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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의 풍경
산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아픔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블로그기자단 기장군홍보단 기장군민필진 한국방송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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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부석사 우여곡절 끝에 다녀온 곳입니다.

언제? 두달전 5월1일에 말이예요.

실은 집에서 가까운 밀양 위양못에 갔다가 부석사 가고 싶다고 노래를 하는

저를 외면하지 못하고 남편이 그곳까지 달려준 덕분에 가보게 되었어요.

부석사하면 무량수전, 무량수전하면 배흘림 기둥으로 아마 귀에 딱지가 앉게 배우셨을거예요.

어릴때 가 봤던 부석사에 다시 가보는 데에 시간이 정말 정말 오래 걸렸네요.

한국사 공부할 때도 최태성 선생님이 부석사 무량수전 올라 갈때까지 절대로 뒤돌아보지 말고 올라가야 한다고

재밌게 이야기 하시거든요. 무량수전에 도착해서 뒤돌아 보아야 산과 어우러진 부석사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말입니다.

또 알쓸신잡 좋아하던 프로그램에서도 부석사를 찾으면서 옛날같으면 저 산아래부터 걸어 올라와서 부석사의 계단을 올라가면서

속세의 때를 떨치고 들어가는 세계라고 했는데, 지금은 가까이에 커다란 주차장이 있고 거기서부터 오르는길이 힘들지 않기 때문에

부석사의 위엄이 많이 떨어지는 느낌이라고 말입니다.

부석사 들어가는길에 은행나무들이 쭉 있어서 가을에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걸어갑니다.

천왕문은 공사중이었어요. 필자가 방문했을당시, 그래서 우측으로 우회해서 들어갔습니다.

요즘 뉴스에 보면 한국의 산지승원 산사  7곳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다고 합니다.

그곳중의 하나가 바로 부석사입니다. 부석사도 세계문화유산이 되었군요.

어릴때 갔던 부석사는 굉장히 컸다는 느낌이었는데, 지금 새로 가보니 그렇게 크지 않고 아담한 곳입니다.

이곳의 보물들을 살펴보며 무량수전 위쪽의 산책로도 걸어봅니다.

산책로에서 바라보는 부석사가 굉장히 아름답고 좋아요. 꼭 위쪽으로 걸어서 탑을 지나 산책로를 걷길 추천합니다.

그곳에서 만난 이야기도 신비하니까요.

마루옆에 자라고 있는 나무 이야기도신비한 전설처럼 의상대사의 지팡이를 꽃은 곳에서 자라는 나무라고 합니다.

1300년동안 이어져 온다고 하는데 실제 나무를 보면 그렇게 수령이 오래돼 보이지 않아요.

안양루를 지나 무량수전을 보니 어릴때 보던것 보다 작아 보여서 아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무량수전의 진가는 건물 내부에 들어가 봐야 정말 제대로 느낄 수 있는것 같아요.

내부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눈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부석사 관람요금

어른 개인 1200원

중.고생 , 군인 1000원

초등학생 800원

일주문 들어가는길, 은행나무, 가을에 와도 참 좋겠다.

 

부석사

1자인당, 2웅진전 ,3조사당, 4삼층석탑 ,5선묘각, 6무량수전, 7석등, 8안양루, 9부석, 10삼성각, 11삼보살, 12화엄선원, 13관음전, 14종무소, 15요사, 16종각, 17선열당, 18범종류,19장경각,20응함각,21보장각,22쌍탑 23회전문, 24요사, 25지장전, 26원융국사비각, 27박물관

 

안양루

 

 

무량수전에 들어가 봐야 더욱 건물의 진가를 느낄 수있을것 같아요.

들어가서 한참을 넋놓고 봤습니다.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

이 석등은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팔각 석등이다. 맨 아래 네모난 바닥돌의 옆면에는 꽃모양의 안상을 새겼다. 그 위의 아래받침돌에는 큼직한 연꽃잎을 8개 조각하고 그 위에 각기 8개의 귀꽃 꽃봉오리 장식을 하였다. 그 위에 놓인 팔각기둥의 받침돌은 굵기와 높이에서 매우 아름다운 비례를 보이고 있다. 윗받침돌에는 부드러운 연꽃잎 모양의 장식이 8개 새겨져 있다. 불을 ㅏㄺ히는 화창 사이의 네 면에 새겨진 정교하고 세련된 보살상은 이 석등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지붕돌은 모서리 끝이 가볍게 들려 있어 경쾌한 느낌을 주며, 석등 정상에 있던 장식은 대부분 없어지고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이 불상은 진흙으로 만든 소조불상인데 우리나라 소조불상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작품으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불상 높인ㄴ 278cm이며 부처의 몸에는 나오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는 불상의 뒤편에 나무로  따로 만들어 놓았는데, 가장자리에 불꽃이 타오르는 모양으로 표현하였다. 일반 사찰과는 달리 법당 중앙의 정면이 아닌 서쪽에 마련된 불단 위에 모셔져 있따. 손 모양은 석가모니불이 흔히 취하는 향마촉지인으로 무릎 위에 올린 오른손의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불상을 모신 법당이 서방 극락정토의 아미타불을 모신 무량수전이라는 사실과 부석사 '원융국사비'비문에 "좌우에 라은 보처 보살을 모시지 않고 아미타불 한 분만 모셨다 "는 기록이 있는 점으로 보아 이 불상은 아미타불임이 확실하다. 통일신라시대 불상 조형을 충실히 계승헌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온몸에 금빛이 화려하며 고려 시대 불상으로서는 상당히 정교한 수법을 보이는 걸작이다.

