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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의 풍경
산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아픔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블로그기자단 기장군홍보단 기장군민필진 한국방송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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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천 선소 유적지에 들렀어요.

물위에 새카만 새떼가 앉아 있습니다.

차가운 기온에 콧끝이 시큰합니다.

선소는 여천 선소부락에 있습니다.

천연적인 피난처이기도 했지만 굴강이라는 방파제를 쌓아 배를 보수하기도 하고

거북선을 최초 제작한 곳으로 전하기도 합니다.

유적지에서 나온 유물을 바탕으로 세검정과 수군기가 복원되어 있으며 대장간터는 간단히 복원되어 있습니다.

근처에는 돌로 만든 벅수가 세워져 있기도하며 선소 유적지 복원 사업은 계속되고 있습니다.여수는 이충무공과 깊은 유대관계가 있는 곳이지요.

전라 좌수사로 부임했고, 삼군통제사 본영도 여수였기 때문에 수군에게 가장 중요한 작전지역이었습니다.

또 세검정과 수군기는 1980년대에 발견된 유물에 따라서 복원되었는데, 주춧돌 간격으로 미루어 짐작으로 복원하였을뿐

그 크기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선소유적지는 인적없는 너무나 한산한 모습이었는데, 이곳에서 거북선이 만들어졌다니 역사적인 공간입니다.

잘 복원되어서 선조들의 호국 정신을 잘 이어가야겠습니다.

 

 

 

 

여수선소유적

 이충무공과 여수

임진왜란 일어나기 1년전인 1591년에 이순신은 전라좌수사로 이곳 여수에 부임

하여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였다.전라좌수영의 본영이었던 여수는 거북선을 처음으로 출정시킨 곳인데 1593년 (선조26년)8월부터 1601년(선조34년)

3월까지 삼도 수군통제영의 본영이기도 하였다. 이순신의 수군이 옥포,합포,당항포,율포,노량,명량,한산도등에서 거둔 승리는 조선이 왜적에게 7년 전쟁에서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여수에는 충무공 이순신의 발자취가 곳곳에 문화유적으로 남아 있다. 거북선을 최초로 만든 선소, 공이 공적을 새긴 통제이공수군대첩비,공을 추모하며 세운 눈물의 비석 타루비, 국내 최초로 세워진 이순신 사당 충민사가 있다.

또한 나라를 구하는데 앞장선 승려들의 흥국사도 있으며 송현마을에는 효성이 지극했던 공이 전쟁중에 어머니 변씨를 모셔와 보살핀 곳도 있다.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국가가 없었을 것이다. 라는 이순신의 글을 되새기게 하는 이곳 여수는 임진왜란때 위태로운 나라를 지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다.

새긴

 

 

 

 

 굴강 :임진왜란당시 거북선건조 및 대피했던곳

대장간터

물을 모으는 집수구와 쇠를 불에 달구어 버리는 단이로가 있는 것으로 보아 군기를 만들고 수리하던 대장간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면은 인위적으로 만든 흔적이 있다.암반의 중심부분에 직경 10~20 cm 의 자갈들이 있는데 여기서 물이 계속 솟아 나와 지속적으로 물이 공급되어야 하는 단야로를 설치하기에 적합했던 것으로 보인다.

 

 

세검정은 집무 및 지휘소 기능을 담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세검정 터에 남아 있던 주춧돌의 간격으로 보아 정면의 크기는 작아도 7칸에 길이 15.8m이었을 것으로 짐작 되는데 옆면의 크기는 알 수 없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1986년 맞배지붕의 앞면 은 7, 배 못들이 나온 것에서 군사 무기를 보관하던 창고로 추정되고 있다. 복원한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서향이다.

세검정과 수군기

 

 

 

 

 굴강

굴강은 조선시대 해안 요새에 만든 조그만 군사 항만시설로 선착장이자 방파제 역할을 하였다. 여기에 배가 머물며 고장 난 곳은 손보거나 군사 물자를 싣고 내렸다. '굴강'이라는 이름은 대피한 배를 보호하기 위해 방파제를 작은 만처럼 둥그렇게 만든 데서 유래한 듯하다.

면적 1388㎡,직경 42m 안팎의 타원형으로 거북선 두 체가 들어갈 만한 규모이다. 깊이는 돌벽 위에서부터 바닥까지 5-6m정도로 추정된다. 북쪽으로 폭 9m 정도 되는 ㅇ입구가 있다. 크기가 일정하지 않으나 대체로 40-50cm 정도 되는 자연석과 깬돌로 막쌓기를 하였고 남은 돌과 흙으로 뒤를 채운 것으로 보인다.

1980년과 1985년에 한 발굴 조사에서 나온 쇠로 된 화살촉, 못, 쇠붙이 같은 유물 565점을 국립광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국가지정 문화제 사적 제392호 여천 선소유적복원사업 예정지

 

 

 여수 선소부락 벅수

벅수는 돌로만든 장승인거 아시죠?

 

 

 

posted by 산위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