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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의 풍경
산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아픔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블로그기자단 기장군홍보단 기장군민필진 한국방송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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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여행 사도를 찾아가 봅니다.

여수 백야항에서 1시간정도면 갈 수 있는곳입니다.

백야항에서 개도-상화도-하화도- 사도 도착여정입니다.

사도와 작은이웃섬 추도사이의 바닷길이 매년 음력 2월15일경에 갈라지는 현상, 일명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다는곳이지요.

참 신기한 일입니다.

그 많던 바닷물이 빠지면서 섬과 섬 사이를 걸어서 건널만큼 길이 열리니 말입니다.

바닷물이 빠지는게 한순간 빠지는건 아닙니다. 몇시간에 걸쳐서 천천히 빠지기 때문에 기다려야 합니다.

물이 빠지는동안 추도도 배를타고 다녀오고 시루섬, 중도를 걸어갔다와도 됩니다.

볼거리가 많기 때문에 지루하진 않습니다.

사도에는 민박집도 꽤 여럿 있기 때문에 민박집에서 식사도 팝니다.

인원에 비해 식사를 적게 준비 해 주는게 흠이었습니다.

같은 돈 내고 뒷줄에 선 사람은 반찬이 제대로 없어서 식사에 불만이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추도의 적두암 변형 층리화석등은 부안의 그것과 견주어도 전혀 꿀림없는 대단한 자연의 경관입니다.

트레킹 하시는분들은 화하도 상화도를 차례로 하시는분들도 있었습니다.

1박하면서 천천히 느림의 여행을 해 볼만한 곳이예요.

이번엔 여행 동호회 카페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과 왔지만, 다음번엔 남편과 같이 다시한번 오고 싶은곳이예요.

 

 

사도항에 내리면 만나는 조형물 공룡

사도와 추도가 서서히 바닷길이 열리고 있습니다.

 

 

여행객들은 저마다 봉지하나씩 들고 열심히 고동을 주워 담습니다.

 

 

 

 

 

 

 

 

 

 

 

 

 

 

 

사도에서 말리는 해초, 건조하고 있는 저 해초 발 하나에 2500원정도

사도의 돌담이 정겹습니다.

 

추도항 좌측이나 우측 모두 공룡 화석지, 적두암 변형층리 화석 정말 멋진 지층경관이 감탄을 하게 만듭니다.

 

 

 

추도항에서 좌측으로 가면 이런 경관을 만나게 됩니다~

추도분교 올라가는길, 앞으로 추도 분교는 수리를 해서 민박집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신비의 섬 사도

 

posted by 산위의 풍경
2015. 9. 18. 16:19 영화in screen

 영화 사도는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의 영화입니다.

개봉전부터 관심이 뜨겁던 영화 '사도'

송강호와 유아인의 케미는 어떨까 무척 궁금 했습니다.

그리고 유아인과 송강호의 사극연기는 어떨까도 기대되는 부분이었습니다.

김해숙, 문근영, 전혜진등 연기파 배우들도 대거 등장하는 영화 '사도'

우리가 잘 아는 역사, 그러나 정말 그럴까? 항상 의문이 드는 내용이지요.

영조는 나이 40 이 넘어서 얻은 아들, 선을 어여삐 여겼고, 조선왕조중 누구보다 빠르게 세자에 책봉하였습니다.

그런데 선은 자라면서 점점 영조의 뜻에 어긋낫고 영조는 양위한다는 명목으로 세자를 괴롭혔습니다.

양위라는 것은 왕권을 세자에게 물려주겠다는 뜻이지만, 본심을 그렇지 않았으므로 대신들의 충성심과 세자의 효심을 떠보는 수단처럼 사용되었습니다.

곤룡포를 벗고 석고대죄, 머리를 땅에 지찢는 세자는 여러차례 밤을 세우며 양위한다는 영조의 어명을 거두는데 노력 해야만 했습니다.

영조는 숙종의 아들이고 이복 형인 경종의 요절로, 그리고 노론의 당파를 등에 업고 왕좌에 올랐습니다.

영조는 숙빈 최씨의 아들로 중전에게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정통성이 약했어요.

영조가 40넘어 얻은 아들 세자도 결국은 정통성이 없습니다.

중전이 낳지 않았고 경빈 이씨가 낳았으며 중전의 양자로 키워졌으니까요.

세자가 혜경궁 홍씨와 혼례를 올리고 낳은 아들이 훗날 정조임금입니다.

당시 중전은 아니지만 어쨌든 세자빈이 낳았으니 정통성은 있었겠지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왕권을 유지했던 임금, 영조 그는 82세까지 52년간 왕위를 유지했다고 전해지니까 엄청 나지요?

자기 자식을 어떻게 뒤주에 가두고 죽일 수 있었을까요?

영화 대사처럼 정말 권력은 부자사이에도 나눌 수 없어서 였을까요?

아님 정말로 사도세자의 정신세계가 이상하여 두고 볼 수 없었을까요?

죄를 물어 죽이면 역모죄인이 되고 그럼 세손도 위험지경에 빠지게 됩니다.

스스로 죽게 뒤주에 가둬 죽은후 뒤주를 열고 아들의 얼굴을 매만지던 영화속 영조의 눈물.

괜스레 저도 눈물이 나더군요.

정치적이던 가정사이던 어쨌든 아들을 죽여야만 하는 아비의 심경은 아무리 강직하고 변덕심한 영조라 하더라도

가슴을 저미는 슬픔이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죽은 아들에게 사도라는 시호를 내려 죄를 없애 주어 세손의 안녕을 지켜주려 했던 마음이 보이는것 같거든요.

사도... 죽음을 슬프게 생각한다?

아무튼 영화 '사도'를 보면서 조선왕조중 가장 잔인하고 가슴아픈 역사의 한장면, 비극이 아닐까 합니다.

영조의 송강호, 사도세자의 유아인 대단한 배우들의 모습  이번주말에 확인해 보세요.

 

 

posted by 산위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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