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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의 풍경
산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아픔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블로그기자단 기장군홍보단 기장군민필진 한국방송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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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문학기행길을 따라 가보는 재미도 즐기고 싶어서 찾아가 봅니다.

태백산맥 조정래 문학관을 들렀다가 바로앞, 소화의 집과 현부잣집을 보고난후

철교, 벌교 홍교도 걸어 보았습니다.

홍교를 건너면 김범우집으로 갈 수 있지요.

다시 건너와서 이번엔 자애병원자리를 찾아가 봅니다.

이곳은 현재 어린이집이 위치해 있습니다.

청년단있던 자리는 빈터로 남아 있고 이곳에서 직진해서 태백산맥 문학거리를 찾아가 봅니다.

소설의 줄거리를 안내해 놓은 곳, 등장인물설명등이 잘 되어 있습니다.

금융조합은 원형그대로 남아 있는데 내부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남도여관을 찾았는데, 1층 카페를 이용해 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서 차 주문도 안된다고 하네요.

내부를 관람할수 없었어요.

먼길 갔는데, 좀 아쉬웠지요. 담에 다시 들러 보기로 하고요.

이렇게 소설의 배경이 된곳들을 찾아가 보니 그 시대의 삶이 조금은 가까이 다가옵니다.

우리 근대문화, 개항기부터 강점기, 아픈 과거들이 돌아와 현재와 함께 하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보성, 벌교여행 가시면 꼭 한번 들러보시길 바랄게요.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 기념공원

자애 병원이 있었던곳 -소설태백산맥 문학기행길   

이곳은 양의사가 후생병원을 운영했던 자리다.

그 병원은 둘러 나눠 팔렸었는데, 병원과 병동은 유아원으로 유지되다가 1995년 무렵 현대식 건물로 신축돼 지금도 어린이집으로 운영되고 있다.

병원의 안채쪽은 옛 일본식 건물 그대로 한동안 금남 여인숙으로 경영되다가 2007년 화재로 소실되었고, 지금은 현대식 주택이 들어서 있다.

소설에서는 자애병원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자애 병원의 전명환 원장은 단수히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충실히 지키는 의사만이 아니다.

그는 직업의 사회적 사며오가 직업인의 사회적 임무가 무엇인지를 고심하면서, 우리들에게 모든 직업에는 인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사회적 사명과 임무가 있음을 일개운다.

경찰과 좌익을 똑같이 치료하고, 좌익으 치료해준 죄로 재판에 회부되고, 국민 보도연맹에 강제로 가입되어

처형 직전에 살아나는 등 고초를 겪으면서도 또 정하섭을 치료해주는 그의 모습은 성자다.

 

홍교, 이다리를 건너면 거너편에 소설 태백산맥 김범우의 집이 나온다.

 

현부자집 뒤쪽

김범우집

 

소설 태백산맥 문학기행길-금융조합

 

벌교 금융조합은 붉은 벽돌을 바탕으로 하고 그 사이사이에 돌을 각아 넣어 건물의 견고함과

장식적 효과를 동시에 노린, 일본인들이 관공서형 건물로 즐겨 지었던 그 모습이다.

지금도 변함없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지난 역사를 반추하게 해주고 있다.

그 위치 또한 번화가의 첫머리인 삼거리에 자리잡아 고객들의 편리를 최대로 도모한 세심함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에서는 금융조합장 송기묵이 일제강점기부터 금융조합에 근무해온 이력을 지닌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친일파가 척결되지 못한 이 땅의 비극이 수없이 많은 분야에서 그런 식으로 기득권을 행사했음을

작가는 여러 주인공들을 통해 일개우고 있다.

[금융조합이라는 것이 결국은 돈 장사이고 보면 그의 이재 솜씨는 멋부리는 것보다 한 수가 더 앞질러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태백산맥 1권284쪽)]

송기묵은 돈을 다루는 사람답게

치부에도 능해 은밀하게 고리대금업까지 해가며 탄탄한 재력을 확보해 딸을 서울의 이화여대에까지 유학시키지만 결국 좌익들에게 죽고만다.

남도여관(지금 보성여관)

소설태백산맥 문학기행길

 

판자벽에 함석지붕, 전형적인 일본식으로 지어진 이 2층 건물은 옛 모습 그대로이다.

