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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의 풍경
산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아픔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블로그기자단 기장군홍보단 기장군민필진 한국방송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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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코투어에서 숙소를 우선 검색해 보았습니다.

김포, 강화여행을 계획했기 때문입니다.

결혼식이 있어서 인천에 가는김에 부산에서 오기 쉽지 않으니까

강화도 여행을 하고 내려 가기로 했습니다.

숙소를 검색하니 강화도는 많은 펜션이 있더군요.펜션들은 경치좋은곳에 있지만

주로 좀 외진곳에 있기 때문에 먹거리를 사들고 들어가서 조리를 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지요.

될 수 있는데로 호텔을 검색했는데, 호텔이 눈에 안띄는....인천의 호텔을 검색하니 거의다 공항근처에 있더군요.

김포에 라르 호텔을 정했습니다.

강화도 여행을 마치고나서 찾아간 라르호텔, 강화도에서 나오는 시간이 차가 너무 막혀서 늦어버렸네요.

어느 유명한 포구에 들으가서 맛있는 낙지 탕탕이를 먹으려 했는데, 차가 밀려 늦는 바람에 식당이 문을 닫았어요.

겨우, 문을 열고 있는 칼국수집을 찾아서 해물 칼국수 한그릇 먹고 호텔로 들어갔어요.

비지니스 호텔처럼 좀 좁은 룸이라 살짝 실망 했는데, 기온은 쾌적했습니다.

욕실에 비치된 어메니티도 맘에 들었어요. 다행이지요. 이거 좋아 하거든요.

사용하고 가지고 가서 다음 숙소에 갔을때 맘에 안들면 이것을 다시 사용합니다.

특히 다음 숙소에서 덕용이 비치되어 있으면 그건 사용을 거의 안합니다.

가져간 개인용품을 사용하거든요.

여행을 다니다보니 그냥 이런 습관이 생긴것 같아요.

남편은 하루종일 운전을 하다보니 피곤했나봅니다.

하루종알 사진 찍은거 노트북에 옮기고 정리하고 글을 쓰는 동안 씻고 잠드는 남편~

고생했어요. 운전하느라 ~ 굿잠!

근데 라르 호텔 근처엔 조식먹을때가 없어서 한참 헤메었습니다.

고건 살짝 불편했지요.

호텔 자체의 불편함은 아니구요~

호텔 주차장은 타워식 주차구요, 주차장 들어가는길은 일방통행길입니다.

그러니까, 입구를 잘 찾으셔야 한다는거~~~~~ 기억해 주세요.

 

 

posted by 산위의 풍경

 

천제연 폭포가 가까운곳에 숙소가 있어서 일단 호텔에 짐을 풀고 천천히 걸어 봅니다.

걸어서 10분정도의 위치에 있어서 중문 유어스 호텔에서 천천히 걸어서 다녀왔거든요.

식사하고 천천히 걸어다녀도 될것 같아요.

셀카봉을 하나 들고서 디지털 카메라는 목에걸고 천제연 폭포를 향해갑니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제2폭포쪽으로 내려섭니다.

비가오려고 어두워지는 날씨에 혼자서 폭포를 내려가려니 좀 음침한 기분도 들긴 합니다만,

혼자서 사진찍기는 아주 좋았습니다.

세칼봉을 들고 요령껏 인증샷!

다음은 선녀가 새겨진 오작교를 건너듯, 공중 다리를 건너서 전망대를 향해 갑니다.

다리 이름이 선임교래요.

필자가 방문했을때는 모터쇼가 열리는 기간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었어요.

또 유채꽃길 걷기대회하는 기간이기도 했지요.

그러고 보니 제주 갔다와서 글을 쓰는게 오랫만이라 여행다녀온지 한참이 지났어요.

이렇게 여행의 기록들을 남겨둬야 하는데, 너무 게으름을 부렸네요.

천제연폭포는 가까운데서 볼 수 있는것은 제2폭포뿐, 멀리서밖에 볼 수 없으니까요~

그냥 천천히 산책 하는 재미로 다녀오시길 바래요. ^^

천제연 폭포는 성인기준 1인 2500원의 입장료가 있습니다.

