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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의 풍경
산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아픔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블로그기자단 기장군홍보단 기장군민필진 한국방송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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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국립 박물관을 갔더니 국보와 보물이 여러점 있는 중요한 박물관이군요.

전시실은 고대 문화실, 중세문화실, 섬유복식실이 있으며, 야외 전시품도 있습니다.

 국립 대구 박물관에 가면 해설사가 이어폰을 다 나눠 주더라구요. 주파수를 맞추면 해설사의 목소리가 잘 들립니다.

해설사를 따라서 전시물을 보며 해설을 들으니까 좀더 의미 있는 박물관 여행이 되었습니다.

박물관 어느곳이나 있는 전시작품 말고, 특별히 보물이나 국보가 여러점 있으니 더욱 신경써서 보시면 좋겠습니다.

특히 국보 제 182,183,184 금동 삼존불은 귀한 전시물이예요.

또 송림사 오층 전탑 사리갖춤도 (보물 제 325호), 사자(보물제202호),용머리(보물제 1410호)이거는 우리나라에 딱 두점 있는것이라니 희소가치가 더욱 커 보입니다.

또 섬유도시 대구답게 박물관에 여러 복식 전시물이 있는데, 우리나라 의복구조와 발달, 오방색이 왜 있는지 자세히 알게 됩니다.

섬유복식실에 들어가면서 오방색 염색천을 보면서 젊은 엄마들이 " 아고, 천연염색해놨다 그쟈? 예쁘네" 하면서 지나간다고 해요.

오방색은 음양 오행에 기인해서 염색을 하는것이랍니다.

고대 시대부터, 중세시대까지의 전시물들은 여러점 있습니다만, 그외것들은 다른 박물관에서도 자주 보시는 것이니까,

그것보다는 귀한 보기 힘든 전시물들을 우선적으로 보시길 권해요.

그럼 대구여행때, 꼭 한번 들러보세요. 대구 국립박물관

국립대구박물관

관람시간

평일: 09:00~18:00

토요일/공휴일:09:00~19:00

토요야간개장(09:00~21:00)-4월부터 10월중 매월 토요일

문화가 있는날 (9:00~21:00)-매월 마지막 수요일

*관람종료시간 30분 전까지 입장할 수 있습니다.

휴관일

매년 1월1일, 매주 월요일입니다.

▶전시 해설안내

오전 10시, 11시

오후1시, 2시,3시,4시

 

국보제183호, 대좌까지 같이 있는 관음 보살상이라서 가치가 더욱 높아 해외에 전시도 자주 나간답니다.

 

용머리 (보물 제1410호) 통일신라시대 :당간지주 윗부분 장식으로 여의주 뒤쪽으로 도르래가 있어 실용성을 갖췄다고 합니다.

지상20m위에 장식되었을것으로 추정된다 하네요.

 

 

국보 제182호 신라시대

사리함, 가운데 초록색으로 보이는 유리는 그옛날 페르시아에서 수입한 것이고 그 안에 유곽에 사리가 들어 있었답니다. ^^

송림사 오층전탑 사리갖춤(보물 제325호)-통일신라시대

 

 

 

청자상감 국화무늬 합(이것도 사리함이래요~)

사자 (보물 제202호)통일신라시대 (의성 관덕동)

 

오방색, 음양오행을 나타내는 색.

 

 

 오족도(황제는 칠족도를 수 놓는다고 해요) 임금은 하늘이라 원형을 넣고 신하는 땅을 의미해서 흉배가 네모였대요.

적의본(꿩적사를 쓴다고 해요. 꿩 문양과 꽃무의 보이시죠? 오얏꽃이라고 합니다.)

 

묘족의 복식

행사 대례복(여성)

여자들은 꼭 한번 입으시죠? 결혼할때 폐백복으로~

아기돐복. 옛날엔 돐되기 전엔 흰색옷만 입히다가 돐이 되면, 이렇게 오방색을 넣어 옷을 지어 입혔대요. ^^

앵무복, 암행어사 출또요~~~~~~~할때도 이런옷을 입지요?

겨상도 남자가 무뚝뚝하다는디, 요렇게 자상한 편지가 전해진다네요.

