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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의 풍경
산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아픔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블로그기자단 기장군홍보단 기장군민필진 한국방송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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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군산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에 살았었는데도 개군산을 몰랐어요.

이번에 친정갔다가 고향친구들의 어릴적 통학길을 걸어보는 추억여행을 하다가

개군산 입구 정상 900m라는 안내 표지를 보고 여기가 개군산이구나 알겠되었습니다.

현수막에 해돋이를 개군산에서 한다는 안내를 보았었는데, 그곳이 여기였구나 하면서 오르게 되었습니다.

추억여행이 아니었다면 이곳이 있는줄도 몰랐을 거예요.

앙덕리에서 올라 개군산 정상을 지나서 하자포2리 경로당 있는쪽으로 하산을 했습니다.

그다음은 대로로 나와서 버스는 타지 않고 걸어서 집에 도착하니 집에 가까운곳에 운동할 만한 곳이네요.

호기심에 올라보았던 개군산, 고향의 땅을 몰랐다는 약간은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긴 어릴땐 그렇게 산에 관심이 없었으니, 뭐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해 봅니다.

오르는 길은 많이 힘들지 않고 완만한 경사의 오르막길이라서 걷기에 좋습니다.

낙엽이 잔뜩 쌓여 있으니 겨울 산행이라기보다는 마치 가을낙엽산행을 온듯한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남한강 유유히 흐르는 강줄기도 보이고, 멀리 이포보 전망대도 보입니다.

개군산 정상은  넓직한 평지군요.

힘들이지 않고 한시간 정도 여유롭게 걸을 수 있는곳이라 가까운곳에 사는 사람들은

운동코스로 좋겠군요.

항상 겨울 산행은 낙엽등에 숨어 있는 나무가지 조각을 조심해야 합니다.

자갈도 문제지만 동들동글한 나뭇가지가 성에같은 물기와 낙엽사이에 숨어 있다가 미끄러지기 쉽상이랍니다.

언제나 항상 조심하면서 안전산행하기로 해요.

그럼, 추운겨울 건강한 겨울나기 하시길 바랍니다.

새롭게 고향을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네요.

친정에 방문할 때마다 내가 몰랐던 고향 산천을 거닐어 보는 기분 좋음,

여러분도 함께 느껴 보시길 바랄게요 ^^

 

 

 

 

 

 

 

 

 

 

 

 

 

 

 

 

 

 

 

 

posted by 산위의 풍경

새해가 시작된지도 벌써 13일째, 새해도 시간은 잘도 흘러갑니다.

새해를 맞이해서 고향을 찾았습니다.

초등학교 , 중학교 친구들과는 밴드결성이 되어 있어서 종종 연락되는 친구들이 있지요.

"이번에 양평 가니까, 친구야 치맥한잔하자" 했더니 "그래, 꼭 연락해" 합니다.

그래서 첫째날은 가족과 함께 보내고 이튿날 친구들과 만날 약속을 했습니다.

막내동생이 저녁을 사는 바람에 가족들 모두 외식을 하러 나가서

친구가 픽업을 해서 약속장소 어도로 향했습니다.

음, 양평에 이런곳이 있었구나 싶네요.

화려한 상차림에, 금방 식사를 하고 왔는데도 맛나게 먹을 수 있었답니다.

친구들과 술한잔 편안하게 하면서 얘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은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갑니다.

멀리 부산에서 친구왔다고 고향에 사는 여자, 남자 친구들이 모두 모였네요.

덕분에 즐겁고 좋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역시 어릴때 친구들이 흉허물 없이 편안합니다.

무척 오랜시간 못보고 지냈는데도, 이렇게 환영해주니 너무 고맙지 뭐겠습니까.

간단히 치맥한잔 하려던 풍경이 친구들 덕분에 입이 즐거운 호사를 누리게 되었답니다.

맛있게 먹으며, 다음엔 엄마 모시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친구들과 살아가는 이야기, 추억을 함께 하며 고향의 푸근함을 마음껏 느낀 여행이었습니다.

양평 어도, 품격있는 식사가 있는곳, 손님접대하기 좋은곳이예요.

양평대교 건너 다리앞에 바로 있어요.

