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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의 풍경
산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아픔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블로그기자단 기장군홍보단 기장군민필진 한국방송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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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에 가서 횡계리의 옥간정 주소를 치고 가다보니,도로변 우측에 있는 고택.

아 저게 옥간정인가? 하면서 차를 세워봤더니 이곳은  옛날 서당과 함께 있는 모고헌이었다.

태고와라 이름 붙였던곳이었는데, 지금의 모습으로 건물을 증축하면서 모고헌으로 이름이 바뀌었다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횡계구곡이라고 있다는것도 이곳의 안내판을 보고야 알았다.

옥간정과 모고헌은 정규양과 정만양 형제가 오가며 우애를 다지고 후학을 양성했다는 곳이다.

옆에 물 맑은 계곡이 흐르고 산이 있는 모고헌과 옥간정은 지척에 있으면서 아름다운 곳이다.

저절로 시한수 나올법 하고, 학문수련의 의욕이 샘솟을 듯 하다.

건물이 뒤에서 보면 단층 같지만, 계곡쪽에서 바라보면 복층구조다.

목조 건물이지만 계곡쪽 툇마루 아래에 아궁이가 있어서 불을 지필 수 있다.

사방으로 마루가 둘러져 있으면서 내부에 방한칸이 있다.

신기한 건축물에 한참을 바라봤었다.

사계절 내내 사용 할 수 있었겠다.

 

 

 

 횡계구곡 제4곡 옥간정

그곳 근처에는 두개의 정자가 있다.

 

 이 건물은 횡계서당 내에 자리하고 있는 정자이다.

조선숙종때의 성리학자 인 지수 정규양이 동왕 27년 에 대전동에서 이곳으로 이사하면서 지은 건물로 태고와 라 하였다.

그러나 영조6년에 문인들이 현재의 건물로 개축하면서 모고헌이라고 하였다. 이를 지은 정규양과 그의 형 정만양은 이곳에서 옥간정을 왕래 하면서 우애를 상징하는 뜻으로 훈과 지로 호를 삼고 후학을 양성하였다.이 정자는 정 남향이며, 뒷쪽에는 오래된 향나무가 한 그루 있다. 정면 2칸, 츠견 2칸의 팔작지붕으로 사면에 퇴간을 둘린 정방형 평면을 하고 있는 독특한 건물이다. 앞쪽에서 보면 완전한 중층 누각이나, 뒤쪽에서 보면 단층 건물로 보이는 형태이다.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리는 평면구성에서 독특함을 엿볼 수 있다.

 

 모고헌의 향나무는 이미 300년을 넘은 노거수다.

 

 

 

 

 

 

 

 

 

 

 

 

 

 

 

 

 

 

옥간정에서 계곡을 따라 백미터쯤 가면 모고헌이 있다.

posted by 산위의 풍경

 대구여행은 요즘 가장 많이 찾는 여행지이다.

아들 덕분에 대구 영천 곳곳을 빠삭하게 알아갈 지경이다.

학교 행사때문에 옥천에 다녀오면서 동대구에서 아들을 만났더니

밤중에 특별히 가 볼만한 곳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모처럼 엄마 아빠와 추억공감을 위한곳으로 김광석 다시그리기길에 가보기로 했다.

전에 혼자 왔었는데, 은은하게 흐르던 김광석 노래 때문에 울컥 가슴이 울먹여졌던 곳,

그곳에 아들과 손잡고 걸어보고 싶었다.

남편은 뒤에서 따라오고 아들과 손잡고 걸었다.

장성한 아들의 손을 잡고 걷는 한장의 추억을 가슴에 새겼다.

거리는 조용했다.

방천시장의 밤거리는 족발집들이 즐비하고 떠들석 했지만, 옆의 김광석 길은 한산한듯 보였다.

딱 한곳. 분비는 곳이 있다.

추억의 문방구.

어릴적 봤었던 군것질거리가 가득했다.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그것은 추억을 기다리는 느낌이다.

아이들이 어릴때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 자주 갔었다.

내가 어릴때 그토록 소망하던 군것질거리들의 추억 때문에.

오늘 또 그 추억과 마주했다.

추억은 오래 될수록 더욱 선명하고 그리워진다.

김광석 다시그리기 길에 새로운 명소가 탄생한것 같다.

이길은 어차피 추억의 길이다.

김광석을 그리며 또 어릴때의 추억도 마주하게 되는곳.

