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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의 풍경
산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아픔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블로그기자단 기장군홍보단 기장군민필진 한국방송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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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입니다. 역사적으로나 문화적 뿌리가 깊은 곳이지요. 봄볕이 따뜻해질 무렵, 이곳을 다녀왔는데, 이제서 글을 씁니다.
문득 경주 금오봉을 가겠다는 생각으로 동생과 둘이서 길을 나서봅니다.
남산코스야 여러곳이 있겠습니다만 코스도 비교적 짧으면서 경치도 좋고 걷기도 좋고, 아마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문과 학생들은 이곳을 방송으로 보게 되거나 이미 보았을 것입니다.바로 김시습의 발자취를 찾아가게 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용장골은 용장사터가 남아있는곳이고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지은곳이라 추측되는 곳으로 전해집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인지, 계곡을 건너는 다리 이름이 '설잠교'설잠은 김시습의 법명입니다.
새색시처럼 곱디 고운 연한 철쭉이 화사하게 피어 있는 용장골은 걷기에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수려한 경치도 걷는데 지루하지 않게 하고 용장사터 부근엔 매애불상과 삼층석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작년 가을쯤에 교수님과 탐방을 갔던곳이라 익숙한 곳입니다. 경주 남산은 산 전체가 불교문화 산실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만큼 곳곳에 불상과 석탑, 유적등이 산재 해 있고, 정말 발에 채이는 게 불교유적이라 할 만큼 많은 문화유산을 품고 있는 곳입니다. 산행도 힘든코스가 아니니까, 도전하기 쉬운 코스입니다.
가깝지만 자주 가지 않던 경주 금오봉 명산100  인증하고 왔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전엔 학생들의 성지순례지처럼 배움여행으로 많이 찾았던 경주 불국사를 가봅니다. 또 추억이 한바가지 햇살처럼 내려앉습니다. 저기서 단체 사진찍고, 저기서도 찍고 그랬는데...하면서 연두빛 고운 불국사 사찰 내, 부처님 오신날이 가까워오니 석가탑, 다보탑에도 연등 장식이 되어 있었습니다. 불국사를 뒤로하고 이른 저녁을 먹고 부산으로 돌아가기로 해서 유수정 쌈밥집에 갔어요. 석쇠불고기를 시켜 맛있는 식사로 경주 여행겸 산행을 마무리 합니다.

경주 남산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보물 913호

용장사터 3층석탑

금오봉 명산100 인증

경주남산 탐방로

우리의 점심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 안내문ㅡ 보물187호 통일신라 8 세기 중엽 ㅡ

트랭글 앱ㅡ등산코스가 자세히 기록된다.

불국사 입장료 5천원

백운교 청운교, 많이 들어봤을 불국사

불국사 석가탑

불국사 다보탑

사리탑조차도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같다.

사리탑 안내문

posted by 산위의 풍경

전등사, 이주일 연속 가게 되었네요.

처음 전등사에 갔을때는 성돌이를 할 수 있다는것을 모르고

원피스에 구두를 신고 갔는데, 그래도 부득불 오르고 싶어 서문에서 북문을 돌아 내려 왔었지요.

부처님 오신날 전이라 대웅전 앞에 한창 등을 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산으로 내려왔는데, 뭔가 찜찜한 겁니다.

아, 전등사가면 양헌수 승전비를 꼭 보고 오려 했는데 그곳을 놓치고 못보고 온 것이지요.

다음주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이란 여행 카페에서 전등사를 간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신청을 해서 전등사를 다시 갔지요.

다른곳보다, 삼랑성 성돌이를 하고 꼭 양헌수 승전비를 보고 오리라.

삼랑성문인 종해루 (남문)을 지나 바로 왼쪽으로 올라갔습니다.

지난번에 왔을땐 서문에서 북문으로 올랐는데, 성이 허술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었어요. 잡석으로 만든 성이 위태로웠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지요.

이번에 오른 남문에서 서문가는길은 아름답게 잘 남아 있는 성의 모습입니다.