중요한 날, 특별한 식사를 할 수 있는곳을 찾으신다면 이곳, 어도를 추천해 드릴게요. ^^

 

 

 

 

 

 

 

 

 

 

 

 

 

 

 

 

 

 

 

 

posted by 산위의 풍경

추억여행 양평걷기

어릴때 보통 5리 10리씩 걸어서 학교에 가던일은 흔하디 흔한일이었습니다.

시골학교는 통학시간이 길게 마련이지요.

친구들과 걸으면서 수다를 떨기도하고, 비가오는 궂은날은 물 웅덩이를 가끔 지나는 자동차가 탁 튀기면서

지나가서 오물을 디집어쓰기도 하는 야박한 세월, 여분의 옷도 변변히 없던 시절에 그럴땐 참 난감했습니다.

친구들의 집을 방문해 본것도 몇번 안됩니다.

너나 없이 어려웠던 시절, 되도록이면 남의집에 끼니때를 피해서 가는것이 배려인 세월이었습니다.

학교 다닐때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마을 앙덕리라는 곳을 무심히 가보게 된 이번여행이었습니다.

새해 첫날을 맞아 친정어머니를 뵈러 고향을 찾았습니다.

첫째날은 우리 가족들 모두가 온 덕분에 왁자지껄 번잡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하룻밤 자고, 아침 일찍 맏언니가 귀가하러 나섰습니다.

배웅하러 나왔던 길에 그냥 바로 남편과 산책을 나섰지요.

개군 레포츠공원을 돌다 친정집으로 돌아오던길, 남편이 안내 표지판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앙덕리 고인돌 마을이 어디야"

" 나도 가본적 없어요. 우리 한번 가볼까?" 하며 걷게 된것이 동기입니다.

걸어서 터벅 터벅, 남한강 줄기를 바라보며 걷고 있었습니다.

구미리를 조금 못 갔을때, 강가의 버드나무들은 정말 압사 직전이 아닐까 싶을정도로 외래 식물덩굴들로 엄폐 아닌 엄폐를 당하고 있는겁니다.

저거좀 시원하게 제거해 줬으면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저 덩굴들이 없으면 훨씬 강가 풍경이 아름다울텐데, 덩굴에 둘러싸인 버드나무들은 꼭 쓰레기 더미처럼 흉물스럽습니다.

봄여름엔 너무 우거질테니, 지금 저걸 확 걷어줬으면 좋겠네요.

하염없이 걷다보니 구미리가 옛날 중요한 포구였다는 돌안내문이 있네요. ' 아, 이곳이 그런곳이구나 . 몰랐네' 하며서 지납니다.

캠핑장소를 지나면서는 산고개를 넘듯 산 가운데로 난 도로를 올라가야 합니다.

" 우아, 옛날에 친구들이 이길을 걸어다녔단 말이야? 멀다 멀어. 도대체 앙덕리가 어디야?" 하면서 걷습니다.

고인돌 마을 선사유적의 마을이라고 하니 궁금증이 일어 찾아 나선길, 남편은 도로 집으로 돌아가서 차를타고 오자며 그만 걷자고 하네요.

"이곳까지 왔는데, 집에 걸어갈 시간이면 도착하겠어요. 그냥 갑시다." 우격다짐으로 걷는길, 어른걸음으로도 한시간 가까이 걸어왔으니, 어릴적 친구들이 걷기엔 정말 먼 거리였겠다 싶은거 있지요. 아이고~ 친구들 통학하는게 엄청 힘들었겠구나.....

고개를 넘어가니, 왼쪽으로 '의병마을'이라는 표지석이 있네요. 춘천 의병장 무덤도 보이구요.

이제 거의 다 온것 같습니다. 오른쪽으로 " 개군산 900m"라는 안내표지판을 보고 돌아오는길에 저곳에 올라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앙덕리 도착전 오른쪽으로는 마치 유럽마을 같은  예쁜 집들이 많이 있어서 신기해 보이네요. 이 시골마을에 저런 예쁜집들을 지어서

살고 있는 사람들, 부럽네요.ㅋㅋ

앙덕리를 알리는 마을 안내석.

앙덕리쪽으로 걷다보니 고인돌이 어디있다는 안내문은 없습니다.

