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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의 풍경
산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아픔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블로그기자단 기장군홍보단 기장군민필진 한국방송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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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8일  국제신문에서 개최하는 근교산 1000회 기념산행에 참가를 했답니다.

다른곳을 가는곳보다, 부산을 대표하는 금정산을 함께 걸어 본다는데 의미를 두고 참여해 보았습니다.

초대된분들은 50인 한정이었습니다만, 관계자분등해서 인원은 조금더 되는듯 합니다.

근교산 책과 스카프, 도시락을 받고나서 산행을 시작하지요.

바로 산성마을에서 시작하는 산행길은 그렇게 힘들이지 않는 부드러운 산행이랍니다.

산행들머리까지는 온천장전철역 건너편 버스정류장에서 203번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면 되었습니다.

약간 날씨가 흐려서 걱정이었는데 비가 내릴듯 꾸물꾸물되는 날씨였습니다.

국제신문사 산행대장님과 근교산 담당 기자등, 전에 담당했던분들도 참여해서 의미있는 산행이었습니다.

그동안 함께 산행하셨던 분들도 여럿 눈에 띄어서 무척 반가웠고, 남편을 처음 보는 분들도 있어서 서로서로 소개해 드렸습니다.

산성로를 건너 올라가는길, 낙엽길처럼 제대로 만추를 즐겼습니다.

미륵암에 도착했을때는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절집에서 소리를 내면 불경한데, 안개낀 절집에 노란 은행잎이 마당 한가득 깔려 있었습니다.

금화가 가득한 절집 마당에서 감탄사 연발이었답니다.

전에도 미륵암에 갔었는데, 그때는 꽃살을 못보았는데 이번에 보니 꽃살이 있었군요.

미륵암을 지나 다시 걷습니다.

힘든코스는 없는 부드러운 산길이라 다같이 걷기에 좋은곳이네요.

신랑과 같이 걷는길, 남편은 봄에 다시 오자면서 걷기 좋은길이라고 엄청 좋아 합니다.

그렇게 올라가서 점심을 먹는데 살짝 빗방울이 들고 찬 도시락은 한기를 느끼게 합니다.

식사 마무리를 하고 단체 사진 기념으로 남깁니다.

정상 고당봉을 향해 올라갑니다.

안개가 자욱하게 껴서 조망은 할 수 없습니다만, 안쉬운대로 그저 안개의 정취를 느껴 봅니다.

산행대장님의 안내로 금정산 금샘을 지나 남근석을 보고 범어사로 내려섭니다.

범어사으로 내려서는길은 아직 단풍이 남아 있어서 또다른 가을모습을 만납니다.

모처럼 반가운 얼굴들도 보고 근교산 1000회 기념 산행을 축하하는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근교산 1000회 축하드립니다. 국제 신문사에서 20년 넘게 산행 가이드를 내주어서 산행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산행지 함께 하겠습니다.

 

산행지 석문을 지나면서~

 

 

 

 

 

미륵암 절 마당 가득 금화가 깔렸다....................은행잎

 

 

 

 

 

절집 댓돌위에 자리한 백구

 

 

 

금정산 정상 고당봉

 

금정산 금샘

 

금정산 남근석

 

 

 

 

 

 

 

 

posted by 산위의 풍경

나홀로 친정가는길

 

결혼하고 25년동안 한번도 친정을 혼자서 간적이 없다니 놀랍네요.

생각해보니, 한번도 혼자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적조차도 없습니다.

늘 남편과 동행이었고 가족동반이었습니다.

이번에 혼자 나서는 길은 동창들과의 여행을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토요일 저녁에 나서면 새벽에 양평에 도착해서 바로 여행길을 떠날 수는 있지만

혼자있는 엄마곁에 잠깐이라도 있어야겠다 싶어서 금요일 아침에 출발했답니다.

동해선은 부전에서 청량리까지 한번에 갈 수 있습니다. 기장에서 기차를 타면 바로 양평까지 도착입니다.

차 한번만 타면 될 곳을 마음의 거리로 달려가지 않았는지 반성도 해 봅니다.

모처럼 딸래미 혼자 친정엘 오니 엄마는 무척 반기십니다.

또 막내 동생이 운전을 하니 좋은게 양평역까지 마중을 와서 엄마집에 딱 데려다 주니 참 좋은 세상입니다.

엄마가 계속 입맛이 없다고 하셔서 걱정이었습니다.

어제는 동생이 한우를 사 드려도 제대로 드시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오늘은 오리고기 드시러 가자고 했더니 흔쾌히 따라 나섭니다.

