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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의 풍경
산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아픔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블로그기자단 기장군홍보단 기장군민필진 한국방송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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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지코지를 알게되었던건 오래전 방영 되었던 드라마 올인 때문이었습니다.

초록 언덕위에 있던 조그만 성당이 예쁘기도 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꼭 가보고 싶었습니다.

섭지코지를 가보게 된건 참으로 오랜 시간이 흘러서네요.

섭지코지에 다달았을땐 주차장은 그냥 일반 바닷가 여느 풍경같은 그런 모습이었는데

걸어서 언덕위로 점점 올라 갈수록 더 멋진 자연경관이 펼쳐져 있습니다.

걸어가야 하는길이라 힘드실까요?

풍경이는 신나게 걸었습니다. 더웠지요. 무척 더웠는데 섭지코지 등대로 올라가니 시원한 바람이 더해 주었습니다.

등대에서 본 섭지코지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것 같습니다.

예쁘게 단장된 걷는 도로가 굽이굽이 자연스런 맛을 더했네요.

섭지코지에 과자집이 있던데, 그곳은 그닥 인기가 없어보입니다.

너무 더운날씨 탓이었는지, 아이스크림집앞에만 몇몇 사람이 있을뿐이지요.

등대 밑 우뚝 솟아 있는 바위하나 있던데, 선녀바위라고 하던데요.

꼭 외돌개와 닮은듯 합니다.ㅋㅋ

덥지 않은 봄이나 가을에 다시 와봤으면 좋겠네요.

섭지 코지, 참으로 가보고 싶었던곳인데, 성산 일출봉 갔다 오던길에 들러봤습니다.

제주 여행지는 걸어서 다닐만한 곳이 많아서 더 매력적입니다.

걷는거 좋아하는 풍경이 오늘도 신나는 발걸음을 떼었지요.

편안한 한가위 보내세요.

 

 

부산은 어젯밤 지진으로 엄청 무서웠습니다.

처음 5.1지진일때는 " 어~ 뭐야 뭐야 지진이야? " 하면서 진동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검색을 해도 아직 지진에 대한 소식은 없더라구요.

몇분 지나고 나서 포털 사이트에 경주 진앙지 지진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러고 나서 시간이 지난후 다시 흔들렸습니다.

앞번 진동보다 더욱 심하게 흔들려 창문이라도 떨어지는줄 알았습니다.

식구들 모두 아파트 밖으로 다 나왔습니다.

너무 놀래서 다리가 후덜거리지 뭡니까?

한참 서성이며 진정을 한 후 집으로 들어왔지요.

무서웠습니다.

전에도 지진이 날때마다 민감하게 느껴서 진동을 몇번 느낀적이 있습니다만

어제의 지진동은 정말 심하더군요.

우리나라는 지진과는 먼 얘기인줄 알았는데, 요즘 자주 일어나는 지진이 심각하게 느껴집니다.

별일 없어야 하겠습니다.

섭지코지

제주도의 동쪽 해안에 자리잡은 섭지코지는 제주 방언 '좁은땅"이라는 뜻의 "섭지"와"곶"이라는뜻의"코지"가 합쳐져서 섭지코지라 하며 이곳에는 조선시대에 봉화를 올렸던 연대가 있다. 어느 해안과는 달리 붉은 화산재 송이로 덮여있고 해안가의 많은 기암괴석들은 마치 수석 전시회를 여는 듯 하며 선녀와 용왕신의 아들 간의 못다이룬 사랑의 전설이 담긴 촛대 모양의 "선돌바위"는 쉬이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 잡는다................................섭지코지 안내판

 

섭지코지의 과자집, 예쁜 성당을 기대하고 왔는데 과자집이 두둥~!