아 이곳은 산성답네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조금 있으면 해가 지면서 노을이 참 아름답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바쁜 걸음을 옮겨 봅니다.

서문에서 내려와 정족산 사고옆을 지나 내려오면 약사전과 대웅전앞에 등이 한가득 달려있지요.

이곳을 지나 동문쪽으로 바로 향해 봅니다.

바로 양헌수 승전비가 있는곳이예요. 지난번에 왔을때 못들러봐서 내내 아쉬웠던, 그래서 다시 전등사를 찾게된 그 목적지 말입니다.

승전비는 잘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개화기에 선진대국이던 프랑스를 맞아서 물리쳤다는 양헌수 승전비, 그의 기개, 이곳을 호령했을 그 때를 잠시 생각해 봅니다.

성을 지킬 당시의 360여명의 기록이 탑뒤에 새겨져 있다고 해요.

자, 이제 만족합니다. 승전비를 보고나서 바로 아에 있는 동문, 동문으로 내려가다 보니,,,,아차차~~ 나 남문쪽에서 들어왔지!

그쪽에 차량이 있으니 그리 내려가야 하는데, 다시 동문으로 들어가서 남문쪽으로 내려옵니다. 남문과 동문은 아주 가까운 지근거리 입니다.

이제 전등사 여행을 마무리 하는듯한 깔끔한 마음이 드네요. 일주일 내내 찜찜 했거든요.

전등사 가면 양헌수 승전비를 꼭 보고 오는게 예ㅡ의.

그것이 이나라를 위해 싸웠던 조상님들을 기리는 마음 아닐까요? 좋은 여행 마무리 해서 기뻤습니다.

 

 

문화재 구역 전등사 입장료

어른 3000원

청소년 2000원

초등학생 1000원

노인(경로) 65세이상 신분증 제시 면제

 

삼랑성

 사적 제 130호

 소재지: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산 41

일명 정족산성이라고도 한다. 성을 쌓은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단군이 세 아들에게 성을 쌓게 하고 이름을 삼랑성이라 했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보인다. 처음에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는데 삼국시대에 이르러 그 위에 막돌을 맞추어가며 쌓았고 성체 안에는 막돌을 채운 튼튼한 석성으로 축조되었으며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보강되었다. 선안에는 전등사는 물론 고려시대에는 가궐, 조선시대에는 사고와 선원보각이 있었다. 병인양요 때(1866)양헌수 장군이 프랑스군을 물리쳐 이곳에 보관된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족보인 <선원보>를 지켰다. 1976년에 남문인 종해루를 원형대로 복원했다.

 

 

1976년 복원된 종해루

남문

 

앞주에 갔을땐 아직 연한 연두빛이 많이 돌던 숲, 싱그럽다.

 

부처님 탄신일 전에 갔을때 아직 등을 달고 있어서 사다리도 보이고 그랬다.

 

 

정족산 삼랑산성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사고인 장사각과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던 선원보각이 있던 곳이다. 조선은 초기부터 <조선왕조실록>을 춘추관, 충주, 성주, 전주 등 네 곳에 보관하였다. 임진왜란 때 유일본으로 남은 전주사고본이 묘향산 사고로 옮겼다. 다시 마니산 사고를 거쳐 현종 1년(1660)이곳으로 옮기고 오른편에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는 선원보각을 함께 지었다. 1931년에 간행된 <조선고적도보>에 이 사고의 사진이 수록된 것으로 보아 이후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실록은 1910년 국권침탈 이후 서울로 옮겨졌고 지금은 서울 대학교 규장각에서 보존, 관리하고 있다. 1998년 두 건물을 복원 후 옛 현판 '장사각'과 '선원보각'을 다시 달았다.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 67호

 

조선의 4대 사고

정족산 사고

태백산 사고

오대산 사고

적상산 사고

 

기록의 나라 조선

 

삼랑산성 서문

복원된 곳이다.