고기도 잘 드시고 식사도 좀 하셔서 다행입니다.

집으로 돌아와 엄마가 좋아 하시는 고스톱 놀이를 해 드립니다.

주머니에 있는 잔돈은 싹다 털어서 게임을 시작합니다.

딸들과 이렇게 노는것 정말 좋아 하시는 엄마입니다.

엄마는 혼자 계셔서 자식들이 많이 그리웠을 겁니다.

그마음을 조금은 알기에 엄마와 실컷 놀아 드립니다.

친구들과의 여행약속이 아니었으면 어쩌면 엄마한테 와볼 생각도 안했을지도 모릅니다.

엄마와 하룻밤을 지내고 동창들과 약속시간때문에 새벽일찍 집을 나서는길

엄마를 꽉 안아 드렸습니다.

"엄마, 건강하게 지내세요~"  엄마도 딸래미 건강 잘 챙기며 지내라고 당부하십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들과 버스로 강화도 석모도 여행을 떠났습니다.

여행은 즐겁고 신나지요. 오랫만에 만나도 어릴때 친구들이라 허물없고 어제 만났던듯 반가운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초지진을 들르고 석모도 보문사를 향해 갔습니다.

보문사 뒷쪽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까지 올라갔다왔습니다.

이제 막 단풍이 든 절집에 고목들이 마지막 화력을 다하듯이 붉게 물들고 있었습니다.

사찰 구석 구석을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사진을 찍고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여행을 마치는 순간, 아쉬운 작별의 순간이지요.

돌아올때는 서울 장안역에 내려서 지하철로 서울역으로 와서 KTX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왔습니다.

부산에서 양평까지 친구들 여행 모임에 참석해 줘서 고맙다고, 마음먹기 쉽지 않을텐데 와줘서 고맙다는 친구들에게

더 고마운 하루였습니다.

얼마나 살갑게 챙겨주던지요.

이래서 정말 친구가 좋은거지요.

마음조차 쓸쓸해지기 쉬운 가울, 뿌듯하고 기쁨 한가득 담고 왔는데,

동창 한명이 쓰러져 운명을 달리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에 마음이 또 쿵 내려앉았습니다.

나이 아직 오십도 안된 동창들이 너무나 빨리 운명을 달리 하니 말입니다.

원래 여행도 같이 가기로 했었는데 일때문에 못왔다는 친구는 그렇게 쓰러져 친구들과 말한마디 못하고 유명을 달리 했습니다.

마음이 버겁고 힘든가을이 되었네요.

우리, 건강 잘 챙겨야 겠어요.

역시 오는것은 순서가 있어도 갈때는 순서가 없다는 어른들 말이 백번 천번 지당한 말씀이네요.

 

 

 

 

 

보문사 중심에 자리한 극락보전은 정면 5칸측면 3칸에 내부 60평의 규모로 1972년 정수스님이 중수하였습니다. 법당 내부는 상단에 아미타부처님과 대세지보살, 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고 중단에 지장보살, 대세지보살, 관세음보살과 신중탱화가 하단에 영가단이 모셔져 있습니다.

또한 상단 뒤편으로 삼천 옥부처님이 법당에 장엄함을 더하고 있습니다. 삼존불 위로는 닷집이 조성되어 있으며 천정의 좌우로 각 하나씩 용상이 지나다니고 또다른 한 쌍의 용상이 전각의 안에서 밖으로 머리를 내미는 형태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전각의 출입문은 채색된 꽃 무늬 문살로 소박한 멋을 더하고 있습니다.

-극락보전 안내문-

 

 

 

 

 

 

보문사 윗쪽 바위에 새겨진 마애석불

 

 

 

 

 

 

보문사 와불전의 와불은 열반하는 부처의 누워있는 모습으로 본래 보문사에 있는 천인대라는 바위레 새겨 조성하였다.

천인대는 이절의 창건 당시 인도의 한 큰스님이 불상을 모시고 이 천인대에 날아왔다고 한다.

그뒤 이 바위는 법회 때 설법하는 장소로도 사용되었는데 이 바위 위에 일천명이 능히 앉을 수 있다고 하여 천인대라고 한다.

전각의 내부는 부처님의 뒤로 공간이 있어 주위를 돌면서 참배를 할 수 있다. 부처님의 누워계신 모습과 손의 모양, 불의의 주름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고 운양이 새겨진 열반대는 구름모양이 수려하고 아름답게 조각되어 있다.

1980년에 조성을 하여 2009년 3월에 조성 완료되었다. 너비 13.5M, 높이 2M이다.

