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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의 풍경
산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아픔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블로그기자단 기장군홍보단 기장군민필진 한국방송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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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다가기전에 단풍산행 한번은 가야 한다고,

가까운곳에 산행 간다기에 따라 나선길.

수태골에서 버스를 내렸을땐 울긋불긋 단풍이 고와서 신났다.

바람이 몹시 차다.

부산에서 대구까지 달려오는동안 짓궂은 날씨 덕분에 걱정을 엄청 했는데,

다행히 비가 내리지는 않는다. 그것만 해도 감사해야지.

산행은 바로 시작한다.

산으로 들어서자마자 단풍은 없다.

기대한것보다 날씨는 더욱 차고, 단풍은 벌써 말라 버렸으며, 산 능선으로 갈수록 헐벗은 나무는

벌써부터 이미 겨울차림새다.

나도 나무처럼 단단히 겨울채비를 해가지고 올것을.

수태골 폭포를 지나고 계단 계단 산꾼들이 싫어하는 계단이 이어진다.

폭포를 지나고 석사여래상이 있다는 표지판이 보이는데 발걸음을 떼기도 싫다.

가보고 싶긴한데 춥기도하고 컨디션이 좋지 못해서 힘을 아껴야 할듯 하다.

산세는 훌륭하다. 바위들이 능선을 이룬 동봉쪽으로 풍광이 아주 멋들어지게 펼쳐져 있다.

계단오르느라 용쓰던 힘겨움이 사라지는것 같다.

서봉 앞 헬기장에서 점심을 먹었다.

여럿이 둘러앉으니 진수성찬이다.

요즘 산행하면서 아주 간단식만 가지고 다녔는데, 모처럼 남편 산악회를 따라오다보니

이것저것 조금 챙기게 된다.

점심을 먹는데, 점점 서늘해지는 체온.

바람막이를 덧입어도 땀에 젖은 몸은 점점 추위에 약해진다.

따근하게 오미자차를 한잔 마시고 바로 출발한다.

20여분은 내리막길이라 잘 내려갔는데, 조짐이 이상하다.

점심먹은게 체했는가보다.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정말 한걸음도 떼기 싫다.

그래도 산꾼인데, 이런것도 견디어 내야지, 여기서 멈출수는 없다.

조금 느리게 걷자. 남편이 든든하게 옆에서 보조를 맞춰주고 있으니 이겨내야 하다는 마음속 다짐을 수없이 했다.

가도 가도 파계봉이 안나올것 같은 막막함.

이곳에는 조난신고용 표지는 정말 훌륭하게 잘 해 놨는데, 수태골부터 서봉 거리, 서봉에서 파계봉까지 거리, 파계봉에서 파계사까지 거리, 또는 파계봉에서 한티재까지 거리가 나와있지 않다.

그게 산행하면서 제일 갑갑했다.

산행 안내를 받을때는 4시간 30분짜리라고 했는데,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한티재까지 가는 시간이 그렇게 시간이 걸린댔는데,

한티재로 갔다면 여섯시간은 족히 걸리겠다.

파계봉에서 파계재까지 갔을때 빗방울이 들기 시작해서 선두 산행대장이 파계사로 내려가라는 전갈이 왔다.

선두산꾼들은 이미 파계재를 지났지만 도로 돌아와 파계사로 향했다.

조금 느리게 걸었더니, 이럴땐 이득이구만.

비옷을 꺼내입고 파계사로 내려가는길, 단풍이 곱다.

드디어 가을다운 단풍빛을 이제사 만났다.

그래 이런 가을을 느끼고 싶어서 이곳까지 왔지.

멋진 능선의 바위 암벽도 좋지만, 아직은 가을을 느끼고 싶었다.

겨울처럼 이른 쌀쌀함에 절망하다가 비까지 만나서 더욱 깊어지는 한숨이었지만 파계사 내려서는길의 단풍과 낙엽은 낭만적이었다.

그래, 이런 위안으로 우린 산행을 멈출수가 없다.