위에는 원본, 아래 흰종이는 위의원본을 다시 써 놓은 것이래요.

 

 

 

 

 

삼층석탑,(고려시대 10세기)

 

토기류와 주먹도끼등 고대 문화실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빗살무늬 토기-신석기

 

 태양처럼 생긴 토기는 의식용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네요.

 

 

호랑이모양 허리띠고리, 말모양 허리띠 고리(원삼국시대)

 

 

 

 

 

 

 

 

 

 

 

 

 

나무모양 금동관

 

 

반가사유상

국보 제184호-신라시대(국보 제 182,183호와 나란히 전시되어 있는 금동삼존불)

 

관음보살(신라7세기)-조형미와 예술미가 있는 보물이라 세계전시를 자주나간답니다.

밑의 대좌까지 같이 남아 있기 때문에 더욱 가치가 있는 보물이래요 ^^

 

 

posted by 산위의 풍경

여기가 그 유명하다는 대구의 두류공원이구나!

호텔 더 팔래스에서 택시를 타고 10분도 안되서 도착한곳, 두류공원이다.

두류공원간다니까 기사님이 단풍이 예쁜 여기부터 걸으라면서 내려준다.

정말 마지막 단풍이 혼신의 힘을 다해 불사르듯 새빨갛게 타오르고 있다.

입구로 들어서면서 느긋하게 걸어본다.

우측으로 축구장과 야구장, 수영장까지 있는 체육시설이 있다.

산을 돌아 산책 할 수 있도록 잘 만들어진 공원.

대구의 주요 인물상들이  있다.

공원내에서 공연하는사람들도 있고 산책겸 천천히 걸으면 주말엔 즐길거리들이 많다.

아들 면회를 와서 아들은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고

남편과 둘이 여유롭게 저녁무렵 공원 산책을 하다보니,  

마음이 느긋해 진다.

건너편 이월드 놀이 시설에서는 놀이기구를 타며 얼마나 고함을 치는지 두류공원에서도 소리가 들린다.

한바퀴를 도니 인물동산에 다시 이르렀다.

이상화시인, 이인성화가,창씨개명 반대하던 만포 최양해, 소설가 현진건, 백산 우재룡 박희광,조기홍 애국지사까지

 인물상을 다시한번 살펴 보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대구시민들이 늦은 시간이지만 여럿이 같이 운동하시는 모습도 많이 보인다.

대구 시민의 휴식처 두루 두루 정말 쓰임새 있는 두류공원인듯 하다.

좋은 공원이 이렇게 시민과 함께 숨쉬고 있어서 여행객도 잠시 이곳에 머물러 본다.

 

 

 

 

 

 

 

 

 

 

 

 

 

 

 

 

 

 

 

 

 

 

 

 

 

 

 

 

 

posted by 산위의 풍경

 대구여행, 아들때문에 요즘 원없이 하고 있는 필자이다.

아들이 영천에서 군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면회를 가서 아들과 1박2일을 함께 하다보니 숙소을 자주 이용하게 된다.

특히 대구, 영천 군위등 가볼만한곳을 돌고 필수로 숙소도 꼭 필요하기 때문에 저렴하게 이용하려고 여기저기 알아보곤 한다.

요즘은 가자 닷컴이라는 사이트를 이용해서 호텔예약을 하는데 보통 30%~40%정도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다.

이번에 이용했던 호텔 더 팔래스도 역시 같은 경로로 예약하고 이용하게 되었는데

가장 맘에 든것이 주변에 맛있는 음식점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동하기도 좋다.

약간의 음주를 위해서 차를 놔두고 택시를 이용해 움직이기도 했고, 주변 안지랑곱창골목, 또는 두류공원등을 택시로 이동해서 걷고 돌아 오기도 했다.

아들은 친구들 만난다고 나가고, 남편과 둘이서 야간 두류공원 걷기를 하고들어 왔다.

맨날 시내와 떨어져 있는 호텔을 예약한다고 불만이던 아들도 이곳은 맘에 들어 한다.

지난번 이용했던 호텔을 하루 인터넷 비용도 만원 따로 지불 했었는데, 이곳은 인터넷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특히 블로거인 필자는 여행지에서 바로 포스팅을 할 수 있어서 편리했다.