지나는 어르신께 여쭸습니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여기 고인돌이 어디에 있습니까?"

" 저기, 물탱크 보이지? 거기 왼쪽으로 있어~" 하십니다.

" 고맙습니다." 하면서 걸어갑니다.

물탱크에 그려진 고인돌은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고인돌 모습이었습니다만,

앙덕리의 남아 있는 고인돌은 그냥 넙적한 바위돌 하나 엎어져 있는꼴....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고인돌을 이곳에 옮겨놨는데, 그나마 가장 나은것은 대학 연구실에 가져갔고, 다른것은 수해로 유실되고  했다는

기록과 함께 남은 것은 이곳에 옮겨 두었다고 되어 있네요.

선사유적의 마을 앙덕리를 찾아가본 오늘, 씁쓸한 이 기분은 뭔지....

뭐를 기대하고 오진 않았지만, 그 흔적이 이렇게 원형보전이 안되고 사라져가고 있다니 안타까움만 한 없이 커져갑니다.

어른 걸음으로도 한시간이 넘는 이 길을 어릴때 꼬마 친구들은 참 오랜시간 걸었겠구나 추억에 젖는 여행이었습니다.

 

외래 식물 덩굴에 압사 당할것 같은 버드나무들,,,,,,갑갑해 보입니다.

저 덩굴들이 없으면 강가 풍경이 훨씬 아름답고 보기 좋을텐데,,,,안스럽네요.

엄청난 외래덩굴 더미들,,,,,꼭 쓰레기 더미처럼 강가의 흉물입니다.

 

 

새떼가 남한강무에 조로록 앉아서 노닐고 있습니다.

구미리, 호국 충열, 의병에 고장

앙덕리-구미리-하자포리 버스정류소

옛 구미포 나루터

곳: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 구미리

양평군과 여주군을 잇는 남한강의 중요한 한 나루터로서 선조25(1592)년 임진왜란때 강원도 조장방 원호 장군이 향병을 모아 왜군을 기습하여 50여명을 치고

왜장도 베어 이기고 양평 백성을 보호했던 향군이 승전한 나루터이다.

개군산 입구 정상 900m

의병마을

춘천의병장 이만응 묘

선사 유적의 마을 앙덕리

동네 어르신이 일러준 물탱크, 이곳 바로 옆이 고인돌 공원이다.

고인돌 공원 전경

 

 

앙덕리 지석묘

양평군 향토유적 제 39호

양평군 개군면 앙덕리 25-4

앙덕리 남한강변 강안사구의 사질 충적대지 내에서 발견된 지석묘는 총5기로 지난1974년 팔당댐수몰지구에

대한 문화재 조사시 1기가 발굴 조사되어 연세대학교 박물관으로 옮겨졌고

이후 앙덕,창대제방공사 시행 전 단국대학교에서 나머지 4기에 대한 발굴조사를 시행하였다.

이들 지석묘들은 대체로 상면이 편평한 개석 아래에 자갈돌로 부분적인 받침을 한 형태로 다량의 선사시대 유물이 출토되었

특히 주변 앙덕리 선사유적유물산포지와 연계할 경우 유물 분포상 유물산포범위가 넓고

퇴적상황을 고려할 경우 지하에 유구가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지역이다.

유적 및 유물의 시기 뚀한 신석기 시대부터 원삼국시대에 이르는 등 매우 넓은 시간 폭을 가졌으나

 그간 앙덕리 일대의 잦은 홍수범람에 의해 충위의 교란이 심하여 유구와 유물이 많이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

 1988년 마지막 발굴후 앙덕리 마을회관 앞에 방치되어 있던 고인돌을

주민편의와 여가활동을 위한 '앙덕리소공원조성'계획에 의거 2003년 현위치로 이동 복원한 것이다.

 

개군 앙덕리 고인돌 소공원

 

 

 

 

앙덕리 지석묘

앙덕리 건너편에 조성된 마을집들은 색다른 풍광을 연출하고 있어요.

 

 

posted by 산위의 풍경

어느날, 지인께서 수원화성과 융릉 건릉으로 여행을 간다고 같이 가려나 물어 오셨습니다.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이란 카페회원들이 함께 가는 답사라고 말이지요.

