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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의 풍경
산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아픔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블로그기자단 기장군홍보단 기장군민필진 한국방송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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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여행중 가보고 싶었던 전등사,

이곳에 초등학교때인지 중학교때인지 가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기 자기 빨간 바지 입고 찍은 사진 있지 않아?" 하는 남편의 말,

친정집에 있던 저의 어릴때 사진을 기억하고 있었네요

"응, 맞아요. 그때 갔던 기억이 있는데, 다시한번 꼭 가보고 싶어요."

그래서 전등사를 두둥 찾아갔지요

부처님 오신날이 가까워지고 있으니 입구부터 등을 달아 두었습니다.

대웅보전 앞 절마당은 울글 불긋 갖가지 전등이 차지를 하고 있네요.

사다리를 놓고 이제 막 설치를 하고 계셨어요.

전등사는 고려왕실의 원찰이라고 하더군요.

전등사 홈페이지에 소개되어 있는 우리나라 불교 유래의 역사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불교가 국교로 인정받은 것은 372년(고구려 소수림왕 2)의 일이다.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고구려가 삼국 중 가장 먼저 불교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 당시 일반 백성들 사이에는 불교의 저변이 어느 정도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대개 새로운 종교는 일반화 과정이 진행된 후 왕실이나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선포하기 때문이다.
고구려 소수림왕이 불교를 국교로 선포하자 전진의 부견왕은 법사인 순도(順道)와 불상, 불경 등을 고구려 왕실로 보냈다. 소수림왕은 성문사(373년 창건)와 이불란사(375년 창건)를 짓게 하고 성문사에는 순도, 이불란사에는 아도로 하여금 머물게 했다. 따라서 이 두 절은 한국 최초의 사찰로 기록되고 있다.

강화도는 섬 자체가 우리나라 역사의 축소판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선사 시대의 고인돌 유적부터 단군왕검의 얼이 담긴 마니산, 고려 때의 대몽항쟁과 팔만대장경 조성, 서양 세력과 처음으로 전투를 벌였던 ‘병인양요’에 이르기까지 강화도의 역사는 곧 한민족의 역사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지금도 강화도는 역사와 문화의 섬으로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강화도에는 전등사를 비롯해 유서 깊은 사찰도 많이 터 잡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호국불교 근본도량인 전등사와 전등사보다 300여 년 후에 세워진 보문사 및 정수사가 손꼽힌다.
전등사는 현존하는 한국 사찰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졌으며, 부처님의 가피로 나라를 지킨 호국불교 근본도량으로 역사와 권위를 간직한 사찰이다. <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바와 같이 삼랑성은 단군이 세 아들(三郞)을 시켜 쌓았던 고대의 토성이었고, 삼국시대에는 토성 자리에 석성을 쌓아올려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삼랑성 안에 자리 잡은 전등사는 세 발 달린 솥을 거꾸로 엎어놓은 모양을 가진 정족산(鼎足山)과 더불어 강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화 유적으로 유명하다.
전등사가 창건된 것은 서기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년)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래된 것이 서기 372년이므로 지금은 그 소재를 알 수 없는 성문사, 이불란사(375년 창건)에 이어 전등사는 한국 불교 전래 초기에 세워진 이래,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도량임을 알 수 있다.
처음 전등사를 창건한 분은 진나라에서 건너온 아도 화상이었다. 당시 아도 화상은 강화도를 거쳐 신라 땅에 불교를 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도 화상이 강화도에 머물고 있을 때 지금의 전등사 자리에 절을 지었으니 그때의 이름은 ‘진종사(眞宗寺)’라 하였다.

--------------전등사 홈페이지에 있는 전등사의 유래-------------------

 

강화도는 역사의 현장의 한가운데서 오랜세월을 버티어온 우리땅입니다.

대몽항쟁으로 팔만대장경 조성, 서양세력의 침입을 막던 병인양요 등등 우리나라의 위기때마다 방패같은 역할을 했던곳이라 할까요?

전등사의 전신이 진종사라고 중국에서 건너온 아도화상이 머물러 지은 절이라고 하네요.

 

전등사가 역사의 전면에 다시 나타나는것은 병인양요.

바로 양헌수 장군이 프랑스 군대를 물리치는 현장이기도 하지요.

정족산에 위치한 전등사는 삼랑성안에 위치한것이지요.

전등사  대웅보전과 약사전을 지나 좀더 위쪽으로 가면

실록을 보관했던 사고가 있었습니다.

지금 그 안에서는 작은 전시회가 열리고 있고요.

사고를 마주보고 오른편으로 돌면 삼랑성 북문으로 오를수 있는 숲길이 있습니다.

