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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의 풍경
산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아픔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블로그기자단 기장군홍보단 기장군민필진 한국방송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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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산 산행다녀왔습니다.

상주 백악산, 암봉산행입니다.

들머리는 화북 초교 입석분교장에서 출발해서 물안이골-수안재-이정표-암봉(돔형바위)-백악산 정상-헬기장-강아지바위-너럭바위-석문사-옥양폭포-옥양교까지의 코스입니다.

멀리 문장대 관음봉을 조망할 수 있는 산행으로 오름과 내림의 묘미가 있는 산행입니다.

암봉에 약한 필자는 다리에 꼭꼭 힘을 주고 걷다보니 약간의 피로감이 더해집니다.

부산에서 출발해서 화북초교 입석분교장에 도착해 거의 11시가 되서 산행을 시작하게 되었고 수안재에서 점심식사를 합니다.

돔형 암봉은 점심먹고 오르다 보니 상당히 몸이 무겁습니다. 식사하고 바로 출발해서 말입니다.

전체 산행시간은 5시간 15분인데, 걷는시간은 4시간 30분정도 10km를 걸었습니다.

점심시간이 45분정도 걸린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산행코스가 좋다보니, 빠르게 걸으면서 조망을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같이 온 산악회는 처음 같이 한 산악회인데 전체적으로 상당히 걸음이 빨라서 모처럼 바쁜 걸음으로 산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옥양교에서 하산주를 먹는데, 이 산악회는 하산주를 무려 삼겹살을 굽네요.

보통 산악회 하산주는 막걸리나 소주. 필자는 맥주파라서 개인적으로 매점에서 맥주를 사먹었더니,

산악회에서도 맥주를 공급해 주네요. 산악후 시원한 맥주한캔 진리입니다.

좋은 산행을 해서 기분좋은 휴일을 보냈습니다.

 

 

 

posted by 산위의 풍경

문경 희양산 자락에 위치한 봉암사를 찾았습니다.

부처님 오신날만 개방한다길래, 희소성을 생각해서 여행카페에서 신청을 했지요.

들어가는 도로부터 차가 꽉 막혀  밀리기 시작하는거 보니 봉암사를 가보는것이 귀하긴 귀한가봅니다.

봉암사는 참선승방이라 초파일에만 개방을 한다니까요.

 

입구에서 버스에서 하차, 길을따라 걷습니다. 맑은물 흐르는 계곡이 시원하게 흐릅니다.

초파일에 개방하니 방문객이 많아 덩달아 푸드트럭들이 사찰들어가는 입구 도로에 즐비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절집에 들어서면서 깜짝 놀랐어요.

오잉??? 연등이 즐비하게 달려 있는데 모두다 흰색이더라구요. 아~ 참선승방이라 그런가보다 했는데 답사 대장님이

스님께 여쭤봤더니 연등은 마음이라고 하셨대요. 흰색은 무슨색이든 담을 준비가 되어 있는 색이라 그런가 하는 생각도 됩니다.

봉암사에서 찾아봐야 할곳들을 알려 주셨는데, 마애보살좌상,정진대사원오탑비, 정진대사원오탑,지증대사적조탑,지증대사적조탑비

봉암사 삼층석탑등이 있네요.

특히 마애보살좌상은 사찰에서 15분정도 올라가서 계곡가에 위치해 있는데  넓은 암반위에 자리해 있어 휴식공간으로도

참 좋은곳이예요. 마애여래좌상을 보고 계곡에 앉아서  흐르는 계곡물소리를 들으며 쉬니까 편안하니 좋았습니다.

그냥, 누워 있으면 잠이 솔솔 오겠다 싶은곳이예요.

봉암사 뒤쪽으로 희양산 암벽산이 우뚝 솟아 있더라구요.

조용한 산사, 특별히 초파일 하루만 개방된다는 곳을 찾아 마음의 힐링을 얻고 왔습니다.

참으로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잘 보존되었으면 합니다. 오늘도 행복하루 보내셔요 ^^

 

봉암사 마애보살좌상(유형문화재 제121호)

봉암사 마애보살좌상은 17세기에 조각된 것으로 전해지며 관련 기록에서는환적 의천 선사(1603~1690)의 원불이라 한다.