수원화성은 여러 차례 가본곳이지만, 또 가고 싶어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조선의 왕들중 정치적인면에서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던 임금으로 세종과 정조를 가장 좋아합니다. 개인적으로.

역대 가장 위대한 성군이 있다면 정조를 꼽고 싶을만큼 혁신적이고 백성을 사랑한 임금으로 효성이 깊은 임금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수원 화성은 정조의 업적중 가장 뛰어난 유산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정조대왕이 사후에 머물게 된곳, 건릉입니다.

건릉은 왜 이곳에 자리했을까요?

그것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현릉원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일텐데요.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메뉴처럼 등장하는 영,정조 시대의 파란만장한 당쟁의 희생양,

비운의 동궁 사도세자. 조선 고종이 장조로 추존하였기 때문에 현재는 융릉이 되었습니다.

사도세자는 당쟁으로 인해 아버지 영조에게 사사되는 비운의 동궁입니다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를 지키려면 사사된 동궁 이선을 죄인신분으로 두면 안되기에 사도세자로 신분을 복원하여 묘를 썼지요.

정조를 영조의 첫째 아들이었던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시켜 훗날 있을지도 모를 정통성의 흔들림을 차단해버렸습니다.

그러나 정조는 왕위에 올라 "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라며 죽은 아버지를 떠올리지요

정조는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으로 옮기며 현릉원에 모셨습니다.

그후 고종에 의해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존되면서 융릉이 되었던 것이죠.

융릉은 사도세자와 혜경궁홍씨를 합장한 왕릉이고

건릉은 정조대왕과 효의왕후를 합장한 왕릉입니다.

융릉으로 들어가는 숲길은 소나무 숲길로 걷는 편안함이 있습니다.

해설사님이 같이 가면서 해설을 자세히 해 주기 때문에 그 가슴아픈 효심 절절한 정조의

이야기가 가슴에 파고 듭니다.

묘에서 현릉원으로 융릉으로 죽어서도 신분의 변화를 겪게 된 사도세자.

화성여행, 융릉 건릉을 꼭 들러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다녀오게 되서 기쁩니다.

 

 

융릉, 건릉에 들어가기전 입구에 있는 향나무.......오랜세월을 몸으로 말하듯, 헐벗었지만, 근근한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네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조선왕릉

융릉 건릉 관람안내, 월요일은 쉽니다.

융릉, 건릉은 사적 206호입니다.

 

고요한 숲길이 평온해 보여 참 좋았습니다.

융릉에 들어가는 다리,,,,,이것은 사후세계와 이승을 구별짓는 의미이기도 하답니다.

 

융릉이 보입니다. 소나무숲에 둘러쌓인 왕릉은 편안해 보입니다.

곤신지, 융릉 들어가는 왼쪽편에 여의주처럼 동그랗게 연못이 있습니다.

원형 연못 곤신지는 융릉이 천장된 이듬해 1790년에 조성되었으며, 곤신방(남서방향)은 융릉의 생방(풍수지리 용어로 묘지에서 처음 보이는 물을 지칭)으로 이곳이 좋은곳이기 때문에 판 연못입니다.

 

 

 

 

 

 

 

 

 융릉으로 들어가는 다리, 융능교

 건릉으로 들어가는길

 

 

 

 

 

 

 

건릉

건릉이 보입니다.

 

 

 

건릉의 묘비각이죠.

posted by 산위의 풍경

부산에서 새벽 4시에 출발해서 오전 8시 40분에 의왕시에 도착을 했습니다.

언니아파트에 차는 세워두고 우리를 태우러 온 친구차로 이동합니다.

과천시청 부근에 차를 세우고 산행을 시작합니다.

들머리는 과천향교입니다.

과천향교-대피소-연주암-연주대-방송송신소- 제2국기봉-제1국기봉-코끼리바위-문원폭포로 내려서서  기술표준원까지 5시간의 알뜰한 산행을 해 봅니다.

과천향교부터 방송송신소까지의 1시간30분간은 계속되는 계단, 돌계단, 오르다가 정말 걷기 싫은 생각이 날정도로 산행하면서 만나는 계단은 괴로움입니다.

관악산 정상석을 찍고 간단하게 김밥 한줄(부산에서 올라가느라 도시락을 못싸가고, 근처서 김밥으로 점심준비)로 점심을 해결합니다.