북문만 오를려고 했는데, 사실 처음에 이길을 못찾고 사고에서 내려오면서  오른쪽으로 내려와서 숲길을 올라가니 서문이 나오더라구요~

서문에서 북문까지 더 걸었습니다.

그것도 구두를 신고.....아놔, 신발 갈아신고 올라올걸~

여기까지 오를줄 모르고 구두신은채로 원피스를 입고 산을 올랐어요.

이곳은 산성을 한바퀴 다 돌수 있나봐요.

'성돌이길 '이라고 안내판이 서 있었어요.

그리고 양헌수 장군의 승전비를 보실분은 동문으로 가세요.

전 요걸 못보고 와서 넘나 아쉬워요.

 한국사 공부를 해보니, 자꾸 자꾸 역사의 현장에 가보고 싶어 지는거 있지요?

공부를 하는 학생들은 책에서 보는것보다, 이렇게 현장에 가서 직접 체험해 보는것이 실질적 교육이 될것 같습니다.

오래 기억에 남고 말이지요.

강화도 여행, 아직도 갈곳은 많은데 시간이 좀 없네요.

다음엔, 고려궁지를 가볼게요~

요즘은 전등사에서 템플스테이도 하더군요.

이런 체험도 좋을것 같아요~

 

 

 

 

 

 

posted by 산위의 풍경

나홀로 친정가는길

 

결혼하고 25년동안 한번도 친정을 혼자서 간적이 없다니 놀랍네요.

생각해보니, 한번도 혼자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적조차도 없습니다.

늘 남편과 동행이었고 가족동반이었습니다.

이번에 혼자 나서는 길은 동창들과의 여행을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토요일 저녁에 나서면 새벽에 양평에 도착해서 바로 여행길을 떠날 수는 있지만

혼자있는 엄마곁에 잠깐이라도 있어야겠다 싶어서 금요일 아침에 출발했답니다.

동해선은 부전에서 청량리까지 한번에 갈 수 있습니다. 기장에서 기차를 타면 바로 양평까지 도착입니다.

차 한번만 타면 될 곳을 마음의 거리로 달려가지 않았는지 반성도 해 봅니다.

모처럼 딸래미 혼자 친정엘 오니 엄마는 무척 반기십니다.

또 막내 동생이 운전을 하니 좋은게 양평역까지 마중을 와서 엄마집에 딱 데려다 주니 참 좋은 세상입니다.

엄마가 계속 입맛이 없다고 하셔서 걱정이었습니다.

어제는 동생이 한우를 사 드려도 제대로 드시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오늘은 오리고기 드시러 가자고 했더니 흔쾌히 따라 나섭니다.

고기도 잘 드시고 식사도 좀 하셔서 다행입니다.

집으로 돌아와 엄마가 좋아 하시는 고스톱 놀이를 해 드립니다.

주머니에 있는 잔돈은 싹다 털어서 게임을 시작합니다.

딸들과 이렇게 노는것 정말 좋아 하시는 엄마입니다.

엄마는 혼자 계셔서 자식들이 많이 그리웠을 겁니다.

그마음을 조금은 알기에 엄마와 실컷 놀아 드립니다.

친구들과의 여행약속이 아니었으면 어쩌면 엄마한테 와볼 생각도 안했을지도 모릅니다.

엄마와 하룻밤을 지내고 동창들과 약속시간때문에 새벽일찍 집을 나서는길

엄마를 꽉 안아 드렸습니다.

"엄마, 건강하게 지내세요~"  엄마도 딸래미 건강 잘 챙기며 지내라고 당부하십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들과 버스로 강화도 석모도 여행을 떠났습니다.

여행은 즐겁고 신나지요. 오랫만에 만나도 어릴때 친구들이라 허물없고 어제 만났던듯 반가운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초지진을 들르고 석모도 보문사를 향해 갔습니다.

보문사 뒷쪽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까지 올라갔다왔습니다.

이제 막 단풍이 든 절집에 고목들이 마지막 화력을 다하듯이 붉게 물들고 있었습니다.

사찰 구석 구석을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사진을 찍고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여행을 마치는 순간, 아쉬운 작별의 순간이지요.

돌아올때는 서울 장안역에 내려서 지하철로 서울역으로 와서 KTX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왔습니다.

부산에서 양평까지 친구들 여행 모임에 참석해 줘서 고맙다고, 마음먹기 쉽지 않을텐데 와줘서 고맙다는 친구들에게

더 고마운 하루였습니다.

얼마나 살갑게 챙겨주던지요.

이래서 정말 친구가 좋은거지요.

마음조차 쓸쓸해지기 쉬운 가울, 뿌듯하고 기쁨 한가득 담고 왔는데,

동창 한명이 쓰러져 운명을 달리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에 마음이 또 쿵 내려앉았습니다.

