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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의 풍경
산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아픔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블로그기자단 기장군홍보단 기장군민필진 한국방송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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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 18코스중 곤을동 마을을 지나면 바로 화북동 마을이 이어집니다.

비석거리를 지나면서 이어지는 해안로를 따라 걷다보면 빨래터, 옛 민물터등이 나타 납니다.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올레길에는 많은 역사 유적지가 흩어져 있습니다.

비석마을을 지나면서 환해 장성이 있고, 별도연대가 있습니다.

해신사가 있고, 화북진지가 있습니다.

발길 닿은대로가 박물관 같은 구간이네요.

몽고항전을 벌이던 삼별초군의 환해장성은 고려말부터 조선시대까지 외침에 대비한 환성이었습니다.

 화북진지, 바다의 안녕을 빌던 제주 특별자치도 기념물 제 22호인  해신사, 제주도민의 애환을 간직한 화북지서 옛터 추모비.

아직 남아 있는 옛 발자취를 소중히 여겨야 할 곳, 제주 올레길 18코스에서 만나는 역사의 한페이지입니다.

더운 여름, 오늘도 건강하세요.

화북동 문화유적 탐방 안내

화북 비석거리

 

 

 

 

곳곳에 남아 있는 민물 솟아 오르는곳, 빨래터. 추억이 샘솟는 장소들 많은 제주 올레길 18코스

화북지서 옛터 추모 ,표지석.

추모 비석만 남아 있다. 최근에 세운 표지석

 

 

 

 해신사

해신사는 순조 20년에 제주 목사 한상묵이 화북포구에 설립했따.

헌종 7년 제주 목사 이원조가 해신사를 고쳐 지었고 현종 15년에는 제주 목사 장인식이 돌에 해신지위라고 새긴 위패를 제작하였따.

해신사는 유교식 해신제를 지내는 곳으로 예부터 제주에서는 관원과 공마수송 등 물자를 이동할 때마다 해상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해신제를 지냈다.

화북포는 조천포와 더불어  제주의 대표적 해상 관문이었기 때문에 이곳에 해신사를 창건하여 해신제의 제장으로 이용했다.

화북동의 해신사는 조선후기 관에서 설립한 유교식 해신제 사당으로 19세기 당시 해신사의 해신제는 제주 목사를 중심으로 관에서 치르던 의례였다. 그러다가 20세기 들어서는 점차 화북마을의 어부와 해녀들을 중심으로 해상의 무사고와 풍요를 비는 제사로 변화했으며, 최근에는 화북마을 전체의 무사안녕과 생업의 풍요를 기원하는 마을제로 바뀌었다.

현재 해신제는 화북동의 유일한 마을제로 장인식이 제주 목사였던 때에는 음력 1월 6일에 제를 올렸으나 현재는 음력 1월 5일에 제를 올리고 있다. 제관 5명이 제사를 맡아 치른다.

 해신사

 이 옷은 도 지정 기념물 제 22호 지정된 해신사로 해상을 왕래할 때 안전을 기원하기 위하여 화북포 해안에 사당을 짓고 매년 정월 보름 해신제를 지내도록 한 곳으로 수중한 우리 고장의 문화재 입니다. 최근 이곳을 출입하기 위하여 무단으로 담을 넘어가는 행뤼로 인하여 기와가 파손되고 해신사 내부가 쓰레기로 오염되고 있습니다.

이예따라 재난방재 및 문화재 보호관리를 위하여 cctv및 본 경고문을 설치하오니 무단으로 담을 넘는 행위 및 내부에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를 금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이 사항을 위반하여 적발 시 문화재 보호법  제 101조 2항에 의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처벌을 받게 됨을 알려 드립니다.

 

 가볼곳 , 볼거리 많은 화북동 마을 올레길 18코스

 

 

빨래터로 사용하던곳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었다.

제주 18코스, 이런곳 자주 있어 궁금?

이곳이 뭐하는 곳일까?