 

서문에서 올라서면 이렇게 숨은 문있는곳이 있다.

뒤로 보이는 강화도 정리된 논밭,(옛날엔 저곳은 모두 바다였다)

 

일주일새 녹음이 많이 짙어졌다.

 

 

이길을 따라 올라가면 서문으로 가는데, 정족산성중 가장 성다운 자태가 잘 남아 있는 곳이다.

 

성벽길을 따라 걷는 맛이 가장좋지만 또 가장 오르막길이기도 하다.

 

남문에서 올라오면 서문으로 가는 길, 성벽길이 아름답다.

 

 

서문, 박찾사 카페의 일행분이 서문을 촬영하고 있다.

 

 

부처님 오신날 지나서 가니 이제 사다리도 다 치워져 정리된 등, 대웅전앞에 한가득 등이 달렸다.

 

 

한창 불경을 외시는 스님을 바라보았다.

 

 

양헌수 승전비

 

 

1866년 병인 양요때 양헌수 장군의 승전비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을 물리친 양헌수 장군의 공적을 기리는

 비로 앞면에는 "순무천총양공헌수승전비"라고

새겨져 있다. 양헌수 장군은 헌종 14년(1848년)무과에 급제한 후

벼슬을 지내다가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을 물리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승전비에는 양헌수를 비롯한 367명이 프랑스 군대를 맞아 활약한 당시의

 상활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크기는 전체높이가 181cm, 비신의 높이가 163cm, 두께가 27cm이다.

 

동문

 

동문밖의 모습

 

posted by 산위의 풍경

강화도여행중 가보고 싶었던 전등사,

이곳에 초등학교때인지 중학교때인지 가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기 자기 빨간 바지 입고 찍은 사진 있지 않아?" 하는 남편의 말,

친정집에 있던 저의 어릴때 사진을 기억하고 있었네요

"응, 맞아요. 그때 갔던 기억이 있는데, 다시한번 꼭 가보고 싶어요."

그래서 전등사를 두둥 찾아갔지요

부처님 오신날이 가까워지고 있으니 입구부터 등을 달아 두었습니다.

대웅보전 앞 절마당은 울글 불긋 갖가지 전등이 차지를 하고 있네요.

사다리를 놓고 이제 막 설치를 하고 계셨어요.

전등사는 고려왕실의 원찰이라고 하더군요.

전등사 홈페이지에 소개되어 있는 우리나라 불교 유래의 역사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불교가 국교로 인정받은 것은 372년(고구려 소수림왕 2)의 일이다.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고구려가 삼국 중 가장 먼저 불교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 당시 일반 백성들 사이에는 불교의 저변이 어느 정도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대개 새로운 종교는 일반화 과정이 진행된 후 왕실이나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선포하기 때문이다.
고구려 소수림왕이 불교를 국교로 선포하자 전진의 부견왕은 법사인 순도(順道)와 불상, 불경 등을 고구려 왕실로 보냈다. 소수림왕은 성문사(373년 창건)와 이불란사(375년 창건)를 짓게 하고 성문사에는 순도, 이불란사에는 아도로 하여금 머물게 했다. 따라서 이 두 절은 한국 최초의 사찰로 기록되고 있다.