 

보문사 와불

 

 

신라 선덕여왕때 건립한 보문사는 나한상을 모신 보문동천으로 유명하다. 한때는 보문사 승려와 수도사들이 300명에 이르렀다고 하는 데 이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때 사용했던 맷돌이 아직도 남아 있다. 보문사 맷돌은 크기가 지름 69CM, 두께 20CM로 일반용 맷돌보다 두배 정도 큰 화강암 맷돌이다.

 

보문사 맷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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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허파같은 곳, 곶자왈

곶자왈이란

화산이 분출할 때 점성이 높은 용암이 크고 작은 바위 덩어리로 쪼개져 요철(凹凸)지형이 만들어지면서 나무, 덩굴식물 등이 뒤섞여 숲을 이룬 곳을 이르는 제주 고유어.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제주의 곶자왈을 가장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곳이 어디일까?

에코랜드를 추천합니다.

산행을 자주 안하는 분들이라면 산에 오른다는 것을 두려워 하거나 힘들어 하시는데,

제주 곶자왈 에코랜드는 작은 기차를 타고 곶자왈을 돌아 볼 수 있는
여행 상품입니다.

메인역에서 출발해서 에코브리지역에서 하차를 하면 수상 데크길을 산책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숲속에 호수가 있는것도 참 신기합니다.

걸어서 레이크 사이드역까지 갈 수 있습니다.피크닉 가든역, 라벤더, 그린티&로즈역을 돌아 다시 메인역으로 돌아 옵니다.

정말 편안하지만 제주의 허파인 맑은 공기와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곶자왈을 제대로 즐겨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찻길 옆으로 펼쳐져 있는 숲길은 밀림을 보듯 우거져 있는데요, 지금쯤이면 가을도 흠뻑 즐길 수 있는 곳이 되었겠군요.

여름에 다녀왔는데, 더위에 걷기보다는 기차를 타고 이동하니까 정말 편안하다 싶었거든요.

걷기를 즐기는 필자도 색다른 여행 경험이었답니다.

에코랜드.

작은 기차들을 타고 역에 내려서 걷기도 하고~

예쁜 역에서 사진도 찍고,,, 그렇게 즐겼던 에코랜드.

다시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남편과 같이 갔던 곳이라 더 기억에 남는것 같아요.

다음번에 제주를 간다면 다른계절에 다시한번 들러보고 싶어요~

 

 

posted by 산위의 풍경

구봉산이 올려다보이는 주차장에 버스가 도착했을때, 빗줄기를 뿌리고 있는 날씨,

베낭에 덮개를 씌우고 우비를 입고, 가져간 카메라는 우중에 촬여오 못할것 같아 베낭에 집어 넣어버리고,

이번 산행 기록을 할 수단은 방수팩에 넣은  휴대전화뿐이었어요.

구봉산을 향해 걷는데 단 1시간을 못 걷고 입었던 우비와 안경까지 벗고 말았습니다.

땀이 차고 덥고, 안경은 앞이 안보일정도로 뿌옇게 되고, 이번산행은 총체적 난국입니다.

비 맞기는 정말 싫어 하지만 앞이 안보이니 어쩔 수 없고, 더워서 우비를 입고 걸을 수가 없어요.

일단 정리를 하고 나서 다시 걷기 시작합니다.

최근 유행하는 다이어트, 고지방다이어트를 하면서 탄수화물을 안 먹었더니

산행초반 급격한 무력감이 엄습합니다.

다리에 힘도 풀리고 걷기도 싫어집니다.

산행하면서 걷기가 싫다니......그렇지만 정상을 향해 가야하지요.

구봉산은 아홉개의 봉우리를 지나는 산행으로 작은 봉우리들을 오르는 재미가 있는 산행인데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봉우리 표시를 못보고 지나갈 수 있습니다.

구봉산 일봉은 산행 진행방향보다 아래에 있어서 내려갔다와야 해서 그대로 통과를 해버리고 2봉을 향해 걸었습니다.

오르는 길는 위험한 곳엔 철로된 손잡이들이 있어서 안전장치를 해 두었지만, 곳곳에 부서진 곳이 있어서

시설정비가 필요해 보입니다.

구봉산의 매력은 구름다리에서 최정점을 맛볼 수 있습니다.

비가 그치면서 운해가 갈라지며 드러내는 구름다리는 대단했습니다.

고도가 높다보니 바람도 엄청 불어서 구름다리 지나가는 동안 추웠습니다.

 

공중에서 바라보는 구봉산의 모습, 아찔한 맛도 나네요.

그렇게 멋진 구봉산 구름다리때문에라도 꼭 한번 가볼만한 곳인듯 합니다.