높이4.5m폭4.4m로 국내 마애불 중 비교적 큰 편이다. 머리 주위는 약간 깊게 파서 광배를 겸하는 듯하게 조각하였고,

불상을 모시는 방인 감실처럼 만들었다. 머리에 쓰고 있는 보석 왕관의 중앙에는 꽃무늬가 있고,

오른손은 위로 들어 연꽃 가지를 들고 있으며, 왼손은 가슴에 얹어 연꽃 가지를 받치고 있다.

결가부좌한 자세이며, 무릎이 넓고 높아 안정감이 있다.

 

봉암사 지증대사탑 (보물 제137호)

이 탑에는 봉암사를 처음 건립한 지증대사(824~882)의 사리가 모셔져 있다.

팔각원당형의 이 탑은 신라 헌강왕8년(882년에 세워졌으며,

여러 장의 판석으로 짜여진 방형의 지대석 위에

 각부의 장식 조각이 섬세하고 수려하게 제작되어 신라 사리탑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탑의 높이는 3.41m이며 지대석 너비는 2.28m의 당당한 탑이다.

지증대사는 경주김씨로 17세에 부석사 경의율사로부터 구족계를 받고 승려가 되었다.

헌강왕7년(881)에 왕사로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봉암사로 들어와 이듬해인 동왕8년(882)에 세상을 떠났다.

헌강왕은 대사의 시호를 지증, 탑호는 적조라 내렸다.

 

-봉암사 지증대사탑-안내문

 

 

문경 봉암사 3층석탑(보물 제169호)

이탑은 댓돌에 해단하는 기단부 중심이 되는 탑신부 꼭대기의 머리장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적인 통일신라의 석탑은 기단이 2단이나, 현재 땅위로 드러나 있는 이 탑의 기단은 1단이다.

 특이한 것은 지면과 맞닿아 있어야 할 탑의 받침돌 밑면에 또 하나의 받침이 있어

혹시 이것이 아래층 기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넓어 보인다.

 또 하나의 특징은 머리장식 모두가 완전히 남아 있어서 한국 석탑의 기준이 되는 귀중한 유례라는 점이다.

 탑의 머리장식은 인도의 탑에서 유래했으며 인도탑의 소형화가 우리나라 탑의 머리에 적용되었다.

탑의 가장 윗부분에 놓이며 여러 개의 구성요소가 차례로 올려져 가장 장식적으로 마련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9세기 통일신라 현덕왕(재위 809~826)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탑은 기단 구조가 특이하고

탑신의 각 층 비례와 균형이 적절하여 아름답다.

 

-문경 봉암사 3층 석탑 -안내문

 

 

posted by 산위의 풍경

 

밀양위양지

얘기는 많이 들었던 곳이지요.

반영

사진이 엄청 많이 올라오는 곳이고요~

이팝나무가 필때 절정의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곳이지요.

정말 가보고 싶었습니다.

10여일전 밀양에 갈 일이 있어 저녁무렵에 들러보았던 위양지

점점 어두워져 한바퀴 돌 수가 없어 아쉬워 하며 돌아왔어요.

5월의 첫날 남편이 흔쾌히 길을 나서주는 덕분에 위양지를 다시 한번 들러봤습니다.

가볍게 위양지둘레를 걸어 볼 수 있는 곳이라 가족들이 같이하기 좋은 곳인것 같습니다.

사진을 하는 사람들은 대포 렌즈를 끼우고 자리하고 있더군요.

어디서 찍힐 지 모르는 사진, 약간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하네요.

내 의도와 상관없는 사진이 찍히는걸 싫어 하는데, 한바퀴 돌 동안에 저 많은 셔터가 눌러졌겠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위양지 풍경에 흠뻑 빠져서 이것 저것 생각하지 않고 편안히 걸었는데 나중에 사진에 관한 생각이 들더라구요.

예전엔 사진 솜씨는 없으면서 자꾸 카메라만 욕심을 냈었습니다.

갖춰지지 않은 카메라와 렌즈에 불만이 가득 가득 했었는데

요즘은 마음이 좀 바뀐것 같아요.

어디 나설 때 필수품이었던 카메라를 들지 않는 것입니다.

그냥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직접 눈으로 보고 즐기는 시간를 많이 가지려구요.