강화도는 섬 자체가 우리나라 역사의 축소판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선사 시대의 고인돌 유적부터 단군왕검의 얼이 담긴 마니산, 고려 때의 대몽항쟁과 팔만대장경 조성, 서양 세력과 처음으로 전투를 벌였던 ‘병인양요’에 이르기까지 강화도의 역사는 곧 한민족의 역사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지금도 강화도는 역사와 문화의 섬으로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강화도에는 전등사를 비롯해 유서 깊은 사찰도 많이 터 잡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호국불교 근본도량인 전등사와 전등사보다 300여 년 후에 세워진 보문사 및 정수사가 손꼽힌다.
전등사는 현존하는 한국 사찰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졌으며, 부처님의 가피로 나라를 지킨 호국불교 근본도량으로 역사와 권위를 간직한 사찰이다. <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바와 같이 삼랑성은 단군이 세 아들(三郞)을 시켜 쌓았던 고대의 토성이었고, 삼국시대에는 토성 자리에 석성을 쌓아올려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삼랑성 안에 자리 잡은 전등사는 세 발 달린 솥을 거꾸로 엎어놓은 모양을 가진 정족산(鼎足山)과 더불어 강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화 유적으로 유명하다.
전등사가 창건된 것은 서기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년)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래된 것이 서기 372년이므로 지금은 그 소재를 알 수 없는 성문사, 이불란사(375년 창건)에 이어 전등사는 한국 불교 전래 초기에 세워진 이래,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도량임을 알 수 있다.
처음 전등사를 창건한 분은 진나라에서 건너온 아도 화상이었다. 당시 아도 화상은 강화도를 거쳐 신라 땅에 불교를 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도 화상이 강화도에 머물고 있을 때 지금의 전등사 자리에 절을 지었으니 그때의 이름은 ‘진종사(眞宗寺)’라 하였다.

--------------전등사 홈페이지에 있는 전등사의 유래-------------------

 

강화도는 역사의 현장의 한가운데서 오랜세월을 버티어온 우리땅입니다.

대몽항쟁으로 팔만대장경 조성, 서양세력의 침입을 막던 병인양요 등등 우리나라의 위기때마다 방패같은 역할을 했던곳이라 할까요?

전등사의 전신이 진종사라고 중국에서 건너온 아도화상이 머물러 지은 절이라고 하네요.

 

전등사가 역사의 전면에 다시 나타나는것은 병인양요.

바로 양헌수 장군이 프랑스 군대를 물리치는 현장이기도 하지요.

정족산에 위치한 전등사는 삼랑성안에 위치한것이지요.

전등사  대웅보전과 약사전을 지나 좀더 위쪽으로 가면

실록을 보관했던 사고가 있었습니다.

지금 그 안에서는 작은 전시회가 열리고 있고요.

사고를 마주보고 오른편으로 돌면 삼랑성 북문으로 오를수 있는 숲길이 있습니다.

북문만 오를려고 했는데, 사실 처음에 이길을 못찾고 사고에서 내려오면서  오른쪽으로 내려와서 숲길을 올라가니 서문이 나오더라구요~

서문에서 북문까지 더 걸었습니다.

그것도 구두를 신고.....아놔, 신발 갈아신고 올라올걸~

여기까지 오를줄 모르고 구두신은채로 원피스를 입고 산을 올랐어요.

이곳은 산성을 한바퀴 다 돌수 있나봐요.

'성돌이길 '이라고 안내판이 서 있었어요.

그리고 양헌수 장군의 승전비를 보실분은 동문으로 가세요.

전 요걸 못보고 와서 넘나 아쉬워요.

 한국사 공부를 해보니, 자꾸 자꾸 역사의 현장에 가보고 싶어 지는거 있지요?

공부를 하는 학생들은 책에서 보는것보다, 이렇게 현장에 가서 직접 체험해 보는것이 실질적 교육이 될것 같습니다.

오래 기억에 남고 말이지요.

강화도 여행, 아직도 갈곳은 많은데 시간이 좀 없네요.

다음엔, 고려궁지를 가볼게요~

요즘은 전등사에서 템플스테이도 하더군요.

이런 체험도 좋을것 같아요~

 

 

 

 

 

 

posted by 산위의 풍경

장안사는  많은 유형문화재를 간직한 고찰입니다.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해서 들러 보았더니 평소 굳게 닫혀 있던 명부전과 응진전, 대웅전, 와부전까지 다 열려 있어서

볼 수 있습니다.

이제껏 장안사를 다녀본중에 가장 많이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가볼만한 사찰 기장군에 오셨다면 장안사는 꼭 들러 보셔야 하고요.

