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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의 풍경
산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아픔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블로그기자단 기장군홍보단 기장군민필진 한국방송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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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소대는 진남관 맞은편에 있다.

진남관옆 전라 좌수영 다리를 건너가 올라가면 오른쪽으로는 이순신의 발자취를 따른 벽화가 새겨져 있다.

고소대에는 세개의 비석이 있다.

수군대첩비와 동령소갈비, 그리고 타루비이다.

타루비는 이순신이 해전에서 죽음을 맞이한 5년후 그의 부하와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하여 세운 비석이다.

비석을 바라보며 생각만 하여도 눈물이 난다는 타루비.

이순신 장군을 향한 충성심과 그리움이 그대로 묻어나는 타루비이다.

타루비는 보물1288호리다.

 고소대 올라가는 길에서 바라본  진남관

 

 거북선 축제

이순신 장군의 호국정신을 이어 받고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해 1967년 부터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 수군을 이끌고 첫 출전 하였떤 날을 기념하여 진남제로 시작했고 해마다 5월3일부터 열린다.

 바다 속에 쇠사슬을 설치하다.

이순신 장군은 왜적이 갑자기 전라좌수영을 향해 쳐ㅡㄹ어올 경우를 대비하여 전라좌수영 부두의 동쪽 종포와 돌산도 사이의 바다를 가로지르는 쇠사슬을 설치하고자 성생원에서 돌을 깨어와 방어시설을 설치하였따.

 거북선을 만들다.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이순신 장군이 군관 나대용을 시켜

세계 최초 철갑 거북선 3척을 만들었따. 필요한 목재는 도란도 금오도 경도 등에서 베어와 사용하였다.

 

 여수에서 출전하여 승리하다

이순신 장군은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뒤 1년동안 전투 준비에 온 힘을 기울여 경강도로 나아가 싸울때 마다 크게 이겼다.

이 해전에는 전라우수영, 경상우수영, 수군도 참여했으나, 주력부대는 전라좌수영 수군으로서 이순신 장군의 지휘 아래 이루어진 승리였다.

 여수가 삼도수군 통제영이 되다.

1593년 8월30일 이순신 장군은 전라도,경상도, 충청도 3도와 수군을 함께 이끌도록 삼도 수군통제사에 임명되었다.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사로서 삼도수군통제사를 겸하게 되자 그의

본여이었떤 여수의 전라좌수영는 자연히 삼도수군통제사의 본영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돌산 둔전을 일구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은 돌산 둔전을 일구었다.

이는 군량미 마련과 전쟁으로 인한 피난민을 안정적ㅇ로 정착시키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전라좌수영 수군은 계속하여 승리할 수 있었다.

 난중에 어머님께 효를 다하다.

이수신 장군은 1593년 팔순에 가까운 어머니를 고음천(웅천동 송현마을)정태수장군의 집에 모시고 수시로 문안을 드렸따.

하루는 늙어가는 아들을 보며 슬퍼할 머머니를 생각하며 문안가기 전 자신의 흰 머리를 뽑았다고 한다.

 왜적을 막으려 석인상을 세우다

이순신 장군은 군선들을 매어놓은 기둥이 밤에 왜적들에게 병사처럼 보여 접근을 막기 위해 전라좌수영 남문 밖 선소 등에 석인상 7개를 세워 두었으니

현재는 진남관 앞에 1개만 남아 있다.

 통제 이공 수군대첩비와 타루비

통제 이공수군대첩비(보물 제 571호,1615년)는 이수신 장군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비로 왕의 명령을 받고 이항복이 비문을 지었따.

타루비(보물제1288년),1603년)는 이순신 장군의 부하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세운 비석이다. 동령소갈비는 대첩비 건립 경위를 적은 비로 충무동에 300여년 있따가 일제강점기에 철거하여 경ㅗㄱ궁 땅속에 감춰둔 것을 해방 후 찾아와 고소대에 세웠다.

 충민사, 석천사를 세우다.

충민사는 이수신 장군이 전사한 지 3년만에 선조대왕의 왕명으로 세운 이순신 장군의 최초 사액 사당이다. 조선수군의 본부였던 전라좌수영에 세워졌다는 점과 이순신 장군의 지휘아래 싸웠떤 현지 수군들이 사당을 세우는데 직접 참여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충민사 옆 석천사는 이순신 장군을 기리며 충민사를 관리하고 제사했떤 의승수군 옥형 등이 살던 암자였다.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 여수에 오다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사가 된 것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 1591년 2월13일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순천부사 권준을 만난 후 성생원(율촌면)에서 쉬었다가 덕양역(소라면)과 석보창(여천동)을 거쳐 전라좌수영성에 도착하였다.

 

 

 

 

 

 고소대

일종의 포루로써 장래로 사용되었으며 충무공 이순신이 군령을 내리던 곳이라고 한다.

현재 이곳에는 이순신의 승리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통제이공 수군대첩비 , 이 비석의 건립 경위를 기록한 동ㄹㅇ소갈비,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자 부하들이 공의 죽음을 슬펴하면서 세운 타루비가 있다.

 

 

 

 타루비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추모하기 위하여 1603년(선조36년)에 부하들이 세운 공덕비이다. 타루는 비석을 바라보면 눈물을 흘리게 된다는 중국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충무공 이순신을 추모하는 부하들의 충심이 비 이름에 그대로 묻어 있다.년(숙종 24)에 이수신을 숭모하는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으로 , 대첩비를 건립하는데 참여한 인물들과 그 경위, 그리고 건립하기 까지의 어려움 등이 기록되어 있따. 기록은 진안현감 심인조가 남겼다.

동령소갈비는 1698

 

 

 

 

 

posted by 산위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