았답니다.

특히 남해 시금치는 요즘 제철이라 달큰하니 맛있더라구요.

반찬을 모두모두 리필해서 먹느라 아주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산꾼들 모두 만족하는 돌게정식으로 맛나게 식사한곳, 만영.

전화로 택배로 주문도 가능하다니 시켜 먹어볼까?

아니면 밑반찬들도 같이 먹고 싶으니 남해 여행을 다시 떠나봐야 할 것 같습니다.

 

 

 

 

posted by 산위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