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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의 풍경
산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아픔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블로그기자단 기장군홍보단 기장군민필진 한국방송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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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시작된지도 벌써 13일째, 새해도 시간은 잘도 흘러갑니다.

새해를 맞이해서 고향을 찾았습니다.

초등학교 , 중학교 친구들과는 밴드결성이 되어 있어서 종종 연락되는 친구들이 있지요.

"이번에 양평 가니까, 친구야 치맥한잔하자" 했더니 "그래, 꼭 연락해" 합니다.

그래서 첫째날은 가족과 함께 보내고 이튿날 친구들과 만날 약속을 했습니다.

막내동생이 저녁을 사는 바람에 가족들 모두 외식을 하러 나가서

친구가 픽업을 해서 약속장소 어도로 향했습니다.

음, 양평에 이런곳이 있었구나 싶네요.

화려한 상차림에, 금방 식사를 하고 왔는데도 맛나게 먹을 수 있었답니다.

친구들과 술한잔 편안하게 하면서 얘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은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갑니다.

멀리 부산에서 친구왔다고 고향에 사는 여자, 남자 친구들이 모두 모였네요.

덕분에 즐겁고 좋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역시 어릴때 친구들이 흉허물 없이 편안합니다.

무척 오랜시간 못보고 지냈는데도, 이렇게 환영해주니 너무 고맙지 뭐겠습니까.

간단히 치맥한잔 하려던 풍경이 친구들 덕분에 입이 즐거운 호사를 누리게 되었답니다.

맛있게 먹으며, 다음엔 엄마 모시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친구들과 살아가는 이야기, 추억을 함께 하며 고향의 푸근함을 마음껏 느낀 여행이었습니다.

양평 어도, 품격있는 식사가 있는곳, 손님접대하기 좋은곳이예요.

양평대교 건너 다리앞에 바로 있어요.

중요한 날, 특별한 식사를 할 수 있는곳을 찾으신다면 이곳, 어도를 추천해 드릴게요. ^^

 

 

 

 

 

 

 

 

 

 

 

 

 

 

 

 

 

 

 

 

posted by 산위의 풍경

추억여행 양평걷기

어릴때 보통 5리 10리씩 걸어서 학교에 가던일은 흔하디 흔한일이었습니다.

시골학교는 통학시간이 길게 마련이지요.

친구들과 걸으면서 수다를 떨기도하고, 비가오는 궂은날은 물 웅덩이를 가끔 지나는 자동차가 탁 튀기면서

지나가서 오물을 디집어쓰기도 하는 야박한 세월, 여분의 옷도 변변히 없던 시절에 그럴땐 참 난감했습니다.

친구들의 집을 방문해 본것도 몇번 안됩니다.

너나 없이 어려웠던 시절, 되도록이면 남의집에 끼니때를 피해서 가는것이 배려인 세월이었습니다.

학교 다닐때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마을 앙덕리라는 곳을 무심히 가보게 된 이번여행이었습니다.

새해 첫날을 맞아 친정어머니를 뵈러 고향을 찾았습니다.

첫째날은 우리 가족들 모두가 온 덕분에 왁자지껄 번잡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하룻밤 자고, 아침 일찍 맏언니가 귀가하러 나섰습니다.

배웅하러 나왔던 길에 그냥 바로 남편과 산책을 나섰지요.

개군 레포츠공원을 돌다 친정집으로 돌아오던길, 남편이 안내 표지판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앙덕리 고인돌 마을이 어디야"

" 나도 가본적 없어요. 우리 한번 가볼까?" 하며 걷게 된것이 동기입니다.

걸어서 터벅 터벅, 남한강 줄기를 바라보며 걷고 있었습니다.

구미리를 조금 못 갔을때, 강가의 버드나무들은 정말 압사 직전이 아닐까 싶을정도로 외래 식물덩굴들로 엄폐 아닌 엄폐를 당하고 있는겁니다.

저거좀 시원하게 제거해 줬으면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저 덩굴들이 없으면 훨씬 강가 풍경이 아름다울텐데, 덩굴에 둘러싸인 버드나무들은 꼭 쓰레기 더미처럼 흉물스럽습니다.

봄여름엔 너무 우거질테니, 지금 저걸 확 걷어줬으면 좋겠네요.

하염없이 걷다보니 구미리가 옛날 중요한 포구였다는 돌안내문이 있네요. ' 아, 이곳이 그런곳이구나 . 몰랐네' 하며서 지납니다.

캠핑장소를 지나면서는 산고개를 넘듯 산 가운데로 난 도로를 올라가야 합니다.