노트북을 들고 다니면서 공부할것들도 하고, 이렇게 바로 여행지 이야기글을 올릴 수 있어서 좋다.

 

 

 

 

 

 

 

 

 

 

 

 

 

 

 

 

 

 

 

 

 

posted by 산위의 풍경

 

 

 

 

 

 

 

 

 

 

가을이 다가기전에 단풍산행 한번은 가야 한다고,

가까운곳에 산행 간다기에 따라 나선길.

수태골에서 버스를 내렸을땐 울긋불긋 단풍이 고와서 신났다.

바람이 몹시 차다.

부산에서 대구까지 달려오는동안 짓궂은 날씨 덕분에 걱정을 엄청 했는데,

다행히 비가 내리지는 않는다. 그것만 해도 감사해야지.

산행은 바로 시작한다.

산으로 들어서자마자 단풍은 없다.

기대한것보다 날씨는 더욱 차고, 단풍은 벌써 말라 버렸으며, 산 능선으로 갈수록 헐벗은 나무는

벌써부터 이미 겨울차림새다.

나도 나무처럼 단단히 겨울채비를 해가지고 올것을.

수태골 폭포를 지나고 계단 계단 산꾼들이 싫어하는 계단이 이어진다.

폭포를 지나고 석사여래상이 있다는 표지판이 보이는데 발걸음을 떼기도 싫다.

가보고 싶긴한데 춥기도하고 컨디션이 좋지 못해서 힘을 아껴야 할듯 하다.

산세는 훌륭하다. 바위들이 능선을 이룬 동봉쪽으로 풍광이 아주 멋들어지게 펼쳐져 있다.

계단오르느라 용쓰던 힘겨움이 사라지는것 같다.

서봉 앞 헬기장에서 점심을 먹었다.

여럿이 둘러앉으니 진수성찬이다.

요즘 산행하면서 아주 간단식만 가지고 다녔는데, 모처럼 남편 산악회를 따라오다보니

이것저것 조금 챙기게 된다.

점심을 먹는데, 점점 서늘해지는 체온.

바람막이를 덧입어도 땀에 젖은 몸은 점점 추위에 약해진다.

따근하게 오미자차를 한잔 마시고 바로 출발한다.

20여분은 내리막길이라 잘 내려갔는데, 조짐이 이상하다.

점심먹은게 체했는가보다.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정말 한걸음도 떼기 싫다.

그래도 산꾼인데, 이런것도 견디어 내야지, 여기서 멈출수는 없다.

조금 느리게 걷자. 남편이 든든하게 옆에서 보조를 맞춰주고 있으니 이겨내야 하다는 마음속 다짐을 수없이 했다.

가도 가도 파계봉이 안나올것 같은 막막함.

이곳에는 조난신고용 표지는 정말 훌륭하게 잘 해 놨는데, 수태골부터 서봉 거리, 서봉에서 파계봉까지 거리, 파계봉에서 파계사까지 거리, 또는 파계봉에서 한티재까지 거리가 나와있지 않다.

그게 산행하면서 제일 갑갑했다.

산행 안내를 받을때는 4시간 30분짜리라고 했는데,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한티재까지 가는 시간이 그렇게 시간이 걸린댔는데,

한티재로 갔다면 여섯시간은 족히 걸리겠다.

파계봉에서 파계재까지 갔을때 빗방울이 들기 시작해서 선두 산행대장이 파계사로 내려가라는 전갈이 왔다.

선두산꾼들은 이미 파계재를 지났지만 도로 돌아와 파계사로 향했다.

조금 느리게 걸었더니, 이럴땐 이득이구만.

비옷을 꺼내입고 파계사로 내려가는길, 단풍이 곱다.

드디어 가을다운 단풍빛을 이제사 만났다.

그래 이런 가을을 느끼고 싶어서 이곳까지 왔지.

멋진 능선의 바위 암벽도 좋지만, 아직은 가을을 느끼고 싶었다.

겨울처럼 이른 쌀쌀함에 절망하다가 비까지 만나서 더욱 깊어지는 한숨이었지만 파계사 내려서는길의 단풍과 낙엽은 낭만적이었다.