아들과 걸어서 더욱 행복한 길이다.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서른즈음에,

posted by 산위의 풍경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어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국도 섰지 마라 웃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에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라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쁜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스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잡혔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이상화 시인은 1901년 대구에서 태어나 계산동 고택에서 1943년 4월 25일 별세한 민족시인이다.

일본 침략시기에 대표적 저항 시인으로 손꼽힌다.

근대 문학에 한 획을 그은 큰 자취를 남긴 시인이다.

애국이 무엇인가를 글을 통해 실천하고 가르친 시인이다.

대표적 시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역천,통곡,시인에게,나의 침실로 등이 있다.

1925년부터 신경향파에 가담하여 사회성 짙은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대구에서 교편활동과  저술활동을 했다.

지금의 대구시 계산동의 이상화 고택은 1998년 이상화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2002년 고택 보존대책협의가 이뤄지고  이상화 고택보존을 위해 100만인 서명운동을 했으며 모금운동을 펼쳐 현재의 고택을

보존하게 되었다.

이상화 고택과 서상화 고택까지 보존하게 되었다 

 이웃해 있는 서상화 고택도 찾아보자.

다도 체험도 할 수 있다.

근대의 정신적 지주 두분이 이웃해 살았다는 것은 굉장히 신기하고도

대단한 일인듯 하다.

대구에서 배출된 가장 큰 인물들로 손 꼽을만 하다.

 

 

 

 

 

 

 

 

 

 

 

 

 

 

 

 

 

 

 

 

 

 

 

 

 

 

 

 

 

 

 

 

 

 

posted by 산위의 풍경

옥간정에 갔더니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하는 소박한 정자.

그런데, 인적은 없고 굳게 자물쇠가 잠겼다.

길섶에 자리한 옥간정은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지만 들어갈 수 없다.

인적대신 나그네를 반기는건 지붕위 곧게 뻗은 와송뿐이었다.

여기저기 와송은 한껏 자라며, 이곳의 세월을 견디고 있을뿐.

깔끔하게 정리되어진 옥간정은 이렇게 말없이 나그네를 스치운다.

 

옥간정

유형문화재 제 270호

소재지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횡계리 439-3

이 건물은 조선 숙종대 성리학자인 훈수 정만양(1664-1730)선생과 지수 정규양 선생 형제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숙종 42년(1716년)에 세운 정자이다.

이들은 호수 정세아의 5세손으로 1730년 옥간정에서 강의를 시작하여 100명에 이르는 제자를 가르쳤으며 매산 정중기,풍원부원군 조현명 , 명고 정간 등 당대의 유명한 현인들을 길러냈다.

옥간정은 대지의 높낮이를 이용하여 전면을 다락집으로 꾸미고 뒷면쪽은 아담한 단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좌협칸 뒷면족으로 2칸 온돌방과 서재 1칸을 두어 ㄱ자형의 평면을 만들었다. 자연 환경에 순응한 독특한 평면구성 그리고 창호수법 등이 특징적인 건물이다.

-------안내문---

 

 

 

 

 

 

 

 

 

 

 

 

 

 

posted by 산위의 풍경

안녕하세요?

풍경입니다.

임고서원에서 만난 하얀 모시 두루마기를 입으신 어르신 사진을 찍었는데,

찍기만 하고 사진 보내주는이가 없다고,

사진을 보내 줄 수 있느냐는 어르신 말씀에 보내드리겠다고,,,,,,

그리고 실천을 했었지요. 사진을 찍어서 우편으로 보내 드렸다는 소식,

전에 발행한 글에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긴추석연휴를 끝내고 출근해 보니, 편지 한통이 저를 기다리고 있네요.

짧지만 답장을 주신 선생님께 저도 감사합니다.

사람의 인연의 끈이란 어디서 어떻게 만나서 묶어질지 모릅니다.

이번일을 계기로 언제 어디서나 성실하고 진심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진을 잘 찍지도 못한걸 보내드려 죄송스러운데 이렇게 편지로 답장을 주셨습니다.

편지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름다운 마음씨의 소유자,

ㅇ ㅇ ㅇ 씨 정말 감사합니다.

시골 늙은이의 체면없이 요구한것

다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이 실물 보다 낮게 잘 나왔읍니다.

항상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2014.09.01 "

사진 찍어서 보내 드렸을 뿐인데, 이렇게 정성으로 편지를 써서 보내주시니

제가 다 민망합니다.

 역시 서원에서 만난 어르신이라 연배가 훨씬 어린사람에게도

예를 다해 주시는것 같습니다.

덕분에 언제나 바르게 진실함을 가져야 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고맙습니다. 김 창회 선생님.

 

 

 

posted by 산위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