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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의 풍경
산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아픔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블로그기자단 기장군홍보단 기장군민필진 한국방송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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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겨울산행 다녀왔네요.

제주로 떠나기전에 기온이 계속 포근했기 때문에 눈꽃이 있을지 없을지가 관건이었습니다.

날씨가 영하의 차가운 날씨가 아니니 모처럼 가는 눈산행에 실망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지요.

마침내 1박2일 떠나는길, 이번엔 인원이 좀 많은 산악회원들이 함께 가게 되었는데요,

무사히 잘 마치고 오길 바라는 마음 간절했지요.

8시 5분 비행기다보니,집에서 새벽에 나가야 했지요.

쾌청하게 좋은 날씨네요.

제주공항에서 바로 버스로 이동 영실로 갔어요.

윗세오름에 오를거라서 우리팀은 영실에서 어리목코스로 정했거든요.

버스가 오르지 못하기 때문에 한라산국립공원 영실관리소에서부터는 

 도로를 따라 30분정도 걸어 올라간 다음 들머리로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부터 내내 눈길이더군요.

공항쪽에는 그렇게 포근했는데 이곳은 눈이 남아 있어 다행입니다.

산행을 하면서 모두 감탄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얀 눈꽃이 제대로 피어 있어서 너무 예뻤어요.

눈에 보이는곳마다 장관이예요.

예쁘고 멋진 눈꽃, 볼때마다 감탄이고, 이렇게 직접 본것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안가본사람은 모르는 그런 느낌이지요.

영실기암있는곳에서가 완전한 클라이맥스, 절정인 곳이더군요.

 

기암괴석들의 모습, 병풍처럼 펼쳐진 영실기암을 보면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지요.

이곳을 지나면서 이제 거의 능선으로 가게 되는데, 코스는 그렇게 힘들지 않은 코슨데,

이곳을 지나 윗세오름 대피소 도착하기 30분전 우리는 완전 지옥을 맛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제까지의 추위는 추위가 아니더군요.

어디한곳 몸 가릴곳 없는 눈밭에서 몰아치는 바람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하는데, 바람이 어찌나 센지 정말 뒤로 밀릴것만 같았습니다.

다른팀 산꾼은 옷을 꺼내입으려다 바람에 날려가 버렸습니다.

베낭에 옷이 있는데도 꺼내 입을수가 없을정도로 정말 손은 얼고 바람은 세서 뒤로돌아서서 후진하듯 걸음을 몇번걸어서 숨을 쉬고 다시 걷고를 반복했습니다.

지옥의 끝, 윗세오름에 도착해도 많은 인파가 한꺼번에 바람을 피할 곳은 없습니다.

여기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너무 춥기도 하고 제주업체에서 지급받은 도시락은 물을 부어 뎁혀먹는 것이었는데,

물을 붓고 싶어도 생수병 입구가 얼어서 물이 나오지  않는 상황, 겨우 겨우 뚫어서 물을 부었는데 15분을 기다려야 뎁혀지는것.

그 추위에 15분을 기다리느니 그냥 내려가겠다며 간단식만 먹고 식사를 못한분들이 태반이었습니다.

도시락 반찬에 튀김이랑 그런류들이 있길래 밥 덥히는것은 포기하고 반찬만 먹고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베낭에 있던 두툼한 점퍼를 드디어 꺼내 입으니 든든하고 추위가 가시네요.

대충 반찬을 주워먹고 내려 달리기 시작합니다.

너무 추우니까, 저절로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바람을 등뒤로 지고 내려가는것은 그나마 나았습니다.  허허 벌판같은 이곳이 사막인가 싶을 정도로 낮은 나무들은 모두 눈속에 파 묻혔는가

보이지가 않는 눈밭, 내려가면서 훨씬 큰 나무들이 있는곳에 도착하니 바람이 자는듯, 조용해졌어요.

추위가 이렇게 지옥을 맛보게 하기는 소백산 겨울산행이후 최고였던것 같습니다.

그래도 뿌듯한 겨울 눈꽃산행, 제주의 윗세오름 너무나 멋진모습에 반해서 그렇게 고생스러웠는데

또 가겠냐고 묻는다면, 당장 달려가겠노라 말하고 싶네요. 감탄스런 겨울 눈꽃산행 무사히 잘 다녀왔습니다.

 

 

 

 

 

영실기암 오백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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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장 사람도 아는사람만 안다는 일광 숨은 맛집 일광진미초장.