그래, 이런 위안으로 우린 산행을 멈출수가 없다.

계획보다 힘들고 고된 산행이었지만, 그래서 이런 즐거움이 크고 더욱 감격하게 되지.

좋은산행 마무리 잘했다. 담주엔 또 고흥으로 떠나보자.

 

 

 

 

 

 

 

 

 

 

 

 

 

 

 

posted by 산위의 풍경

 

 

기영각

파계사 기영각은 연잉군의 탄생설화와 관련하여 조선왕실의 위패를 모시던 전각으로 조선 숙종 35년  현응조사가 성전암과 함께 창건하였다고 한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고 지붕은 아름다운 곡선미를 보여주는 팔작지붕이다.  기둥 위에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하여 설치한 공포는 혀처럼 앞으로 뻗은 두 개의 익공 위와 아래를 연화와 연봉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조선 후기의 이익공계 모습이다.

 파계사 지장전

 

 

 

 

 파계사 원통전

팔공산 서쪽 기슭에 자리잡은 파계사는 통일 신라 애장왕 5년 심지왕사가 창건한 절로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조선 선조 38년 에 중건하고 숙종 21년에 다시 고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파계사 원통전은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시는 법당으로 원통은 진리는 원만하여 모든것에 통해 있다는 뜻이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이고, 지붕은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맞배지붕이다. 기둥머리 위에는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커다란 역삼각형으로 짜 맞추어 장식한 공포가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놓여 있는 다포 양식으로 조선후기의 특징적 모습을 잘 갖추고 있다.

 

 

 

 

 

 

 

 영조대왕의 도포

영조대왕의 도포는 1979년 파계사 원통전 관세음보살상을 금칠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제작연대는 건륭 5년*1740)9월로 함께 발견된 발원문에 의하면 영조대왕은 탱불일천불을 희사하고 파계사를 왕실의 원당으로 삼았으며 영조대왕의 청사상도포를 복장하여 만세유전을 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영조대왕이 직접 착용하였따고 알려진 이 도포는 무늬 없는 실로 된 홑옷으로 연한 녹색 빛이다. 깃의 모양은 목판깃과 당코깃 모양이 합쳐진 반당코깃이 달린 것이 특징이다.

영조대왕 도포는 현품이 그대로 본전되어 있고, 형태와 색상이 거의 완전하여 옛 옷의 꾸밈새를 살펴 볼 수 있어 복식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

 

 기영각

 

 

 

 

 

 

 

 

 

 

 

 

 파계사 진동루

파계사는 9갈래로 흩어져 있는 물줄기를 모은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진동루 누각은 9줄기 물의 기를 진압하는데 파계사라는 이름으로도 부족하다 하여 지었다고 한다.

조선 숙종 41년(1715)에 처음 지은 후 1970년과 1976년 두차례의 보수를 거쳐 현재 모습을 갖추고 있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2층 규모이며 지붕은 아름다운 곡선이 돋보이는 팔작 이붕이다. 기둥 위에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하여 얹어 놓은 공포는 새 날개 모양의 익공 두 개가 짧게 앞으로 뻗어 있고 기둥과 기둥 사이의 중앙에는 당초넝쿨 문양으로 장식한 화반이 놓여 있는 이익공양식으로 조선시대 중.후기의 건축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영조임금나무

영조는 조선21대 왕으로 숙종의 2남으로 어머니는 숙빈 최씨이다. 탕평책을 실시하여 봉당정치를 혁파하고 균역법을 실시하여 조세를 감면하는 등 정조와 더불어 조선시대의 가장 찬란한 학문과 문화의 꽃을 피운 임금이다.

파계사는 왕실의 원당이자 현웅스님의 도움으로 영조임금이 탄생했다는 설화와 그가 입었던 도포(중요민속자료 제 220호)를 간직한 절이다.

따라서 사찰내 가장 크고 아름다운 250년 정도 된 이 느티나무를 골라 영조임금나무 라 이름지었다.

 영조임금나무

보호수

수종 :느티나무

수령 250년

 

 

 

 

팔공산 파계사 일주문

posted by 산위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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