" 우아, 옛날에 친구들이 이길을 걸어다녔단 말이야? 멀다 멀어. 도대체 앙덕리가 어디야?" 하면서 걷습니다.

고인돌 마을 선사유적의 마을이라고 하니 궁금증이 일어 찾아 나선길, 남편은 도로 집으로 돌아가서 차를타고 오자며 그만 걷자고 하네요.

"이곳까지 왔는데, 집에 걸어갈 시간이면 도착하겠어요. 그냥 갑시다." 우격다짐으로 걷는길, 어른걸음으로도 한시간 가까이 걸어왔으니, 어릴적 친구들이 걷기엔 정말 먼 거리였겠다 싶은거 있지요. 아이고~ 친구들 통학하는게 엄청 힘들었겠구나.....

고개를 넘어가니, 왼쪽으로 '의병마을'이라는 표지석이 있네요. 춘천 의병장 무덤도 보이구요.

이제 거의 다 온것 같습니다. 오른쪽으로 " 개군산 900m"라는 안내표지판을 보고 돌아오는길에 저곳에 올라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앙덕리 도착전 오른쪽으로는 마치 유럽마을 같은  예쁜 집들이 많이 있어서 신기해 보이네요. 이 시골마을에 저런 예쁜집들을 지어서

살고 있는 사람들, 부럽네요.ㅋㅋ

앙덕리를 알리는 마을 안내석.

앙덕리쪽으로 걷다보니 고인돌이 어디있다는 안내문은 없습니다.

지나는 어르신께 여쭸습니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여기 고인돌이 어디에 있습니까?"

" 저기, 물탱크 보이지? 거기 왼쪽으로 있어~" 하십니다.

" 고맙습니다." 하면서 걸어갑니다.

물탱크에 그려진 고인돌은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고인돌 모습이었습니다만,

앙덕리의 남아 있는 고인돌은 그냥 넙적한 바위돌 하나 엎어져 있는꼴....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고인돌을 이곳에 옮겨놨는데, 그나마 가장 나은것은 대학 연구실에 가져갔고, 다른것은 수해로 유실되고  했다는

기록과 함께 남은 것은 이곳에 옮겨 두었다고 되어 있네요.

선사유적의 마을 앙덕리를 찾아가본 오늘, 씁쓸한 이 기분은 뭔지....

뭐를 기대하고 오진 않았지만, 그 흔적이 이렇게 원형보전이 안되고 사라져가고 있다니 안타까움만 한 없이 커져갑니다.

어른 걸음으로도 한시간이 넘는 이 길을 어릴때 꼬마 친구들은 참 오랜시간 걸었겠구나 추억에 젖는 여행이었습니다.

 

외래 식물 덩굴에 압사 당할것 같은 버드나무들,,,,,,갑갑해 보입니다.

저 덩굴들이 없으면 강가 풍경이 훨씬 아름답고 보기 좋을텐데,,,,안스럽네요.

엄청난 외래덩굴 더미들,,,,,꼭 쓰레기 더미처럼 강가의 흉물입니다.

 

 

새떼가 남한강무에 조로록 앉아서 노닐고 있습니다.

구미리, 호국 충열, 의병에 고장

앙덕리-구미리-하자포리 버스정류소

옛 구미포 나루터

곳: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 구미리

양평군과 여주군을 잇는 남한강의 중요한 한 나루터로서 선조25(1592)년 임진왜란때 강원도 조장방 원호 장군이 향병을 모아 왜군을 기습하여 50여명을 치고

왜장도 베어 이기고 양평 백성을 보호했던 향군이 승전한 나루터이다.

개군산 입구 정상 900m

의병마을

춘천의병장 이만응 묘

선사 유적의 마을 앙덕리

동네 어르신이 일러준 물탱크, 이곳 바로 옆이 고인돌 공원이다.

고인돌 공원 전경

 

 

앙덕리 지석묘

양평군 향토유적 제 39호

양평군 개군면 앙덕리 25-4

앙덕리 남한강변 강안사구의 사질 충적대지 내에서 발견된 지석묘는 총5기로 지난1974년 팔당댐수몰지구에

대한 문화재 조사시 1기가 발굴 조사되어 연세대학교 박물관으로 옮겨졌고

이후 앙덕,창대제방공사 시행 전 단국대학교에서 나머지 4기에 대한 발굴조사를 시행하였다.

