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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의 풍경
산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아픔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블로그기자단 기장군홍보단 기장군민필진 한국방송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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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남관을 찾아가다.

이순신 장군이 머물렀을 공간에 찾아가 봅니다.

진남관은 불타고 새로 짓고 반복 할 수 밖에 없었던 전장의 한복판에 있었을 겁니다.

해설사님이 그러네요.

그럼 이순신 장군때 사용하던 그때 부터 있었던 물건은 없는거야?

있답니다.

진남관 앞에 서 있는 닳고 닳은 돌비석 2개

나머지는 불타고 다시 지어지고를 반복했다는데, 지금 진남관은 다시 해체 위기에 있습니다.

건물 전체가 앞으로 기울고 있기 때문에 위험해서

다시 해체 복원할 거라고 합니다.

마침 잘 찾아간것 같아요. 내년이면 이 진남관이 해체 복원 작업이 시작 될테니까요.

드넓은 진남관 건물을 지을때 동원된 기술자들이 흥국사의 스님들이었다고 하네요.

46명의 기술자들중에 41명이 스님이었답니다.

그시절 스님들이 정말 큰일을 많이 한것 같아요.

영화 명량에서도 승병들이 등장 하던데, 실제로 흥국사에서 훈련을 받고 전장에 투입되었다고 전해지거든요.

스님들이 이 진남관 건물을 지었다니  놀랍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호령이 금방이라도 들릴듯한 진남관은 이순신광장위

바다를 향해 서 있습니다.

해체복원되기전 볼 수 있는 마직막 기회.

위험하니까, 건물 가까이 가진 마세요.

진남관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지휘소로 사용한 진해루가 있던 자리에 1599년(선조32년)통제사 이시언에 의해 건립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1716년 (숙종42년)화재로 불탄 것을 1718년 (숙종 44년)전라좌수사 이제면이 이순신 전사 120년이 되는해를 기려서 다시 세운 것이다. 이후 일제 강점기인 1911년에 여수 공립보통학교 등으로 사용되면서 크게 훼손되었다.

남쪽의 왜적을 진압하여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뜻을 가진 진남관의 중건기는 1953년 보수공사중에 발견되었는데 글씨는 중건 당시에 이제면이 쓴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면모가 곳곳에 서려 있는 핵심적인 유적으로 현제까지 남아 있는지방 관아 건물 중에서 가장 크다.

진남관 앞에 두개의돌기둥은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있을때 수군들이 밤 훈련을 위해 불을 밝힐 목적으로 사용하던 것이다.

당시에는 4개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2개만이 전한다.

 

 

 

 

 

 

 

여수석인

 

 

 

 

 

 

진남관은 전면 15칸, 측면 5칸의 대형 건물이다.

 

 

 

 

posted by 산위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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