이집에 처음갔을때가 4-5년전이었는데,

어제 손님을 만나서 간곳이 이곳. 이곳을 어떻게 아세요? 했더니 여긴 정말 기장사람들이 오는곳이라고 합니다.

외지사람들은 다른곳으로 간다고 하더군요.

음, 오랫만에 와서 불맛나는 장어구이 실컷 먹었습니다.

3인 식사

장어 1.5kg. 소주두병, 매운탕, 식사2개 해서 66000원.

회값은 카드결재 안된다고 하지요?

이집이 초장집이니까요~

저렴하고, 또 장어도 맛나게 구워서 양념 다 발라서 옵니다.

그냥 쌈싸서 먹기만 하면 되니까, 옷에 냄새배일 걱정 안해도 되고 좋은데

손님이 너무 밀려서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게 함정.

ㅎㅎ 한참동안 기다린다고 수다만 실컷 떨었습니다.

덕분에 좀더 배고파 져서 더 열심히 맛나게 먹은것 같네요.

매운탕도 맛있는데, 역시 조미료맛이 좀 많이 납니다만,

그러려니 하고 먹습니다.

비린내 안나서 전 좋았거든요.

기장 여행오시면 이런 숨은맛집 찾아보기하는 재미도 찾으시길요.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30분까지 영업시간이랍니다.

일광 해수욕장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왼쪽 방향으로 거의 끝쪽으로 작은 다리를 하나 지나서 해녀의 집 조금 못간곳입니다.ㅋ

차량으로 그냥 네비찍고 가세요.ㅋㅋ

기분 좋은 주말 보내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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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오락 쪽갈비.

쪽갈비는 언제든 좋아하는 메뉴다 보니, 어떻게 먹어도 맛있는데

특별히 돈오락 쪽갈비는 치즈와 곁들인 메뉴가 퓨전 메뉴로 요즘 젊은이들을 사로잡는 대세의 메뉴입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 할만한 메뉴의 맛있는 쪽갈비.

스터디 모임과 신년회를 겸해서 같이 저녁을 먹게 되었는데

맛있는 메뉴에 한판더 추가해서 먹을정도였어요.

계란찜은 처음에 서비스로 나오는데, 그다음엔 추가요금이 있더군요.

양념 치즈 쪽갈비.

술안주와 저녁식사 겸해서 참 좋은 메뉴예요.

어묵탕도 서비스로 작은냄비 하나로 나오는데 국물맛이 시원하고 맛있떠라구요.

그래서 다시 추가로 하나더 시켰어요.

이래서 술맛도 더욱 맛있게 느껴지는듯 합니다.

기분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곳 돈오락 쪽갈비 수영점이었습니다

돈오락 쪽갈비 수영점, 앞으로 스터디에서 자주 찾을듯한 곳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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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천 선소 유적지에 들렀어요.

물위에 새카만 새떼가 앉아 있습니다.

차가운 기온에 콧끝이 시큰합니다.

선소는 여천 선소부락에 있습니다.

천연적인 피난처이기도 했지만 굴강이라는 방파제를 쌓아 배를 보수하기도 하고

거북선을 최초 제작한 곳으로 전하기도 합니다.

유적지에서 나온 유물을 바탕으로 세검정과 수군기가 복원되어 있으며 대장간터는 간단히 복원되어 있습니다.

근처에는 돌로 만든 벅수가 세워져 있기도하며 선소 유적지 복원 사업은 계속되고 있습니다.여수는 이충무공과 깊은 유대관계가 있는 곳이지요.

전라 좌수사로 부임했고, 삼군통제사 본영도 여수였기 때문에 수군에게 가장 중요한 작전지역이었습니다.

또 세검정과 수군기는 1980년대에 발견된 유물에 따라서 복원되었는데, 주춧돌 간격으로 미루어 짐작으로 복원하였을뿐

그 크기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선소유적지는 인적없는 너무나 한산한 모습이었는데, 이곳에서 거북선이 만들어졌다니 역사적인 공간입니다.

잘 복원되어서 선조들의 호국 정신을 잘 이어가야겠습니다.