민물이 샘솟던 곳,

 

환해 장성모습

 

환해 장성

제주도 특별자치도 기념물 제 49호

제주특별자치도 해안선 300여리(약 120km) 에 쌓여진 석성을 말한다. 1270년(고려 원종11)몽고와의 강화를 반대한 삼별초군이 제주도에 들어가 용장성을  쌓아 대몽항쟁을 전개하였다. 

제주 토속 지붕 모습

 

새각시물

옛 사람이 여자의 몸매를 닮았다고 하여 새각시물이라 이름하였네.

마시고 몸감고 빨래하던곳

해안도로 개설로 길속에 물일뻔

보조금 받아 복원하였으니 아끼고 즐겨보세

 

 

별도(화북)연대

 

환해장성

 

 

 

 

 

 

 

 

posted by 산위의 풍경

제주 올레길 18코스는 제주 현지인이 추천해 준 코스입니다.

올레길 코스중에 가장 긴 코스중 한곳이기도 하고, 제주에 남아 있는 옛모습을 많이 볼 수도 있고

역사적 유적지도 많아서 볼거리 다양하고 풍성한 올레길 입니다.

사라봉에서 애기업은 돌을 지나면서 펼쳐지는 화북동마을 가기전, 곤을동 마을 입니다.

4.3유적지로 마을 터만 남아 있는곳, 인적 없이 텅빈 마을이 역사의 현장 자체 입니다.

제주는 몽고란, 왜의 침입등의 전쟁이 쓸고간 아픔도 크지만, 우리 민족끼리의 상쟁도 또한 아프고 아픈 역사의 현장입니다.

특히 4.3운동은 한때 폭동이라 명명되면서 언급조차 금기시 되기도 했습니다.

4.3운동 발발 67주년, 4.3추모식을주도한 김석범, 김 명식,강창일 삼인의 기사도 인터넷에서확인해 봤습니다.

제주의소리 http://www.jejusori.net/?idxno=160412&act=articleView&mod=news

아직도 명확하게 규정되어 지지 않은 역사.

이런 아픔은 다시는 일어나지않아야 할 역사입니다.

바로 알고 되새겨야 하겠습니다.

1.JPG
▲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67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서 만난 재일동포 소설가 김석범씨(90), 김명식 시인(72), 강창일 의원(64). ⓒ제주의소리

애기 업은 돌에서 넘어가면 펼쳐지는 화북마을 닿기전,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 마을 4.3유적지가 나타난다.

잃어버린 마을(곤을동)제주시 화북동 4440번지 일대

곤을동 은 제주시 화북 1동 서쪽 바닷가에 있던 마을이다. 4.3이 일어나기 전, 별도봉 동쪽 끄타락에 위ㅎ한 안곤을에는 22가구 화북천 두 지류의 가운데 있던 가운데곤을 에는 17가구,

밧곤을에는 28가구가 있었다.

곤을동이 불에 타 폐동이 된 때는 1949년 1월4일과 5일 양일이었다.

1949년 1월4일 오후 3~4시께 국방경비대 제 2연대 1대소 소대가 곤을동을 포위했다. 이어서 이들은 주민들을 전부 모이도록 한 다음 젊은 사람 10여명을 바닷가로 끌고 가 학살하고 안곤을 22가구와 가운데곤을 17가구 모두를 불태웠다.

다음날인 1월 5일에도 군인들은 인근 화북초등학교에 가뒀던 주민 일부를 화북동 동쪽 바닷가인 연디밑에서 학살하고 밧곤을 28가구도 모두 불태웠다.

그후 곤을동은 인적이 끊겼다.

제주시 인근 해안마을이면서도 폐동돼 잃어버린 마을의 상징이 된 공을동에느 지금도 집터 , 올레(집과 마을길을 연결해 주는 작은길)등이 옛 못ㅂ을 간직한 채 4.3의 아픔을 웅변해 주고 있다.====4.3 유적지 안내문

 

터만 남아 있는 곤을동 마을.

 

그저 돌담만 남아 있어 이곳이 집터라는 것을 알리는듯, 인적 없는 곤을동 마을.

 

 

 

 

 

 

 

 

 

 

posted by 산위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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