나이 아직 오십도 안된 동창들이 너무나 빨리 운명을 달리 하니 말입니다.

원래 여행도 같이 가기로 했었는데 일때문에 못왔다는 친구는 그렇게 쓰러져 친구들과 말한마디 못하고 유명을 달리 했습니다.

마음이 버겁고 힘든가을이 되었네요.

우리, 건강 잘 챙겨야 겠어요.

역시 오는것은 순서가 있어도 갈때는 순서가 없다는 어른들 말이 백번 천번 지당한 말씀이네요.

 

 

 

 

 

보문사 중심에 자리한 극락보전은 정면 5칸측면 3칸에 내부 60평의 규모로 1972년 정수스님이 중수하였습니다. 법당 내부는 상단에 아미타부처님과 대세지보살, 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고 중단에 지장보살, 대세지보살, 관세음보살과 신중탱화가 하단에 영가단이 모셔져 있습니다.

또한 상단 뒤편으로 삼천 옥부처님이 법당에 장엄함을 더하고 있습니다. 삼존불 위로는 닷집이 조성되어 있으며 천정의 좌우로 각 하나씩 용상이 지나다니고 또다른 한 쌍의 용상이 전각의 안에서 밖으로 머리를 내미는 형태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전각의 출입문은 채색된 꽃 무늬 문살로 소박한 멋을 더하고 있습니다.

-극락보전 안내문-

 

 

 

 

 

 

보문사 윗쪽 바위에 새겨진 마애석불

 

 

 

 

 

 

보문사 와불전의 와불은 열반하는 부처의 누워있는 모습으로 본래 보문사에 있는 천인대라는 바위레 새겨 조성하였다.

천인대는 이절의 창건 당시 인도의 한 큰스님이 불상을 모시고 이 천인대에 날아왔다고 한다.

그뒤 이 바위는 법회 때 설법하는 장소로도 사용되었는데 이 바위 위에 일천명이 능히 앉을 수 있다고 하여 천인대라고 한다.

전각의 내부는 부처님의 뒤로 공간이 있어 주위를 돌면서 참배를 할 수 있다. 부처님의 누워계신 모습과 손의 모양, 불의의 주름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고 운양이 새겨진 열반대는 구름모양이 수려하고 아름답게 조각되어 있다.

1980년에 조성을 하여 2009년 3월에 조성 완료되었다. 너비 13.5M, 높이 2M이다.

 

보문사 와불

 

 

신라 선덕여왕때 건립한 보문사는 나한상을 모신 보문동천으로 유명하다. 한때는 보문사 승려와 수도사들이 300명에 이르렀다고 하는 데 이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때 사용했던 맷돌이 아직도 남아 있다. 보문사 맷돌은 크기가 지름 69CM, 두께 20CM로 일반용 맷돌보다 두배 정도 큰 화강암 맷돌이다.

 

보문사 맷돌

 

posted by 산위의 풍경

양평 가볼만한곳 중, 자작나무가 있어서 정말 좋아하게 된 곳,

서후리숲입니다.

2년만에 찾아가 본 서후리숲 녹음이 짙어져 상쾌함이 더합니다.

꽃이 많이 있진 않습니다.

자작나무를 무척 좋아하니까 빨리 보고싶어서 열심히 걸어올라갔습니다.

하얀 자작나무가 예뻐서 찾아가서 보게 됩니다.

남편과 둘이서만 아무도 없는 숲을 천천히 걸어봅니다.

꽃이 있으면 꽃을 바라보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으며

고요한 숲길에서 호흡합니다.

A,B코스가 있어요.

저는  A코스로 걸었습니다.

단풍나무숲, 참나무숲,참나무숲,산딸나무, 산수국이 지천으로 있어요

 

풍경이는 두번째인데, 남편은 처음이예요.

참! 좋구나 합니다.

자작나무숲에서 한참을 머물며 사진을 찍었지요.

평일에 이렇게 여유로운 숲속 산책길은 힐링이 절로 되는 시간입니다.

아름다운 숲에서 천천히 걸어가니까 마음도 편해지고 말입니다.

남편이 양복입고 숲을 오게될줄은 몰랐어 ....합니다.

아무 준비없이 그냥 아버지 산소갔다가 오는 바람에 일어난

 

고향 양평에 이런숲이 있다는것이 자부심을 가질만한 명소로 거듭나길 바래봅니다.

찾아가 본 사람이 다시 가보는 곳, 양평 서후리숲입니다.

아직은 어린 자작나무숲이 세월이 가면서 더 굵어지고 우거지면 양평의 명소가 되겠지요?