이제 출출하니, 점심을 먹고 가야겠지요.

버터에 구운 삼겹살과 김치, 방울토마토등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경치를 보는데 빠졌습니다.

비가오는날은 귀찮기도 하지만, 이렇게 멋진 운해속 산너울을 보는 기분이 있습니다.

올라오지 않으면 절대 볼 수 없는 모습이지요.

방수팩에 담은 휴대전화로 찍어서 사진들이 부옇지만, 눈으로 직접 보았던 산의 풍경, 그것이 하나의 추억으로  쌓이는 것이지요.

이제 정상을 향해 가는길, 점점 단풍의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제 단풍이 시작되었네요.

정상쪽으로는 제법 단풍이 들어서 또다른 기쁨을 주네요.

구봉산 정상을 지나고 나서 하산길은 지루하지 않을 만큼 틈틈히 짬짬히 산행의 묘미를 맛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아기자기한 올내림,  산행을 시작할때부터 마칠때까지 알찬 산행을 할  수 있는 곳이네요.

구봉산 산행,  진안의 알찬 산행중 한곳으로 기억될 듯 합니다.

기분 좋은 산행, 가을 산행지 좋은곳 진안 구봉산 산행이었습니다.

산행은 10월 8일 다녀온 산행입니다.

 

 

 

 

선명한 사진은 비가 그친후 청산 산악회 산행 대장님이 찍어주신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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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사는 설악산 산행때마다 지나가보기는 여러번 했는데, 실제로 들러본적은 없는것 같네요.

이번 토왕성 폭포 산행을 마치고 시간이 많이 남아서 다른 산악회원들 기다리는 시간에 남편과 둘이서 둘러 보는 시간이 생겼네요.

우선 신흥사 입구에 커다란 좌불상이 있는데, 이 불상 본체안에  또 불상이 있더군요.

불상을 마주본 방향에서 왼쪽으로 돌아가면 지하로 들어가는 계단이 있어요. 그곳에 들어가보면  불상을 만나시게 된답니다.

신기했어요.

이곳을 본후 천천히 걸어서 신흥사쪽으로 가 봅니다. 사대천왕문안으로 걸어들어가면서 보제루를 통해 사찰로 들어서게 되는데,

기둥하나로 말해주는 신흥사의 역사를 보는것 같습니다.

설악산의 모습과 절집 지붕이 만나는 모ㅡ습은 굉장한 아름다움과 감동이 있었습니다.

불교에 대해 잘 모르고 또 절집 에절도 잘 모릅니다만, 그저 둘러 보는 방문객 입장이라도 대단한 신흥사의 모습을 바라다 봅니다.

신흥사가 이렇게 오래된 사찰인지도 처음 알았습니다. 진덕여왕때 자장율사가 창건하고 의상대사가 중창하고 조선시대 여러차례 중창되었다고 하네요.

극락보전은 조선시대 후기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합니다.

신흥사 절내는 한참 돌아다닐만 합니다.

주변에는 공원처럼 꾸며져 있어서 산책하기도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http://www.sinheungsa.kr/ 신흥사

雪嶽山 新興寺 由來

이 가람은 신라(新羅) 진덕여왕 6년(서기652)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여 향성사(香城寺) 라고 하였다.
이 이름은 불교의 중향성불토국(衆香城佛土國)이라는 글에서 따온 것인데 중향성(衆香城)은 금강산(金剛山) 철위산(鐵圍山)을 의미하며 불토국(佛土國)은 부처님께서 교화 할 대상적 국토라는 의미와 정치적 형태의 국가라고 하는 뜻과 어울린 말이다.

처음 향성사지는 지금의 켄싱턴호텔 자리에 세워져 46년간 존속하다가 효소왕 7년(서기 698)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그 당시 9층이던 향성탑이 현재 켄싱턴호텔 앞에 3층만 남아 있어 옛 향성사의 역사를 말해주듯 옛날을 잊지 않게 하고 있다.