일본인들은 강점기 동안 전국적으로 이런 건물들을 수없이 지었는데 그동안 무차별적으로 헐어 버리고

시멘트건물들을 짓게 되었다. 그 영향으로 이런 건물들은 구경하기 어려운 귀물이 되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역사는 문자의 기록만이 아니다. 유물을 보았을 때 설명이 필요없이 지난 시대를 한순간에 실감하게

된다. 수난과 고통의 역사일수록 그 시대의 유물은 남겨지고 보호되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 중심거리로 소위 본정통이라고 불렸ㄷㄴ 이 길에 이 건물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은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건물은 2004년 근대문화유산(등록문화재 제132호)으로 지정됭 2012년 6월7일 중건 개관하였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숙밥업소등으로

운영하고 있다.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그 시절에도 이 건물은 여관이었고, 그때의 실제 상호는 보성여관이었다.

소설에서는 임만수와 그 대원들이 한동안 숙소로 사용하던 남도여관으로 그려졌다.[지금이 어느 때라고, 반란세력을 진압하고 민심을 수습해야 할 임무를 띤

토벌대가 여관잠을 자고 연관밥을 먹어?(태백산맥 3권 85쪽)]

보성여관

1층 사무실, 숙박동, 소극장 전시실 자료실 카페

2층 다다미방

벌교역

홍교

 

소설태백산맥 문학기행길 -홍교

 

홍교는 벌교포구를 가로지르는 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세 칸의 무지개형 돌다리다.

원래는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 뗏목다리가 있었는데, 조선 영조5년(서기 1729년)에 순천 선암사의 승려인 초안과 습성 두 선사가 지금의 홍교를 건립했다.

우리나라에 남아 이는 홍교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워 보물 제304호로 지정되어 있다.

벌교(뗏목으로 잇달아 놓은다리, 우리말 큰사전. 한글학회 지음)라는 지명은 다름아닌 '뗏목다리' 로써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보통명사다.

보통명사가 고유명사로 바뀌어 지명이 된것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지 않을까 한다. 그러므로 뗏목다리를 대신하고 있는 이 홍교는 벌교의 상징일 수밖에 없다.

소설에서도 이 근원성을 여러각도에서 조명하고, 여러 사건을 통해서 그 구체성을 은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김범우는 홍교를 건너다가 중간즘에서 멈추어 섰다....그러니까 낙안벌을 보듬듯이 하고 있는 징광산이나 금산은 태백산맥이란 거대한 나무의 맨 끝

가지에 붙어 있는 하나씩의 잎사귀인 셈이었다.(태백산맥 1권 257쪽)]

 

홍교 보물 제304호

청년단이 있던 자리를 찾아 갔더니 계단아래 빈터였다.

 

 

김범우의 집

소설태백산맥 문학기행길-김범우의 집

원래 대지주였던 김씨입안 소유의 집이다.

안채의 대문옆에 딸린 아래채에서 초등학생이었던

작가가 친구인 이집 막내아들과 자주 놀았다는 것은 작은 흥미를 일으킨다.

소설에서는 품격있고 양심을 갖춘 대지주 김사용의 집으로 그려지고 있다.[과분한 땅이라고?

이사람아, 요 정도가 내가 지닌 땅 중에서 젤로 나뿐 것이네. 눈붉은 우리 선대의 유산이 어련하것는가.

맘 쓰지 말고 밭 일구로독 허게, 허허허허....(태백산맥 1권 141쪽)]

사랑채, 겹안채, 창고자리, 장독대, 돌담 등 그 모든 형태와 ㄱ모들이 대지주의 생활상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한다.

특히 안채 오른쪽 앞부분 귀퉁이에 있는 돼지우리는 많은 것으 생각하게 한다. 아무리 대지주라 하더라도

음식 찌꺼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으려고 돼지를 길렀음을 알 수 있다.

 이 집에서도 오른쪽으로 고읍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은 집 자리를 무심코 잡은게 아님을 보여준다.

 

 

자애병원자리

청년단이 있던자리,,,지금은 빈터이다.

 

 

 

 

소설태백산맥 문학기행길-금융조합

금융조합건물,  건물이 원형그대로 남아 있는데 내부 공사가 한창이었다.

 

대하소설 태백산맥 인물-김범우

대하소설 태백산맥 -작가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 인물-염상진

대하소설 태백산맥 인물-소화

대하소설 태백산맥 인물-염상구

대하소설 태백산맥 인물-외서댁

소설 태백산맥 문학거리

 

 

남도여관

 

남도여관 뒷쪽

남도여관이 있는 골목, 시간여행을 하는듯한곳이다.

posted by 산위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