풍경이가 추천하는 양평 가볼만한곳, 서후리 숲이었습니다. ^^

 

서후리숲 입장료 5000원

 

 

 

 

 

 

 

 

 

 

 

 

 

 

 

 

 

 

 

 

 

 

 

 

 

 

 

 

 

 

 

 

 

 

 

 

 

 

 

 

 

 

posted by 산위의 풍경

양평을 갔습니다.

아버지 기일이었습니다.

제사는 필자가 모셨었는데, 시어머니와 제사때문에 불화가 생겨서

제사를 친정엄마가 모시고 갔습니다.

그리고는 성당에 올렸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기일에는 산소에 다녀오는것으로 대신합니다.

지금 한창 시험기간이라 부산에서 양평까지의 길, 가깝다고 할 수 없는 거리잖아요?

그래서 가지말자고 했더니 남편은 "그럼 마음이 불편하잖아,  그냥 다녀옵시다." 하더군요.

고마운 마음으로 갔습니다.

퇴근하고 가니 밤에 도착을 하게 되지요.

다음날 아침 일찍  산소에 다녀오고 나서 부산까지 그냥 내려가기 아깝다고

가고싶은데 말하라고 하네요.

남편 덕분에 오랫만에 양평지역을 쓸고 다녀봅니다.

양수리 아시죠?

예쁜 우리말로 두물머리.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곳이예요.

가끔 드라마에서 보던곳, 돛단배도 만들어서 있던데, 바람때문인가 묶어 놨더군요. ^^

날씨가 청명하면 너무 예쁜곳인데, 날씨탓에 그렇게 쨍하진 않아요.

그래도 두물머리, 댜녀와서 좋아요.

이곳엔 카페들이 굉장히 많아요.

조금더 더워지면 더워서 안좋지만, 예쁜 연꽃이 필테니까

또 그 맛에 한번 더 가고싶은 곳이예요.

새벽이면 안개가 유명한 두물머리지요.

아름다운 이곳 양평, 고향입니다.

 

 

 

 

 

 

 

 

 

 

 

 

 

 

 

 

 

 

 

 

 

 

 

 

 

 

 

 

 

 

 

posted by 산위의 풍경

용주사 http://www.yongjoosa.or.kr/

절집을 많이 돌아 다니긴 했지만, 이곳이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즉, 경의 왕후를 모신곳이라는것을 몰랐었네요.

정조와 효의 왕후를 모신곳이라는 것은 용주사에 가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정조는 능행을 올때마다 용주사에 들러 능침을 부탁하곤 했다고 해요.

  일화에 따르면 정조가 능행을 왔을때 솔잎을 먹는 송충이를 보고

크게 슬퍼하며 억울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송충이까지 괴롭힌다 여겨

이로 송충이를 죽이자 동행한 시종들이 놀라 함께 송충이를 없앤후

다시는 능 주변에 송충이가 생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용주사는 효행을 근본으로 하는 사찰이랍니다.

용주사는 곳곳에 정조의 흔적이 있는곳이라 그러려니 싶은 생각이 들게 됩니다.

용주사의 특이한점은  해설사의 해설에 따르면 김홍도의 탱화를 들 수 있겠습니다.

확실하지 않지만, 거의 그렇다라고 보여진다는데요.

서양화법의 음영이 반영되었다는것이 큰 특징이라고 합니다.

김홍도의 그림이 확실해지면 이 탱화도 보물이 되겠지요? 지금은 경기지역 유형문화재 16호이지만요.

대웅전의 탱화가 다른것과는 기법이나 색감이 다르다는것을 보시면 한눈에 알게 되실거 같아요.

오래된 사찰이다보니, 일제시대를 어떻게 그냥 지나쳤을까 싶은데, 일제의 잔재도 남아 있긴합니다.

새로 알게된 용주사에는 보물 범종이 있는데 기법은 고려초의 형태라고 합니다.

명문탁본을 보면 시대별로 문양이 다른데, 여러 종류의 기법과 표현이 되었다고 하네요.

역시 해설사와 동행하며 듣는 역사 해설도 재밌기도 하고 색다릅니다.

화성에 가시면 용주사도 꼭한번 들러 보시길 바랄게요.

부모님을 생각하는 효심을 전통적인 유교적 이념이 아니라 불교의   용주사라는

사찰에서 마주하니 이색적이긴 합니다. ^^

 

 

 

 

용주사 입장료

개인 어른 1500원 청소년1000원 어린이 700

단체 30명이상 단체 어른1300원  청소년 800원 어린이500원

 

효행박물관

 

 

 

 

 

 

 

 

용주사 범종

용주사 천보루

 

 

 

용주사 탱화

 

 

 

 

 

 

 

 

 

사도세자와 정조를 모신 위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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