 

제2폭포 내려갔다 오는길은 난대림 식물들, 원시림을 보는듯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음침했나봅니다.ㅋㅋㅋㅋㅋㅋ

 

폭포아래로 내려가보니~ 절리지

멋진 돌기둥들이 병풍처럼 둘러져진 연못, 멋져요~

선임교에서 인증샷

 

posted by 산위의 풍경

고려궁지는 사실 피난을 갔던곳이죠?

개성의 고려왕실은 몽골의 침입에 못견뎌 강화도로 피난을 갑니다.

최고의 천연 요새인 강화도로 들어가서 39년간 고려의 도읍체제로 유지되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외규장각을 만들어 왕실의 도서관의 많은 자료와 서적을 보관하였는데

병인양요때 프랑스에 패하면서 많은 서적및 자료가 프랑스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참 안타까운 부분이지요.

고려궁지에는 강화 유수부 동헌과 이방청. 동종, 외규장각 건물만 남아 있고 이것들도 사실 다 복원된 것이지만요.

실제 고려궁지로서 남아 있는 건물은 없습니다. 터만 남아 있는 것이지요.

이 고려 궁지를 둘러싼 성은 산책길처럼 한바퀴 돌 수 있습니다. 고려궁지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왼쪽길을 따라 올라가면 벚꽃길로

강화산성북문을 만나게 됩니다.

북문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강화산성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힘든길은 아니고 아이들을 데리고 걷기엔 조금 위험하다 싶긴합니다.

연인과 걷기는 괜찮을것 같아요.

남편은 북문앞에 앉아 있다가 성곽길로 올라선 저를 보고 금방 사진만 찍고 내려올줄 알았대요.

그럴리가요~ 저는 성곽을 따라 걸었지요.

북장대까지 올라서 (북장대 안내는 있지만 건물같은것은 없습니다.)

안내표지판을 따라 내려 섰더니 다시 고려궁지 뒷길쪽이네요.

커다란 나무 아래서 사진한장 찰칵 남기고 내려왔습니다.

강화도는 우리역사에서 많은 이야기 거리를 품은 곳이에요.

용흥궁은 철종임금이 임금이 되기전에 머물던 곳이라고 하던데, 그곳은 못가봤어요.

이규보 능도 있고 돈대, 초지진 같은곳, 광성보 등등 가볼곳이 엄청 많아요. 다음에 다시한번 또 가봐야겠어요 ^^

고려궁지를 가기위해 차를 세운 주차장에서 성공회 성당이 보이는데요~

다음엔 이곳 성공회 성당을 소개할게요.

기분좋은 휴일 보내세요 ^^

 

 

 

 

강화 나들길

 

용흥궁 공원

 

강화도 유수부 동헌

 

큰나무

 

외규장각

 

고려궁지

이곳은 고려시대 궁궐이 있던 곳이다. 고려가 대몽항쟁을 위해 고종 19년(1232)에 도읍을 개성에서 강화로 옮긴 후 궁궐을 건립하고 39년간 사용하였으나

화친하여 환도(1270년) 할때 몽골의 요구로 궁궐과 성곽 등을 모두 파괴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왕이 행차 시에 머무는 행궁 외에도 유수부 동헌, 이방청, 외규장각, 장녕전, 만녕전 등을 건립하였으나 이 또한 병자호란과 병인양요 때 대부분 소실 되었다. 1964년에 사적 제 133호로 지정 되었고, 1977년 강화 전적지정화사업으로 보수 정비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조선 시대 유수부 동헌과 이방청, 외규장각(2003년 복원)등이 남아 있다,

 

 

 

posted by 산위의 풍경

강화도여행중 가보고 싶었던 전등사,

이곳에 초등학교때인지 중학교때인지 가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기 자기 빨간 바지 입고 찍은 사진 있지 않아?" 하는 남편의 말,

친정집에 있던 저의 어릴때 사진을 기억하고 있었네요

"응, 맞아요. 그때 갔던 기억이 있는데, 다시한번 꼭 가보고 싶어요."