 

 

 

 

여수선소유적

 이충무공과 여수

임진왜란 일어나기 1년전인 1591년에 이순신은 전라좌수사로 이곳 여수에 부임

하여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였다.전라좌수영의 본영이었던 여수는 거북선을 처음으로 출정시킨 곳인데 1593년 (선조26년)8월부터 1601년(선조34년)

3월까지 삼도 수군통제영의 본영이기도 하였다. 이순신의 수군이 옥포,합포,당항포,율포,노량,명량,한산도등에서 거둔 승리는 조선이 왜적에게 7년 전쟁에서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여수에는 충무공 이순신의 발자취가 곳곳에 문화유적으로 남아 있다. 거북선을 최초로 만든 선소, 공이 공적을 새긴 통제이공수군대첩비,공을 추모하며 세운 눈물의 비석 타루비, 국내 최초로 세워진 이순신 사당 충민사가 있다.

또한 나라를 구하는데 앞장선 승려들의 흥국사도 있으며 송현마을에는 효성이 지극했던 공이 전쟁중에 어머니 변씨를 모셔와 보살핀 곳도 있다.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국가가 없었을 것이다. 라는 이순신의 글을 되새기게 하는 이곳 여수는 임진왜란때 위태로운 나라를 지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다.

새긴

 

 

 

 

 굴강 :임진왜란당시 거북선건조 및 대피했던곳

대장간터

물을 모으는 집수구와 쇠를 불에 달구어 버리는 단이로가 있는 것으로 보아 군기를 만들고 수리하던 대장간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면은 인위적으로 만든 흔적이 있다.암반의 중심부분에 직경 10~20 cm 의 자갈들이 있는데 여기서 물이 계속 솟아 나와 지속적으로 물이 공급되어야 하는 단야로를 설치하기에 적합했던 것으로 보인다.

 

 

세검정은 집무 및 지휘소 기능을 담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세검정 터에 남아 있던 주춧돌의 간격으로 보아 정면의 크기는 작아도 7칸에 길이 15.8m이었을 것으로 짐작 되는데 옆면의 크기는 알 수 없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1986년 맞배지붕의 앞면 은 7, 배 못들이 나온 것에서 군사 무기를 보관하던 창고로 추정되고 있다. 복원한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서향이다.

세검정과 수군기

 

 

 

 

 굴강

굴강은 조선시대 해안 요새에 만든 조그만 군사 항만시설로 선착장이자 방파제 역할을 하였다. 여기에 배가 머물며 고장 난 곳은 손보거나 군사 물자를 싣고 내렸다. '굴강'이라는 이름은 대피한 배를 보호하기 위해 방파제를 작은 만처럼 둥그렇게 만든 데서 유래한 듯하다.

면적 1388㎡,직경 42m 안팎의 타원형으로 거북선 두 체가 들어갈 만한 규모이다. 깊이는 돌벽 위에서부터 바닥까지 5-6m정도로 추정된다. 북쪽으로 폭 9m 정도 되는 ㅇ입구가 있다. 크기가 일정하지 않으나 대체로 40-50cm 정도 되는 자연석과 깬돌로 막쌓기를 하였고 남은 돌과 흙으로 뒤를 채운 것으로 보인다.

1980년과 1985년에 한 발굴 조사에서 나온 쇠로 된 화살촉, 못, 쇠붙이 같은 유물 565점을 국립광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국가지정 문화제 사적 제392호 여천 선소유적복원사업 예정지

 

 

 여수 선소부락 벅수

벅수는 돌로만든 장승인거 아시죠?

 

 

 

posted by 산위의 풍경

 

흥국사는 보물을 품은 천년고찰입니다.

여수 여행을 가기전에 여수관광 홈페이지에서 이것 저것 찾아 보다가

흥국사를 보게 되었는데, 홍교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여수 여행 가면서 꼭 흥국사에 가서 홍교를 보려고 했어요.

저녁 무렵에 도착했는데 바람이 세게 부는 겨울날,

을씨년 스러울정도로 쓸쓸해 보이는 사찰의 모습이 더 춥게 느껴지네요.

팔상전으로 올라가는 길은 신비한 느낌이예요.

홍교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이 군사훈련을 위해 지나가던 다리였다고 합니다.

전장터에 출전하기전 돌아와서 다시 이다리를 건널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의지를 굳건히 다지는 다리였을것 같습니다.

수군유물전시관도 있는데 무료지만,사진은 찍을 수 없다고 하네요.

흥국사의 대웅전 후불탱화나 홍교등 보물을 품은 천년고찰이예요.

너무 온기가 없는 모습에 좀 마음이 쓸쓸해졌네요.

저는 통도사나 해인사처럼 북적 북적하는 사찰일줄 알았는데

영취산 자락에 너무 오롯이 자리한 흥국사 사찰이 가슴에 찡하게 남네요.