그리곤 바로 원점으로 돌아가는건 너무 시간이 짧다고 우리는 1코스에서 2코스로 크게 돌아 내려가기로 합니다.

연주암까지 내려와서 우측으로 계단을 올라섭니다.

우리 하산하는거 맞지?....계단은 계속오르막입니다.

이곳을 지나 내려서는 길은 올라올때와 다르게 육산.

산행하기 좋은 코스라며 너무좋다 감탄연발 발사 했습니다.

그런데 산이란 항상 편안할 수 만은 없지요.

이제 계속되는 오르락 내리락 바위구간입니다.

국기봉을 지나 육봉을 가는 코스는 암릉구간으로 멋지게 산행을 할 수있는곳입니다.

로프가 있었음 좋겠다 싶은곳이 두어곳 있던데, 흔적을 보니 있던 로프가 없어진것 같습니다. 아슬아슬한 구간을 지날때는

남편의 도움을 받고, 친구들이 응원해준 덕분에 암릉구간 무지무지 무서워 하는 풍경이도 마음의 준비를 하며 천천히 지나 갑니다.

" 요렇게 지나가면 돼 어서와~" 하는 남편말에 " 아니 아니야~ 잠깐만,,,,나도 마음에 준비를 해야한다고.."

오랫만에 암릉구간에 정신이 번쩍 납니다.

과천향교부터 연주대까지야 계속 계단이고보니, 그냥 걸으면 되었는데, 하산코스로 잡은곳은 8봉능선길 중 우리는 4,5,6봉(국기봉)을지나서

아기 코끼리 한마리 앉아 있는 암릉구간으로 내려섭니다.

다행히 바위가 미끄러운 바위가 아닌데, 친구가 신발이 미끄러워 엄청 고생을 합니다.

미끄러져 긴장하니까, 겁쟁이 풍경이 덩달아 긴장이 엄청 되었습니다.

자, 온 발 바닥에 집중하자, 집중!

무사히 위험구간을 지나고 나니 한숨이 다 쉬어집니다.

문원폭포에서 청사쪽으로 걷기만 하면 됩니다.

발좀 담그고 갑시다. 근데, 수량이 너무 적네요. 태풍이 두개나 지나갔는데도

이곳은 여전히 가무네요. 계곡에 물이 거의 없는채로 바싹 말라 있는곳도 눈에 띄더라는.

안내해주느라 시간내준 동창, 그리고 내 옆지기 나무지기님하고 넷이서 기분좋은 산행을 했네요.

부산에서 참 가기가 힘든곳이긴 하지만, 관악산,,,,,이곳에 처음 왔을때 내나이가 20살이었는데,

27년만에 다시 올라보니 감개무량합니다.

산은 여전히 그곳에 있더이다.

 

 

관악산 들머리 과천향교

 

관악산 대피소

 

 

 연주암 삼층석탑

이 탑은 높이 3.6m로 1장의 판석으로 구성된 지대석 위에 기단은 단층의 4장의 판석을 엇풀려서 조성하였는데 각 면에는 모서리 기둥[우주]이 새겨져 있다. 탑신과 지붕들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져 있다 지붕돌 받침의 1층은 4,단이지만 2층과 3층은 3단으로 만들어져 구ㅠㄹ성을 잃고 있다. 낙수면의  길이가 짧고 전각의 반전이 둔중하여 고려시대 석탑의 특성을 보여 주고 있다. 지붕돌 위에는 노반석과 앙화보주가 놓여 있다. 이 삼층석탑은 전형적인 고려시대 석탑으로 각 부분의 비례가 잘맞고 제작수법도 정연하여 고려중기 이전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주대

 

 관악산 629m

 

 

 

 

 

 

 

 

 

 

지나온 길이 아득합니다.

육봉 지나서 코끼리 바위

문원폭포에 머무는 휴양객~

 

남편하고 갈때는 가벼이~~ 작은 배낭에 카메라만~~덜렁

아슬 아슬 구간~ 나 지금 떨고 있니?

 

 

이런데 무서워 하는데,,,,,그래도 조심조심하면서 산행했네요.

posted by 산위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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