그래서 전등사를 두둥 찾아갔지요

부처님 오신날이 가까워지고 있으니 입구부터 등을 달아 두었습니다.

대웅보전 앞 절마당은 울글 불긋 갖가지 전등이 차지를 하고 있네요.

사다리를 놓고 이제 막 설치를 하고 계셨어요.

전등사는 고려왕실의 원찰이라고 하더군요.

전등사 홈페이지에 소개되어 있는 우리나라 불교 유래의 역사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불교가 국교로 인정받은 것은 372년(고구려 소수림왕 2)의 일이다.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고구려가 삼국 중 가장 먼저 불교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 당시 일반 백성들 사이에는 불교의 저변이 어느 정도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대개 새로운 종교는 일반화 과정이 진행된 후 왕실이나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선포하기 때문이다.
고구려 소수림왕이 불교를 국교로 선포하자 전진의 부견왕은 법사인 순도(順道)와 불상, 불경 등을 고구려 왕실로 보냈다. 소수림왕은 성문사(373년 창건)와 이불란사(375년 창건)를 짓게 하고 성문사에는 순도, 이불란사에는 아도로 하여금 머물게 했다. 따라서 이 두 절은 한국 최초의 사찰로 기록되고 있다.

강화도는 섬 자체가 우리나라 역사의 축소판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선사 시대의 고인돌 유적부터 단군왕검의 얼이 담긴 마니산, 고려 때의 대몽항쟁과 팔만대장경 조성, 서양 세력과 처음으로 전투를 벌였던 ‘병인양요’에 이르기까지 강화도의 역사는 곧 한민족의 역사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지금도 강화도는 역사와 문화의 섬으로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강화도에는 전등사를 비롯해 유서 깊은 사찰도 많이 터 잡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호국불교 근본도량인 전등사와 전등사보다 300여 년 후에 세워진 보문사 및 정수사가 손꼽힌다.
전등사는 현존하는 한국 사찰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졌으며, 부처님의 가피로 나라를 지킨 호국불교 근본도량으로 역사와 권위를 간직한 사찰이다. <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바와 같이 삼랑성은 단군이 세 아들(三郞)을 시켜 쌓았던 고대의 토성이었고, 삼국시대에는 토성 자리에 석성을 쌓아올려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삼랑성 안에 자리 잡은 전등사는 세 발 달린 솥을 거꾸로 엎어놓은 모양을 가진 정족산(鼎足山)과 더불어 강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화 유적으로 유명하다.
전등사가 창건된 것은 서기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년)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래된 것이 서기 372년이므로 지금은 그 소재를 알 수 없는 성문사, 이불란사(375년 창건)에 이어 전등사는 한국 불교 전래 초기에 세워진 이래,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도량임을 알 수 있다.
처음 전등사를 창건한 분은 진나라에서 건너온 아도 화상이었다. 당시 아도 화상은 강화도를 거쳐 신라 땅에 불교를 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도 화상이 강화도에 머물고 있을 때 지금의 전등사 자리에 절을 지었으니 그때의 이름은 ‘진종사(眞宗寺)’라 하였다.

--------------전등사 홈페이지에 있는 전등사의 유래-------------------

 

강화도는 역사의 현장의 한가운데서 오랜세월을 버티어온 우리땅입니다.

대몽항쟁으로 팔만대장경 조성, 서양세력의 침입을 막던 병인양요 등등 우리나라의 위기때마다 방패같은 역할을 했던곳이라 할까요?

전등사의 전신이 진종사라고 중국에서 건너온 아도화상이 머물러 지은 절이라고 하네요.

 

전등사가 역사의 전면에 다시 나타나는것은 병인양요.

바로 양헌수 장군이 프랑스 군대를 물리치는 현장이기도 하지요.

정족산에 위치한 전등사는 삼랑성안에 위치한것이지요.

전등사  대웅보전과 약사전을 지나 좀더 위쪽으로 가면

실록을 보관했던 사고가 있었습니다.

지금 그 안에서는 작은 전시회가 열리고 있고요.