다음번엔 좀  이른시간에 가서 생기있는 사찰을 만나보고 싶어요.

 

 

 

 

 

여수 흥국사 홍교

문화재지정번호 : 보물 제563호 / 문화재제작연대 : 1639년(조선 인조 17)

홍교는 흥국사의 입구에 세워진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로, 보물 제 56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639년 (인조 17년)에 계특 대사가 쌓은 다리 있다.

다리를 이루고 있는 석재의 재질은 화강석이고, 높이 5.5m, 홍예구의 너비 11.3m, 내면 너비 3.45m, 다리의 전체길이는 40m이다.

부채꼴 모양의 화강석 86개를 맞추어 틀어올린 홍예는 완전한 반원을 이루고 있어, 단아 하면서도 시원한 홍예의 양 옆으로는 한마리 학이 날개를 펼친 듯 둥글둥글한 잡석으로 쌓아올린 벽이 길게 뻗쳐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
면의 석벽은 이른바 난적 쌓기로, 무질서하면서도 정제된 석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석축 위에는 흙을 깔아 자연노면을 이루었다.

홍교 다리 바로 밑에는 울퉁불퉁한 바위가 솟아 작은 소를 이루고 있고, 물 속으로 보이는 바닥도 역시 너럭바위로 홍교는 암반 위에 세워진 다리인 셈이다.

흥국사 홍교는 사바세계와 불국정토의 상징인 계류 안쪽을 이어주는 상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홍예 중심머리돌에 용머리를 새긴후 돌출 시켜, 계곡을 굽어 보게 한 점이나, 홍예 난간 양쪽에 귀면상을 조각하여, 잡귀를 접근을 막아주는 것등 모두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신앙적인 요소들이 나타냄으로 보인다.
홍교의 축조에 대해서는 임진왜란뒤 국난에 대비하여 흥국사에 주둔하고 있던 승병들에 불안을 느낀 관아에서 지맥을 끊고자 홍교를 가설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300명이나 되는 승병들이 특별하게 하는일이 없이 흥국사에 주둔하게 되자, 절에서 그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 다리를 놓았다는 이야기가 더 설득적이다.
1981년 폭우로 일부 소실이 된 적이 있으나 이듬해에 모두 복구가 되었고, 선암사 승선교와 함께 빼어난 다리 건축물로 손꼽히는 다리이다.

 

=============================  여수관광 홈페이지에서=============================

흥국사 입장료

어른2000원

청소년,군경 1500원

어린이 1000원

단체  어른 2000원, 청소년.군경 1200원  어린이(30명)800원

 

 

흥국사 부도탑

 

 

 

 

 

 

 

흥국사 대웅전

 

 

 

 

흥국사 후불탱

대웅전 불상 뒤에 있는 불화로서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여러 대중들에게 설법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석가 영산회상도이다.

그림 한가운데 있는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있으며, 앞쪽 양옆으로 여섯 명의 보살들과 그 아래에 사천왕이 있다.

석가여래상의 바로 옆과 뒤편으로는 10대 제자를 비롯하여 여러 불자들이 조화롭게 늘어서 있다.

채색은 주로 붉은색과 녹청을 사용하였으며 꽃무니와 옷주름선 등에 금색을 사용하여 품격을 높이고 있다.

이 불화는 1693년(숙종19년)에 왕의 만수무강과 나라의 평안등을 기원하여 의천과 천신 두 승려 화가가 그린것으로

17세기 후반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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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0년 통일대사가 흥국사 대웅전을 큰 규모로 다시 지을 때 나온 부재를 바탕으로 하여 지은 듯 하다.

앞면 3칸, 옆면2칸으로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1917년에 영봉 스님이 팔상탱화를 조성했으나 1970년대 후반에 도난당하였다.

 법화 신앙이 흥한 사찰에 많이 지어진 팔상전은 흥국사 대웅전의 원래 규모와 면모를 간직하고 있다.

기둥에 배흘림, 안쏠림,솟음과 같은 오래된 건축 양식이 나타나며 불단 위에 아호자형 닫집이 있어 매우 호화롭다.

흥국사 불사의 연혁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인 조선 후기 명문기와가 50점 넘게 발견되었다.

 규모는 작지만 구성과 비례가 기품을 느끼게 하는 수작이다.

 

 

 

 

 

 

 

 

 

 

 

 

 

 

 

 

 

 

 

posted by 산위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