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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의 풍경
산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아픔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블로그기자단 기장군홍보단 기장군민필진 한국방송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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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여행정보를 얻는 경로는 다양하다.

인터넷 검색을 하던지, 그지역 기관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던지

이도저도 아니면 홍보용 책자등을 볼 수 있겠다.

특히 관광지역 안내는 각 지역 기관에서 제작한 홍보물을 손쉽게 구해서

참고 하기 마련이다.

이번에 영천시에 들렀을때는 그 안내서에 있는 두곳을 가봤는데, 들어 갈 수  없었다.

개인의 공간이라서 들어 가 볼 수없다면 관광 안내서에 차라리 기재를 하지 말던지,

아니면 정당한 요금을 지불 하고서라도 그곳에 도착한 관광객이 허탕치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

문이 잠겨 있어서 마을분들께 여쭤보려고

경로당이랑 다 돌아 다녀도 마을에 눈에 띄는 사람이 없다.

대략 난감, 그냥 후퇴 하려고 하는데, 우편물 배달하시는 아주머니가 빈집에서 나온다.

"여기좀 촬영하러 왔는데, 사진 찍어도 되나요?" 했더니

"저도 여기 사람이 아니예요. 찍으면 어떨까요? 찍으세요."

한다.

매산고택에 들어갔을때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이 구례의 운조루다.

느낌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시기적으로 동시대의 건축물이라 그런가 싶기도 한데, 이곳엔 연못이 없는게 운조루와는 조금 다른 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살짝 대문을 밀고 들어가 안 마당에서 찍고는 다시 나와서 문을 걸어두고 왔다.

안채로 들어가는 문은 자물쇠로 잠겨 있어서 구경도 못했다.

아름다운 고택이 그래도 사람이 살고 있어서 건강하게 지켜지고 있는것 같아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산수정은 이 고택을 짓기 시작한 매산이 말년에 건너편 산밑에 지으셨다는데

문화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에도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는 듯.

전혀 쓰고 있지 않은지, 건물에 생기가 없다.

예쁜 정자가 이렇게 버려지듯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으니 아쉽다.

 다음번엔 안채에도 들어가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지며 매산고택 소개를 마친다.

 옛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더욱 푸근한 매산고택

 입구에서부터 점점 높아지는 위풍당당한 고택이다.

 

 매산고택은....

이 건물은 조선 영조3년(1725년) 문과급제 한 후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을 거쳐 형조참의에 이른 매산 정중기 선생이 짓기 시작하여 그이 둘째 아들인 일찬이 완성한 살림집이다.  본래는 정침 및 사랑채, 대문간, 아랫사랑, 고방.방앗간채,측간채, 사당, 별묘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정침 및 사랑채, 대문간, 사당, 측간채만 남아 았다.

숭수설에 의하면 이 집터는 보현산을 정맥으로 한 기룡산 주령이 매화 나무 가지처럼 뻗어 내린 매화꽃수렝 해당하고, 안산은 매화꽃술을 향하여 날아드는 나비의 모습이라고 한다.

건물 구조는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전형적인 형태인 ㅁ자형이며, 경사진 산기슭에 자연의 지형을 그대로 살려 3단 높이의 지층을 이루고, 뒤로 갈수록 높아져 웅장함을 느끼게 한다. 안채는 두리기둥을 쓰고, 초익공의 공포를 짜는 등의 장식을 하여 고급스러운 멋을 부린 것과 사랑채 전면에 난간을 둘러 수평성을 느끼게 하였다.

이 집의 서남쪽 바위벽에 있는 산수정은 매산이 만년에 지은 정자이다. 이 정자는 전면 3칸 맞배집으로 가운데는 마루, 양쪽이 온돌방인데 자연석 바위를 주춧도로 하여 기둥 높이가 각각 다르고 허공에 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돌담길이 멋스럽다.

 구례 운조루에서 본것처럼 비슷한 형태가 있다.

 

 

 산수정의 독특한 문고리

 산수정은 뒤로 들어갈 수 있나보다.

앞에는 아무곳에도 계다이 없다.

 

 매산고택의 문고리, 여느집 대문고리와 사뭇 다르다.

 

 안채에는 대문에 자물쇠가 잠겨 있어서 들어가 보지 못했다.

주인이 계셨으면 양해를 구하고 들어가보고 싶어서 경로당이랑 사람을 찾아 헤맸는데,  마을에서 사람이 안보였다.(추석을 앞두고 있어서 벌초에 농사일이 바쁜철이기도 하다.)

 

 

 

 

 

 

 

 

 

 

posted by 산위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