오늘 세곳의 절에 들러 절밥을 먹으면 좋다고 불교신자인 친구가 그러던데,,,,

친구는 오늘 세곳의 절에 들렀을까 궁금해 지네요.

그럼 오늘도 편안하고 즐거운날 보내세요.

 

 

고즈넉한 장안사

 

 

 

 

 

새로 건축된 와불이 모셔져 있는 와부전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된 탑

 

 

 

산신각

 

불기 2543년 원효성사창건도량 장안사

 

응진전 석조 석가삼존십육나한상(부산광역시지정 유형문화재 제 85호)

장안사 응진전 석가영산화상도 (부산 광역시지정 유형문화재 제 88호)

 

 

전면 1간 측면 1간 단층 팔작지붕 기와집이다.산신탱화는 호랑이가 변화한 신선을 그리고  그 앞에 진짜 호랑이를 그렸다. 호랑이는 산의 신령으로 존경 받았고 차츰 신앙의 대상으로 승격되었다.

사찰내 산신각은 불교가 토착신앙을 포용한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장안사 명부전 석조지장시왕상(부산광역시지정 유형문화재 제 86호)

장안사 명부전 지장보살도 (부산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 89호)

 

posted by 산위의 풍경

 올핸 유달리 사찰 기행을 많이 한듯 합니다.

생일이 그 즈음이라 더 잊지 못할 날이지만

종교와 상관없이 봄이면 찾아가게 되는 사찰들이 더러 있네요.

이번엔 공주 신원사를 찾아 보았습니다.

아침 일찍이라 고즈넉한 산사의 모습이라 편안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아직 벚꽃이 남아 있는지라

살랑이는 바람에 벚꽃이 날리어 꽃자리를 만들고 있더라구요.

절마당을 벚꽃이 찬찬히 메워가고 있던 봄날이었습니다.

하루에 신원사를 두번 찾아갔던 이유.

일행을 못만나서 입장료 2000원을 주고 이른 아침 신원사를 돌아보고,

오후엔 일행을 만나 갑사에서 신원사까지 산행하느라 다시 신원사를 찾아갔으니

신원사가 저에게 좀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원래는 절의 중심부에 있었다던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 31호) 신원사 5층 석탑은 지금은 신원사 중악단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 7호) 옆  구석에 있네요.

세월이 가면 모든것의 존재적 가치 또한 바뀌는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부처님 오신날 찾아가 보면 좋을 산사, 신원사입니다.

그래도 평지에 있으니까, 너무 걱정 안하시고 찾아가시면 될듯 합니다.

공주여행, 아직 이야기들이 많이 남았는데요, 다음번엔 공산선 이야기 들고 찾아올게요.

 

 

 

버스 정류장,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절은 651년 의자왕 11 열반종의 개조인 보덕화상이 창건했다 .1394년 무학대사는 계룡산에 머물러 있을 때 산신을 선몽하고는 태조에게 진언하여 중악단을 세우고 이때 묘향산에는 상악단 , 지리산에는 하악단을 설치했다고 한다. 1866년 고종3년 관찰사 심상훈이 중수하면서 신정사로 불리던 절이름을 신원사로 바꾸었다. 문화재로는 대웅전(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 80호)과 5층석탑(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 31호)등이 있다. 또한 대웅전으로부터 50m 떨어진 곳에 산신각인 중악단(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 7호)이 있어 이 절은 전국에서 으뜸가는 산신기도장이 되고 있다.

 

 

붉은 매화가 유혹하는 신원사 가는길.

 

황매화 곱게 핀 신원사 들어가는길.

 

 

 

 

 

 

 

 

 

 

 

신원사 대웅전(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 80호)

 

 

신원사에서 열리고 있던 신원사 사진전

 

 신원사에 전시되어 있는 사진

 

 

 

신원사 중악단(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7호)

 

 

 

 

신원사의 사계절을 담아낸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한꺼번에 신원사의 사계절을 감상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계룡산 신원사 중악단

 

 

 

 

 

 

 

 

 

 

posted by 산위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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