어떻하면 사진을 잘 찍을까를 생각하면서 피사체를 대하다 보니 정작, 피사체 자체를 보는 즐거움을 놓치고 있는것 같더군요.

위양지의 정자에 갔더니 여성 사진가들이 몇명 앉아 있었어요

남편은 "대포 카메라 무겁지 않아요? 집사람도 한참동안 그렇게 들고 다니더니 요즘은 카메라는 던져두고 안가져 다니네요." 하더라구요.

무겁기도 하고 자꾸 더 좋은 카메라를 가진 사람들이 부럽고 또 사고싶고. 소비심리만 자꾸 키워지기에 그냥 던져두고 휴대전화만 들고 다니니

편하긴 엄청 편했어요. 그런데, 가끔 화질이 떨어질 때 카메라 갖고 갈 걸 하는 아쉬움이 있을때도 있어요.

어느날 갑자기 또 미친듯이 카메라를 들고 나설지 모르지만, 오늘은 휴대전화로 즐기는 밀양 위양지 모습을 남깁니다.

이번주말까지는 위양지의 이팝나무 꽃을 즐기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계절의 여왕 5월입니다.

가족과 함께 주말 떠나 보는건 어떨까 싶습니다.

 

밀양 위양지는 2016년 16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우수상)을 수상했다고 합니다.

 

신라와 고려시대 이래 농사를 위해 만들어졌던 둑과 저수지이다. 위양(位良)이란 양민(良民)을 위한다는 뜻으로, 현재의 못은 임진왜란 이후 1634년에 밀주 부사 이유달이 다시 쌓은 것이라는 기록이 있다. 안동 권시가 세운 완재정이 있고, 둑에는 아름다운 꽃과 희귀한 나무들이 심어져 뛰어난 풍광을 즐길 수도 있었던 곳이라 한다. 현재까지도 안동 권씨 집안에서 관리하고 있다. 조선후기와 근대의 기록을 보면 못의 규모는 점차로 축소되어 왔으나 저수지라는 경제성과 연못이라는 경승지의 성격을 아울러 가지고 있었던 곳이었다. 연못의 주변에는 화악산. 운주암, 퇴로못 등이 있다.

 

 

밀양팔경 위양못 이팝나무

위양못 가운데에 다섯 개의 작은 섬이 있으며 둘레에 크고 작은 나무로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는데 이른 봄 못가에 피는 이팝나무로 유명합니다.

 나무 전체가 하얀 꽃으로 뒤덮여 이팝, 즉 쌀밥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봄비 내리는 위양못가는 걷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곳입니다.

posted by 산위의 풍경

 

봄꽃은 겨울의 모진 시간을 지나온 것에 비해 너무나 빨리 져버리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어찌 어찌 하다보니 벌써 봄꽃들이 져가고 있어요.

매화꽃이 보고 싶어서 길을 나서봅니다.

기장에서 동해선을 타고 부전역으로 갑니다.

부전역에서 무궁화 기차를 타면 원동역으로 갈 수 있어요.

원동역 순매원은 접근성이 참 좋더군요.

낙동강가에 위치해서 말입니다.

활짝 피어 있었으면 좋으련만, 벌써 매화가 지고 있었어요.

좀 더 일찍 나서야 했었군요.

아쉽지만, 그래도 길을 나서서 이렇게라도 꽃을 본 것에 만족해야 겠어요.

지인 언니랑 같이 와서 꽃구경에다가 사진도 찍고 원동에서 유명한 미나리 삼겹살도 사 먹고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네요.

대중교통으로 나섰더니 편안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어요.

지난주에 차량으로 왔을때는 차가 밀려 3시간이나 걸렸는데 결국엔 차 세울곳이 없어서 밀리고 밀리다보니

매화축제 하는곳은 지나쳐버려서 꽃을 못봤었거든요. 얼마나 아쉽던지 이렇게 대중교통으로 다시 와 봤습니다.

곧 벚꽃도 필 듯 합니다. 이제 봄꽃 만발할테니 빨리 봄을 즐겨봐요.

오늘도 기분좋은 하루이시길 ...

posted by 산위의 풍경

봉화여행의 백미는 고택숙소를 이용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봉화여행을 하면서 이틀을 자야해서 숙소 두곳을 고택으로 이용해 보았습니다.