사고를 마주보고 오른편으로 돌면 삼랑성 북문으로 오를수 있는 숲길이 있습니다.

북문만 오를려고 했는데, 사실 처음에 이길을 못찾고 사고에서 내려오면서  오른쪽으로 내려와서 숲길을 올라가니 서문이 나오더라구요~

서문에서 북문까지 더 걸었습니다.

그것도 구두를 신고.....아놔, 신발 갈아신고 올라올걸~

여기까지 오를줄 모르고 구두신은채로 원피스를 입고 산을 올랐어요.

이곳은 산성을 한바퀴 다 돌수 있나봐요.

'성돌이길 '이라고 안내판이 서 있었어요.

그리고 양헌수 장군의 승전비를 보실분은 동문으로 가세요.

전 요걸 못보고 와서 넘나 아쉬워요.

 한국사 공부를 해보니, 자꾸 자꾸 역사의 현장에 가보고 싶어 지는거 있지요?

공부를 하는 학생들은 책에서 보는것보다, 이렇게 현장에 가서 직접 체험해 보는것이 실질적 교육이 될것 같습니다.

오래 기억에 남고 말이지요.

강화도 여행, 아직도 갈곳은 많은데 시간이 좀 없네요.

다음엔, 고려궁지를 가볼게요~

요즘은 전등사에서 템플스테이도 하더군요.

이런 체험도 좋을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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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0일 여행의 목적지인 가파도를 향해 들어 갑니다.

모슬포항에서 배를 타고 가파도로 들어가지요.

가파도에 도착 하니 비바람이 엄청 붑니다. 얌전하게 비가 내려야 비옷을 입고 우산을 쓰고 다닐텐데,

처음엔 우산을 쓰고 걷기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바람에 자꾸 우산이 넘어가는 바람에 우산을 접고 말았습니다.

날씨가 궂으니까 생각보다 관광객이 적습니다.

배에서 내려서 오른쪽으로 걷기 시작하면 제주의 특징인 밭담들을 볼 수 있지요.

돌담을 쌓은집, 바닷가를 걸으니 밭담이 길게 드리어져 있습니다.

그길로 계속 걷다보면 그 유명한 가파도 해물 짬뽕집이 나와요.

한그릇 하고 다시 출발~~

이제 슬슬 청보리밭을 걸어야지요.

가파도 청보리밭을 아무렇게나 돌아 다니면서 걷고 또 걸었습니다.

걷다 보니, 다시 짬뽕집으로 돌아온~~~ 아! 길을 잃었나?

순간 당황~ 배시간이 30분 남았는데, 항구로 가야되는데,,,, 살짝 당황한 싯점.

부르르릉~~~ 오토바이 삼촌이 하나 짜잔~

"배탈거 아니예요?"  " 예~ 제가 길을 잃었나봐요." 했더니 오토바이 뒤에 타란다.

아~~~~~~~~~ 그 삼촌이 데려다 주신 덕분에 무사히 가파도 항구에 도착, 배를 탔습니다.

청보리밭 비를 맞으며 실컷 걷고온 가파도여행

멋진 여행으로 기억될것 같아요. 부릉 부릉~~~~~~~~~~~ 오토바이 태워주신 삼촌~~~~~~~~ 복받으실거예요~

좀 있으면 곧 가파도 청보리밭 축제가 열리겠군요.

축제 기간은 못가지만 미리 다녀온 가파도 여행~ 이렇게 마무리 합니다

두번째 가파도 여행, 지난번에 돌지 못했던 곳까지 꼼꼼하게 다 돌 수 있어서 좋았어요.

혼자만의 여행, 가파도 어때요?

고냉이 돌

가파도는 헌종8년(1842)대정읍 상모리 주민들이 출입하면서 마을을 형성하였다

초기 가파도 주민들은 어업을 하지 않고 보리, 고구마로만 생계를 유지하여 주민들과 같이 들어온 육식동물인 고냉이들은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 바위는 고냉이들이 폭풍에 떠밀려오는 생선을 기다리다 굶주림에 지쳐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하동마을 할망당

 

 

가파도 고인돌

 

 

posted by 산위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