계획보다 힘들고 고된 산행이었지만, 그래서 이런 즐거움이 크고 더욱 감격하게 되지.

좋은산행 마무리 잘했다. 담주엔 또 고흥으로 떠나보자.

 

 

 

 

 

 

 

 

 

 

 

 

 

 

 

posted by 산위의 풍경

 

 

기영각

파계사 기영각은 연잉군의 탄생설화와 관련하여 조선왕실의 위패를 모시던 전각으로 조선 숙종 35년  현응조사가 성전암과 함께 창건하였다고 한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고 지붕은 아름다운 곡선미를 보여주는 팔작지붕이다.  기둥 위에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하여 설치한 공포는 혀처럼 앞으로 뻗은 두 개의 익공 위와 아래를 연화와 연봉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조선 후기의 이익공계 모습이다.

 파계사 지장전

 

 

 

 

 파계사 원통전

팔공산 서쪽 기슭에 자리잡은 파계사는 통일 신라 애장왕 5년 심지왕사가 창건한 절로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조선 선조 38년 에 중건하고 숙종 21년에 다시 고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파계사 원통전은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시는 법당으로 원통은 진리는 원만하여 모든것에 통해 있다는 뜻이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이고, 지붕은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맞배지붕이다. 기둥머리 위에는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커다란 역삼각형으로 짜 맞추어 장식한 공포가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놓여 있는 다포 양식으로 조선후기의 특징적 모습을 잘 갖추고 있다.

 

 

 

 

 

 

 

 영조대왕의 도포

영조대왕의 도포는 1979년 파계사 원통전 관세음보살상을 금칠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제작연대는 건륭 5년*1740)9월로 함께 발견된 발원문에 의하면 영조대왕은 탱불일천불을 희사하고 파계사를 왕실의 원당으로 삼았으며 영조대왕의 청사상도포를 복장하여 만세유전을 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영조대왕이 직접 착용하였따고 알려진 이 도포는 무늬 없는 실로 된 홑옷으로 연한 녹색 빛이다. 깃의 모양은 목판깃과 당코깃 모양이 합쳐진 반당코깃이 달린 것이 특징이다.

영조대왕 도포는 현품이 그대로 본전되어 있고, 형태와 색상이 거의 완전하여 옛 옷의 꾸밈새를 살펴 볼 수 있어 복식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

 

 기영각

 

 

 

 

 

 

 

 

 

 

 

 

 파계사 진동루

파계사는 9갈래로 흩어져 있는 물줄기를 모은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진동루 누각은 9줄기 물의 기를 진압하는데 파계사라는 이름으로도 부족하다 하여 지었다고 한다.

조선 숙종 41년(1715)에 처음 지은 후 1970년과 1976년 두차례의 보수를 거쳐 현재 모습을 갖추고 있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2층 규모이며 지붕은 아름다운 곡선이 돋보이는 팔작 이붕이다. 기둥 위에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하여 얹어 놓은 공포는 새 날개 모양의 익공 두 개가 짧게 앞으로 뻗어 있고 기둥과 기둥 사이의 중앙에는 당초넝쿨 문양으로 장식한 화반이 놓여 있는 이익공양식으로 조선시대 중.후기의 건축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영조임금나무

영조는 조선21대 왕으로 숙종의 2남으로 어머니는 숙빈 최씨이다. 탕평책을 실시하여 봉당정치를 혁파하고 균역법을 실시하여 조세를 감면하는 등 정조와 더불어 조선시대의 가장 찬란한 학문과 문화의 꽃을 피운 임금이다.

파계사는 왕실의 원당이자 현웅스님의 도움으로 영조임금이 탄생했다는 설화와 그가 입었던 도포(중요민속자료 제 220호)를 간직한 절이다.

따라서 사찰내 가장 크고 아름다운 250년 정도 된 이 느티나무를 골라 영조임금나무 라 이름지었다.

 영조임금나무

보호수

수종 :느티나무

수령 250년

 

 

 

 

팔공산 파계사 일주문

posted by 산위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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