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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의 풍경
산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아픔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블로그기자단 기장군홍보단 기장군민필진 한국방송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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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생활하고 있는 아들 덕분에 요즘 영천시에 자주 가게 됩니다.

아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느라 여행도 같이 하고 말입니다.

이번엔 영천시 자천마을에 있는 영천성당 자천공소를 가보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영천 자천교회를 가다가 만나게 된 자천공소.

공소라는 곳은 학교로 치면 분교처럼 본 학교가 있고 분교가 있듯이 성당이 있고 지역에 공소가 있답니다.

자천 교회를 가다가 만난 한옥으로 생긴 예쁘고 깔끔한 영천성당 자천공소가 너무너무 맘에 들더군요.

자천교회는 근대문화재 신청을 해서 영천시에서 홍보도 하니까 잘 알려졌지만, 거의 비슷한 시기의 종교시설임에도 불구하고

영천성당 자천공소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자천마을 공소는 영천성당이 생기기전 교리공부를 하면서 미사를 올리던 곳입니다.

이곳도 80여년쯤 된곳인데, 사람들이 자천교회는 알아도 자천 천주교 공소를 모르더군요.

공소에 교리및 미사를 보았던 옛건물은 백년은 되어보이는 건물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공소가 자리잡은지는 100년은 못되었지만, 건물의 나이는 공소시작 나이보다는 훨씬 많으니까요..ㅋㅋ

풍경이가 방문했을때, 두분의 신자분들이 열심히 설거지 중이셨어요.

아주 친절하시고, "죄송하지만 성당 사진좀 찍어도 될까요? " 했더니 아주 친절하게 사진 촬영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공소앞 반송이 한그루 있는데 아주 예쁜소나무입니다.

그리고는 아주 깔끔하게 정돈된 공소와 한옥 두채, 새로 간이건물로 지은 식당같은곳이 있지요.

자천공소를 보고나서 알아보고 싶어졌어요.

아래의 연두색 박스안의 글은 다시래기님 블로그에서 옮겨온 글이랍니다.

아주 자세하게 자천공소에 대해 알고 계셔서 저도 거기서 좋은 정보를 많이 알게되었습니다.

 

박해의 시기에 굳건한 믿음으로 작은 공소를 지켜내고, 십시일반 모금과 헌금으로 공소건물을 확장해 내셨네요.

영천시 자천교회를 찾으시는길이라면 50미터도 채 떨어져 있지 않은 천주교 자천공소도 꼭 들러보세요. ^^

1926년 5월 대구에 살던 노반석(가밀로)형제가 이주하며 전교와 함께 설립하였는데, 처음에는 자천3리 714 번지와 715번지 초가 두채를 매입하여 공소로 사용하였다.

1927년 용평본당 2대 주임 유흥모신부님이 질구지 공소를 폐쇄하고  자천으로 옮겼으며 10년후인 1937년 영천본당 초대 주임이신 조레이몬드푸르다드보 신부님이 용평본당 소속에서 영천본당으로 옮기셨다.

1940년 죈부님이 500원, 교유들희 헌금 300원, 전 공소 매각대금 60원 , 서병훈씨 회사금 100원으로 성전기금을 마련하여 서병훈씨 소유이던 1806번지소재 기와 두 채를 900원에 매입하여 공소를 이전하였다.

공소 종댓와종은 정마리아가 기증하였으며, 그후 1943년 공소 밭 177평을 기증하였다. 1942년 신자수가 증가하자 본당으로 승격되어 최재선 신부님이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였으나, 3개월후 사상이 불온하다는 이유를 구실로 영천경찰서에 투옥되어 6개월간의 옥고를 치렀으며, 1943년 2월에 석방되어  곧바로 대구 계산동 주교좌성당 보좌로 전임되자 자천본당은 다시 공소로 환원된다.

최신부의 구속이후 일본 경찰은 공소에 대한 탄압을 더욱 가했으나 이윤영(바오로 ,제3대)회장을 비롯한 신자들은이에 굴복하지 않고, 끊임없는 기도와 함께 종을 수호하며

더욱 신앙생활을 공고히 하였다.

주일마다 경찰의 집회 허가를 받아가면서도, 19년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공소예절을 계속하며 지역선교에 열중하였다. 1945년 8월15일 해방과 함께 신앙의 자유를 되찾았으나, 1950년 6.25사변을 거치면서 종댓와종이 폭격으로 소실되는등 막대한 신앙의 상처를 받기도 하였다.

공소의 소나무는 1962년에 심었고, 1963년 2월 최봉도 신부님이 8개월간 사목하다가 신녕공소로 가셨다....

http://blog.daum.net/fireball/15951541

다시래기님의 블로그에서 옮겨온 글임을 밝힙니다.

 

 

 

 

 

 

 

 

 

 

 

 

 

 

 

 

 

 

 

 

 

 

 

 

 

 

 

 

posted by 산위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