---부석사 무량수전 앞 안내문에서-

 

부석사의 상징

부석돌

 

 

웅진전, 자인당, 조사당은 무량수전 뒤쪽 숲속에 있다.

 

조사당

조사당은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를 모시고 있는 곳으로 고려 우왕3년(1377)에 세웠고 조선 성종21년(1490년)과 선조6년(1573년)에 다시 고쳤다. 고려 신종4년인 1201년 단청을 하였다는 기록도 확인된 바 있어 조사당이 세워진 연원은 더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정면 3칸, 측면1칸 크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무량수전과 같이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구조물인 공포를 간결한 형태로 기둥 위에만 설치한 주심포 양식이다. 출입문 좌우 안쪽 벽에는 고려시대에 그려진 제석천과 범천 그리고 사천왕상이 있는데 1916년에 건물을 수리하면서 떼어 내어 무량수전에 보관하다가 지금은 부석사 성보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원벽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며 고분벽화를 제외하면 가장 오래된 채색 벽화이다. 현재의 조상당 내부에 있는 벽화는 새로 그린 것이다.

 

선비화의 학명은 골담화

 

 

posted by 산위의 풍경

 

 

기영각

파계사 기영각은 연잉군의 탄생설화와 관련하여 조선왕실의 위패를 모시던 전각으로 조선 숙종 35년  현응조사가 성전암과 함께 창건하였다고 한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고 지붕은 아름다운 곡선미를 보여주는 팔작지붕이다.  기둥 위에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하여 설치한 공포는 혀처럼 앞으로 뻗은 두 개의 익공 위와 아래를 연화와 연봉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조선 후기의 이익공계 모습이다.

 파계사 지장전

 

 

 

 

 파계사 원통전

팔공산 서쪽 기슭에 자리잡은 파계사는 통일 신라 애장왕 5년 심지왕사가 창건한 절로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조선 선조 38년 에 중건하고 숙종 21년에 다시 고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파계사 원통전은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시는 법당으로 원통은 진리는 원만하여 모든것에 통해 있다는 뜻이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이고, 지붕은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맞배지붕이다. 기둥머리 위에는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커다란 역삼각형으로 짜 맞추어 장식한 공포가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놓여 있는 다포 양식으로 조선후기의 특징적 모습을 잘 갖추고 있다.

 

 

 

 

 

 

 

 영조대왕의 도포

영조대왕의 도포는 1979년 파계사 원통전 관세음보살상을 금칠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제작연대는 건륭 5년*1740)9월로 함께 발견된 발원문에 의하면 영조대왕은 탱불일천불을 희사하고 파계사를 왕실의 원당으로 삼았으며 영조대왕의 청사상도포를 복장하여 만세유전을 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영조대왕이 직접 착용하였따고 알려진 이 도포는 무늬 없는 실로 된 홑옷으로 연한 녹색 빛이다. 깃의 모양은 목판깃과 당코깃 모양이 합쳐진 반당코깃이 달린 것이 특징이다.

영조대왕 도포는 현품이 그대로 본전되어 있고, 형태와 색상이 거의 완전하여 옛 옷의 꾸밈새를 살펴 볼 수 있어 복식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

 

 기영각

 

 

 

 

 

 

 

 

 

 

 

 

 파계사 진동루

파계사는 9갈래로 흩어져 있는 물줄기를 모은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진동루 누각은 9줄기 물의 기를 진압하는데 파계사라는 이름으로도 부족하다 하여 지었다고 한다.

조선 숙종 41년(1715)에 처음 지은 후 1970년과 1976년 두차례의 보수를 거쳐 현재 모습을 갖추고 있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2층 규모이며 지붕은 아름다운 곡선이 돋보이는 팔작 이붕이다. 기둥 위에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하여 얹어 놓은 공포는 새 날개 모양의 익공 두 개가 짧게 앞으로 뻗어 있고 기둥과 기둥 사이의 중앙에는 당초넝쿨 문양으로 장식한 화반이 놓여 있는 이익공양식으로 조선시대 중.후기의 건축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영조임금나무

영조는 조선21대 왕으로 숙종의 2남으로 어머니는 숙빈 최씨이다. 탕평책을 실시하여 봉당정치를 혁파하고 균역법을 실시하여 조세를 감면하는 등 정조와 더불어 조선시대의 가장 찬란한 학문과 문화의 꽃을 피운 임금이다.

파계사는 왕실의 원당이자 현웅스님의 도움으로 영조임금이 탄생했다는 설화와 그가 입었던 도포(중요민속자료 제 220호)를 간직한 절이다.

따라서 사찰내 가장 크고 아름다운 250년 정도 된 이 느티나무를 골라 영조임금나무 라 이름지었다.

 영조임금나무

보호수

수종 :느티나무

수령 250년

 

 

 

 

팔공산 파계사 일주문

posted by 산위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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