봉화군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관광 휴양을 클릭해서 문화&관광정보를 보면  숙박/음식을 클릭하고 고택체험 메뉴에 들어가면 여러 고택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봉화여행을 동행한 일행 3명이 묵을 곳을 만산고택에 전화를 해서 예약을 했습니다.

만산고택은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에 있는 사대부 가옥으로 조선말기 문인 강용(姜鎔)이 1878년 (고종15년)에 건립한 것으로 이집 이름인 만산(晩山)은 선생의 아호라고 합니다. 봉화 목재문화 체험장에서 만산 고택에 관한 설명이 있었는데, 만산고택을 지은 목재가 바로 봉화의 유명한 목재, 춘양목으로 지은 집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인 조선 양반댁의 전형적 모습인것 같아요. 솟을대문 양옆으로 사랑채가 이어져 있고 솟을 대문 맞은편에 사랑채가 있으며,  사랑채 안쪽을 안채와 더불어 'ㅁ'자의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만산 고택의 묘미는 별당으로 지어진 '칠류헌'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만산의 4대손인 강백기 선생님 내외분이 살고 계십니다.

안주인이 칠류헌을 소개해 주시면서 자세히 보여 주셨는데요, 정말 머물고 싶은 공간이더라구요. 시원한 대청 마루는 여러 유명인사가 강연등으로 머무르셨다고 합니다.

강백기 선생님께서 귀한 만산고택의 현판에 관한 책자를 주셔서 아주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만산고택을 지은 강용선생의 아들인 강필선생님은 을사조약이후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다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네요. 택호인 만산은 흥선대원군이 작호하고 써준 현판이라고 해요.

정와(靖窩)는 고요하고 편안한 집이라는 뜻으로 강벽원(1859년~1941)조선말기 선비이자 서예가가 쓴 현판이래요.

또 존양재(存養齋)는 본심을 잘 보존하여 이치를 양성하는 집이란 뜨스로 이역시 강벽원이 쓴 글입니다.

존양재(存養齋) 오세창(1864년~1953년)3·1운동 민족대표 33인중의 한 사람이며 서예가가 쓴 '전서' 글도 있더라구요.

차군헌(此君軒), 書室등은 권동수로 조선 후기 문신 서예가가 쓴 해서라고 합니다.한묵청연, 어약해중천,사물제,백석산방,학습재,태고정,태고정기, 정와기,일신헌, 춘풍각,제월루등의 현판등도 있는데, 분실이나 유실 위험때문에 원본은 모두 다른곳에 있고 지금 만산 고택에 있는 현판들은 탁본으로 남겨진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많은 현판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교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이야기겠지요?

칠류헌도 오세창이 쓴 전서로 글씨가 예술작품 같았어요. 전서 말이예요. 그림같기도 한 칠류헌.

현판은 잘 모르지만, 글씨에서 느껴지는 기품이 있더라구요.

만산고택의 마당에는 백년 넘은 대추나무가 있어서 그것도 하나씩 따먹어 보고, 강백기 선생님이 추수해서 따다 놓으신 머루도 맛보았습니다.

안주인께서 도자기외 야생화 키우기에 일가견이 있으셔서 작품도 많고 아름답게 전시해 두셨어요. 한참을 볼거리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만산고택은 5월중순이후 야생화가 필때 가장 아름답다고 하셨어요. 그 무렵에 다시 가보고 싶어요. 만산고택에서 가장 자랑할 만한 곳이 칠류헌인것 같아요.

사랑채가 좁아서 찾아오는 손님을 다 맞이 할 수가 없어서 별채로 새로 지은것이 칠류헌이라고 하는데, 40~50명이 강연을 들을 수 있는 대청, 온돌방, 분합문등이 아주 눈에 띄었어요. 방송으로 알려진 유명인사들도 이곳에 많이 머물렀다고 합니다. 방에서 취사는 금지, 아침식사는 제공되지 않습니다.

여름에 시원한 대청 마루에서 뒹글거리는 시원함, 한옥 고택에서 느껴보고 싶은 여름날입니다.

만산고택에서만 느껴본, 한적함과 편안함, 오랜 기간을  사람과 함께 숨쉬어온 한옥, 우리의 멋이 깃들어 있는곳에서 머물러 보는 행운,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posted by 산위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