이들 지석묘들은 대체로 상면이 편평한 개석 아래에 자갈돌로 부분적인 받침을 한 형태로 다량의 선사시대 유물이 출토되었

특히 주변 앙덕리 선사유적유물산포지와 연계할 경우 유물 분포상 유물산포범위가 넓고

퇴적상황을 고려할 경우 지하에 유구가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지역이다.

유적 및 유물의 시기 뚀한 신석기 시대부터 원삼국시대에 이르는 등 매우 넓은 시간 폭을 가졌으나

 그간 앙덕리 일대의 잦은 홍수범람에 의해 충위의 교란이 심하여 유구와 유물이 많이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

 1988년 마지막 발굴후 앙덕리 마을회관 앞에 방치되어 있던 고인돌을

주민편의와 여가활동을 위한 '앙덕리소공원조성'계획에 의거 2003년 현위치로 이동 복원한 것이다.

 

개군 앙덕리 고인돌 소공원

 

 

 

 

앙덕리 지석묘

앙덕리 건너편에 조성된 마을집들은 색다른 풍광을 연출하고 있어요.

 

 

posted by 산위의 풍경

어느날, 지인께서 수원화성과 융릉 건릉으로 여행을 간다고 같이 가려나 물어 오셨습니다.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이란 카페회원들이 함께 가는 답사라고 말이지요.

수원화성은 여러 차례 가본곳이지만, 또 가고 싶어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조선의 왕들중 정치적인면에서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던 임금으로 세종과 정조를 가장 좋아합니다. 개인적으로.

역대 가장 위대한 성군이 있다면 정조를 꼽고 싶을만큼 혁신적이고 백성을 사랑한 임금으로 효성이 깊은 임금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수원 화성은 정조의 업적중 가장 뛰어난 유산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정조대왕이 사후에 머물게 된곳, 건릉입니다.

건릉은 왜 이곳에 자리했을까요?

그것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현릉원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일텐데요.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메뉴처럼 등장하는 영,정조 시대의 파란만장한 당쟁의 희생양,

비운의 동궁 사도세자. 조선 고종이 장조로 추존하였기 때문에 현재는 융릉이 되었습니다.

사도세자는 당쟁으로 인해 아버지 영조에게 사사되는 비운의 동궁입니다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를 지키려면 사사된 동궁 이선을 죄인신분으로 두면 안되기에 사도세자로 신분을 복원하여 묘를 썼지요.

정조를 영조의 첫째 아들이었던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시켜 훗날 있을지도 모를 정통성의 흔들림을 차단해버렸습니다.

그러나 정조는 왕위에 올라 "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라며 죽은 아버지를 떠올리지요

정조는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으로 옮기며 현릉원에 모셨습니다.

그후 고종에 의해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존되면서 융릉이 되었던 것이죠.

융릉은 사도세자와 혜경궁홍씨를 합장한 왕릉이고

건릉은 정조대왕과 효의왕후를 합장한 왕릉입니다.

융릉으로 들어가는 숲길은 소나무 숲길로 걷는 편안함이 있습니다.

해설사님이 같이 가면서 해설을 자세히 해 주기 때문에 그 가슴아픈 효심 절절한 정조의

이야기가 가슴에 파고 듭니다.

묘에서 현릉원으로 융릉으로 죽어서도 신분의 변화를 겪게 된 사도세자.

화성여행, 융릉 건릉을 꼭 들러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다녀오게 되서 기쁩니다.

 

 

융릉, 건릉에 들어가기전 입구에 있는 향나무.......오랜세월을 몸으로 말하듯, 헐벗었지만, 근근한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네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조선왕릉

융릉 건릉 관람안내, 월요일은 쉽니다.

융릉, 건릉은 사적 206호입니다.

 

고요한 숲길이 평온해 보여 참 좋았습니다.

융릉에 들어가는 다리,,,,,이것은 사후세계와 이승을 구별짓는 의미이기도 하답니다.

 

융릉이 보입니다. 소나무숲에 둘러쌓인 왕릉은 편안해 보입니다.

곤신지, 융릉 들어가는 왼쪽편에 여의주처럼 동그랗게 연못이 있습니다.

원형 연못 곤신지는 융릉이 천장된 이듬해 1790년에 조성되었으며, 곤신방(남서방향)은 융릉의 생방(풍수지리 용어로 묘지에서 처음 보이는 물을 지칭)으로 이곳이 좋은곳이기 때문에 판 연못입니다.

 

 

 

 

 

 

 

 

 융릉으로 들어가는 다리, 융능교

 건릉으로 들어가는길

 

 

 

 

 

 

 

건릉

건릉이 보입니다.

