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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의 풍경
산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아픔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블로그기자단 기장군홍보단 기장군민필진 한국방송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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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어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국도 섰지 마라 웃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에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라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쁜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스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잡혔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이상화 시인은 1901년 대구에서 태어나 계산동 고택에서 1943년 4월 25일 별세한 민족시인이다.

일본 침략시기에 대표적 저항 시인으로 손꼽힌다.

근대 문학에 한 획을 그은 큰 자취를 남긴 시인이다.

애국이 무엇인가를 글을 통해 실천하고 가르친 시인이다.

대표적 시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역천,통곡,시인에게,나의 침실로 등이 있다.

1925년부터 신경향파에 가담하여 사회성 짙은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대구에서 교편활동과  저술활동을 했다.

지금의 대구시 계산동의 이상화 고택은 1998년 이상화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2002년 고택 보존대책협의가 이뤄지고  이상화 고택보존을 위해 100만인 서명운동을 했으며 모금운동을 펼쳐 현재의 고택을

보존하게 되었다.

이상화 고택과 서상화 고택까지 보존하게 되었다 

 이웃해 있는 서상화 고택도 찾아보자.

다도 체험도 할 수 있다.

근대의 정신적 지주 두분이 이웃해 살았다는 것은 굉장히 신기하고도

대단한 일인듯 하다.

대구에서 배출된 가장 큰 인물들로 손 꼽을만 하다.

 

 

 

 

 

 

 

 

 

 

 

 

 

 

 

 

 

 

 

 

 

 

 

 

 

 

 

 

 

 

 

 

 

 

posted by 산위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