 

 

 

 

 

 

 

연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정치.군사적으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통신수단을 말한다. 봉수대와는 기능면에서 차이가 없으나 연대는 주로 구릉이나 해변지역에 설치되었고 봉수대는 산 정상에 설치하여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을 피워 신호를 보냈다 협자연대는 신양리 "섭지코지"에 있으며, 상부에는 직경 4.2m의 화덕 원형이 남아 있으며, 정의현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이 배치되었따. 규격은 하부 9m*8.9m, 상부8.6m*8.6m 높이 3.1m이다. 북쪽으로 오소포연대(직선거리 4.5km),성산봉수대(직선거리 3.2km)와 서쪽으로 말등포연대(직선거리 5.2km)와 교신하였다..........협자연대 안내판

 

 

 

섭지코지 등대

 

섭지 코지 등대에서 바라본 섭지코지 모습

 

"

선돌바위

 

 

posted by 산위의 풍경
2012. 2. 29. 19:15 산 그리고 사람

요약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봉수대.
지정종목 문화재자료
지정번호 부산문화재자료 제2호
지정일 1995년 12월 15일
소재지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산 52
시대 고려
종류/분류 봉수대
크기 면적 28,185㎡, 봉돈 지름 2.4m, 둘레 9m
기장 남산 봉수대 /
본문

1995년 12월 15일 부산광역시문화재자료 제2호로 지정되었다. 봉대산의 가장 높은 곳에 돌로 둥글고 높게 단을 쌓고, 그 위에 흙을 덮어 뾰족한 산봉우리처럼 만들어져 멀리서 봐도 모습이 수려하다. 985년(성종 4)에 설치하여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다.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편이다. 면적은 28,185㎡이고, 중앙의 봉돈은 지름 2.4m, 둘레 9m의 돌로 쌓여 있다. 높이 1.5m, 너비 1.5m, 지름 30~40㎝의 화로가 있었다.

경상도 지역의 봉수망 중 간봉 제8호인데, 왜적의 침입을 제일 먼저 알리는 곳으로, 남으로는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장산의 남쪽 산봉우리에 있는 간비오 봉화대에, 북으로장안읍 임랑리 뒷산에 있는 임랑 봉화대 및 이길 봉수대로 연락하였다.

불빛과 연기의 숫자에 따라 위급한 정도가 정해져 있었고, 궂은 날씨 때문에 신호가 불가능하면 봉수대를 지키던 군사가 릴레이식으로 다음 봉수대에 알렸다. 봉수대의 봉군은 200명이며, 봉수군의 직제는 도별장 1명을 두고, 그 밑에 다시 별장 5명~10명, 감고() 1명, 봉군은 100명씩 배치되어 있었다.

봉수대는 나라에 변란이 발생하였을 때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로 신호하여 군사정보를 중앙으로 알리는 옛 통신시설이다.

기장남산봉수대
기장남산봉수대
발굴조사전경
발굴조사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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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목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호
명 칭 기장남산봉수대 (機張南山烽燧臺)
분 류 유적건조물 / 교통통신/ 통신/ 봉수
수량/면적 1기 28,165㎡
지정(등록)일 1995.12.15
소 재 지 부산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산52
시 대 고려시대
소유자(소유단체) 부산광역시
관리자(관리단체) 기장군
상 세 문 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문화관광과 051-709-4062
봉수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급한 소식을 전하던 옛날의 통신수단을 말하며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에 있는 이 봉수대는 중앙의 봉돈은 지름 2.4m, 둘레 9m의 돌로 쌓여 있으며, 높이 1.5m, 너비 1.5m, 지름 30∼40㎝의 화로가 있었다. 남쪽으로 해운대 간비오산 봉수대, 북쪽으로 임랑 및 아이 봉수대에 연결되어 있다.

고려 성종 4년(985)에 설치하였으며, 고종 31년(1894) 갑오개혁 때 현대적인 전화 통신체제로 바뀌면서 폐지되었고,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된 편이다.

 
      -----문화재청에서-----발췌함



신문기사에 난지 몇달이 지난후 가본 남산은 상처투성이로 방치되어 있었다.
언제쯤 원형대로 복원이 되어 상처가 아물까?
고려시대의 봉화대라고 기사가 떠들썩하게 난후 봉화대 밑 작은 전망대에
텐트가 쳐지고 발굴단원이 머물고 했었는데, 지금은 그분들은 자취가 없다.
전에 없던 쓰레기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깨끗하던곳이 발굴로 인해 파헤쳐져 있는데다, 누가 버렸는지 알수 없는 쓰레기는 찾는사람들에게 매우 불쾌감을 준다.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이다.
답답한 산행후 올려본다.

posted by 산위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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