 

 

 

건릉의 묘비각이죠.

posted by 산위의 풍경

목포 근대역사관

이곳은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있던 건물을 근대역사관으로 보존하는곳입니다.

무엇이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근대문화유산 건물로 보존 되고 있는 건물들은 우리나라에서 거의 항구를 끼고 있는 도시들에 많이 나타나지요?

인천, 군산, 부산, 왜관, 목포도 예외는 아니군요.

수탈의 목적으로 사용하던 동양척식주식회사, 그 옛날 은행으로 사용되던 건물들이 주로 근대식 건물로 남아 있습니다.

목포에서 들러 보았던 근대역사관도 그렇습니다.

안에 있는 전시물은 촬영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요즘 왠만한 박물관도 거의 촬영을 허락하는데, 이곳은 금지라고 되어 있어서 촬영하지 않았습니다.

일제의 만행 기록이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잔혹한 사진들이 많이 있더군요.

위안부, 학살사진, 독립군 처형, 살아 있는 사람을 배를 갈라서 창자가 줄줄 나오는 사진, 흑백이지만

잔혹한 사진이었습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길에 " 임산부나 심신유약자는 주의 하라"라고  써 있더니, 이런것들 때문인듯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백년도 안된 역사의 그늘입니다.

다시한번 우리 민족, 우리의 국권에 대해서 생각 해 보게 되는 곳입니다.

왜 일본이 가깝지만 먼나라라고 하는지 실감하게 되요.

과거의 깨끗한 청산없이 어물어물 넘어가면, 우리 독립군, 또는 일제 강점기 학살된 우리 민족 , 징용된 이땅의 젊은이들의

원혼이 잠들지 못함을..... 뼈아픈 과거는 과거로써 끝나는게 아닙니다.

현재도 우리는 우리나라 국권을 위해 싸워야 하는때 입니다.

동해가 일본해가 되지 않도록, 독도가 다케시마가 되지 않도록 우리는 눈 부릅뜨고 지켜나가야겠다는 생각,

목포 근대역사관 갔다 오면 애국심이 활활 타오르게 됩니다. 가보시고 울분만 쌓지 말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목포 근대역사고 2관

 

 목포 근대사

 목포근대역사관

구 동양 척식주식회사 목포점(전라남도 기념물 제174호)

 

 

 전시물들 팜플렛 사진입니다.

 

 

 

 

 

 목포근대역사관은 매주 월요일 휴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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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생활도자 박물관은 목포 자연사 박물관 옆에 있어요.

티켓팅이 한꺼번에 되기 때문에 목포 자연사 박물관만 보시고 가시는 분들이 많은데,

꼭 생활도자박물관도 들러보세요.

가마에 어떻게 도자기를 넣는지, 그리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있더군요.

갑작스레 방문해서 체험프로그램은 할 수가 없어서 아쉬웠어요.

필자가 방문했을때는 기획전이 열리고 있어서 여러나라의 생활도자기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볼거리가 있었어요.

그릇을 좋아해서 여행가서 눈에 띄면 한개두개 사오는 재미를 즐기는 풍경이.

그래서 그릇들을 셋트를 좋아하지 않아요.ㅋㅋㅋ

남편은 이런 저의 취미를 질색합니다.

자꾸 그릇 사들여서 정리가 안된다고 싫어 해요.

그렇지만 예쁜 도자기에 딱 그 음식이 담겼으면 하는 그런 그릇이 있잖아요?

저는 그런걸 즐기는거지요. 여러분은 어떤가요?

그냥 밥그릇 국그릇만 있음 되는가요?

목포 생활도자 박물관에서 다양한 그릇, 도자기를 만나보세요.

목포생활도자 박물관

생활도자 박물관 들어가는 입구

문예 역사관은 기획전시, 문예역사실, 오승우작품관, 수석전시실, 운림산방 4대작품실등이 있었는데

촬영금지 ㅠ,ㅠ 찍을 수 없었어요.

목포생활도자박물관 체험 프로그램

 

가마에 도자기를 구울때 어떻게 넣을까요? 확인할 수 있어요.

소꼽놀이 하듯이, 한상 예쁘게 차려져 있네요.

생활도자기

 

추억돋는 부억 모습, 기억 나시나요?

이 재래식 부엌이 생각 나신다면, 연세좀 있으신듯~

등잔.....저기 저기 쌍심지 등잔 보이시나요?ㅎㅎㅎ(눈에 쌍심지를 켜고 찾아보세요 ^^)

 

 

역동적인 도자 장식품

 

목포생활도자박물관

posted by 산위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