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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의 풍경
산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아픔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블로그기자단 기장군홍보단 기장군민필진 한국방송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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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지인께서 수원화성과 융릉 건릉으로 여행을 간다고 같이 가려나 물어 오셨습니다.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이란 카페회원들이 함께 가는 답사라고 말이지요.

수원화성은 여러 차례 가본곳이지만, 또 가고 싶어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조선의 왕들중 정치적인면에서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던 임금으로 세종과 정조를 가장 좋아합니다. 개인적으로.

역대 가장 위대한 성군이 있다면 정조를 꼽고 싶을만큼 혁신적이고 백성을 사랑한 임금으로 효성이 깊은 임금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수원 화성은 정조의 업적중 가장 뛰어난 유산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정조대왕이 사후에 머물게 된곳, 건릉입니다.

건릉은 왜 이곳에 자리했을까요?

그것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현릉원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일텐데요.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메뉴처럼 등장하는 영,정조 시대의 파란만장한 당쟁의 희생양,

비운의 동궁 사도세자. 조선 고종이 장조로 추존하였기 때문에 현재는 융릉이 되었습니다.

사도세자는 당쟁으로 인해 아버지 영조에게 사사되는 비운의 동궁입니다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를 지키려면 사사된 동궁 이선을 죄인신분으로 두면 안되기에 사도세자로 신분을 복원하여 묘를 썼지요.

정조를 영조의 첫째 아들이었던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시켜 훗날 있을지도 모를 정통성의 흔들림을 차단해버렸습니다.

그러나 정조는 왕위에 올라 "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라며 죽은 아버지를 떠올리지요

정조는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으로 옮기며 현릉원에 모셨습니다.

그후 고종에 의해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존되면서 융릉이 되었던 것이죠.

융릉은 사도세자와 혜경궁홍씨를 합장한 왕릉이고

건릉은 정조대왕과 효의왕후를 합장한 왕릉입니다.

융릉으로 들어가는 숲길은 소나무 숲길로 걷는 편안함이 있습니다.

해설사님이 같이 가면서 해설을 자세히 해 주기 때문에 그 가슴아픈 효심 절절한 정조의

이야기가 가슴에 파고 듭니다.

묘에서 현릉원으로 융릉으로 죽어서도 신분의 변화를 겪게 된 사도세자.

화성여행, 융릉 건릉을 꼭 들러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다녀오게 되서 기쁩니다.

 

 

융릉, 건릉에 들어가기전 입구에 있는 향나무.......오랜세월을 몸으로 말하듯, 헐벗었지만, 근근한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네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조선왕릉

융릉 건릉 관람안내, 월요일은 쉽니다.

융릉, 건릉은 사적 206호입니다.

 

고요한 숲길이 평온해 보여 참 좋았습니다.

융릉에 들어가는 다리,,,,,이것은 사후세계와 이승을 구별짓는 의미이기도 하답니다.

 

융릉이 보입니다. 소나무숲에 둘러쌓인 왕릉은 편안해 보입니다.

곤신지, 융릉 들어가는 왼쪽편에 여의주처럼 동그랗게 연못이 있습니다.

원형 연못 곤신지는 융릉이 천장된 이듬해 1790년에 조성되었으며, 곤신방(남서방향)은 융릉의 생방(풍수지리 용어로 묘지에서 처음 보이는 물을 지칭)으로 이곳이 좋은곳이기 때문에 판 연못입니다.

 

 

 

 

 

 

 

 

 융릉으로 들어가는 다리, 융능교

 건릉으로 들어가는길

 

 

 

 

 

 

 

건릉

건릉이 보입니다.

 

 

 

건릉의 묘비각이죠.

posted by 산위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