향성사가 화재를 당한지 3년 후 의상조사께서 능인암(현재 내원암)터에 다시 중건하고 사명(寺名)을 선정사(禪定寺)라고 개칭 하였다. 그 후 946년간 수많은 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 정진하여 왔으나 조선 인조20년(서기1642)또다시 화재가 발생하여 소실된 것을 2년후 영서(靈瑞), 혜원(惠元), 연옥(蓮玉) 세분의 고승들께서 중창을 서원하고 기도 정진 중 비몽사몽간에 백발신인이 나타나서 지금의 신흥사 터를 점지해 주며 “이곳은 누 만대에 삼재가 미치지 않는 신역(神域)이니라” 말씀 하신 후 홀연히 사라지는 기서(奇瑞)를 얻고 절을 중창하니 지금의 신흥사이다. 절 이름을 신인(神人)이 길지(吉地)를 점지해 주어 흥왕(興旺)하게 되었다 하여 신흥사(神興寺)라 한 것이다. 6·25사변때 고성군 건봉사는 전소되었고 영북지역의 대본산 기능이 마비되었을 무렵 고암, 성준 두 스님의 원력으로 여기 신흥사를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로 승격하여 업무를 이관하게 되었다. 이후 신흥사는 영동지역의 불교를 새롭게 일으키는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중요한 불사를 전개해 나갔다. 속초노인복지관을 개관하고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등 지역사회에서 사회복지사업에 헌신하는 한편, 춘천에는 불교방송지국을 개국하여 포교에 전념하는 사찰이 되었다. 이렇게 지역사회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자 신흥사가 과거의 신흥사가 아니라 새로운 신흥사가 되었다며 신흥사(新興寺)의 귀신 신자(神字)를 시대에 맞게 새로울 신자(新字)로 고쳐 사용하자는 중론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1995년부터 영동불교를 새로 일으킨다는 서원을 담아 사명(寺名)을 신흥사(新興寺)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흥사 홈페이지의 신흥사 소개

 

 




 

 

 

 

 

 

 

 

 

 

 

 

 

 

 

설악산 신흥사 통일대물 내원 법당

 

 

 

 

 

 

 

 

 

 

 

신흥사 극락보전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4호

 

이 건물은 신흥사의 중심 전각으로 조선시대인 1647년 (인조 25년)에 지었다. 극락보전은 극락세계의 주인공인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봉안하는 보배로운 전각이라는 뜻을 지닌다. 아미타불은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계시면서 영원토록 중생을 교화하는 분이다.

그래서 무량수불 부량광불이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에는 일찍부터 아미타신앙이 성행하였고 많은 사찰에 극락보전. 무량수전 또는 미타전이 들어서 아미타불을 봉안 하였다.

고통의 바다에 살고 있는 무릇 중생은 누구나 지극한 행복을 원하다. 이 지극한 행복을 극락 또는 안양이라 하는데 누구나 올바룬 깨달음을 통해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이 바로 아미타불이시다.

신흥사 극락보전은 창건후 1750년(영조26년)과 1821년(순조21년)에 각각 중수되어 조선시대 후기의 건축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다.

건물의 크기는 190㎡로서 목조와가 이며 원형보존이 잘 되어 있다.

안에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측에 관세음보살과 우측에 대세지보살을 함께 아미삼존상을 봉안 하여 극락세계의 광경을 나타냈다.

신흥사 극락보전 안내문에서.............

 

 

 

 

신흥사 보제루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4호

1770년 (영조46년)에 세워진 것으로, 장대석으로 2단 쌓ㅇㄴ 기단 위에 정면 일곱 칸, 측면 두 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이 건물은 극락보전을 중심으로 선방과 요사채로 둘러싸여 있는 마당을 둘러싸 사찰 중심 영역의 공간성을 확보해 준다.

건물의 하부는 기둥으로만 구성된 열려 있는 공간으로 극락조전으로 가는 통로가 된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규모가 커진 모습을 보여주느 보제루 내에는 법고와 목어, 대종, 경판이 보관되어 있고

몇몇의 현판과 중수기가 걸려 있다. 이 주에는 이 사찰이 왕실의 원찰이었음을 보여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보제로 안내문에서.

 

 

 

 

신흥사의 꽃살이 너무 예쁘다.

 

 

 

 

 

신흥사 사대천왕문

 

신흥사 부도탑

 

신승사 부도군

 

신흥사는 신라 진덕여왕6년(652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여 향성사라 불렸으나 효소왕10년(701년)에 의상대사가 중건하고

선정사로 개칭 하였으며 조선인조 22년(1644년)에 사찰을 중건하고 신흥사로 개칭 하였다.

부도군에는 모두 17기의 부도가 있는데 원당형이 7기이고 석종형이 10기이며 부도명이 있어 주인공을 알 수 있는 것이 12기이다.

부도와 함께 6기의 비석이 있는데 모두 1779년부터 1827년 사이에 세워진 것이다.

이곳의 부도는 모두 조선 후기의 것으로 신흥사 중창이후 역대고승들의 부도가 단일 장소에 집중된 전형적인 부도군이다.

 

 

 

설악산과 어우러진 신흥사 경내,

 

 

 

 

 

 

 

신흥사 삼성각

 

posted by 산위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