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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의 풍경
산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아픔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블로그기자단 기장군홍보단 기장군민필진 한국방송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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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1. 06:00 영화in screen

 윤동주

서시

죽는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따.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쉽게 씌어진 시   

           윤동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으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별 헤는 밤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는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때 책상을 같이 했든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억덕 우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영화 동주를 보았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삶과 문학 그리고 그의 고종사촌 송몽규에 대해 새롭게 알게된 시간이었습니다.

필자는 몰랐습니다.

송몽규라는 독립투사를

송몽규라는 시인을

송몽규라는 문학인을.

실로 부끄러웠습니다.

윤동주와 송몽규는 고종사촌으로 송몽규가 외가인 윤동주의 집에서 태어났으므로

한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송몽규는 1917년 9월28일 중국 길림성 회룡면 명동촌에서 태어나

윤동주 시인과 함께 자라며 많은 영향을 끼친듯 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암울한 시대적 배경이 흑백영화가

더욱 짙은 여운을 남기게 하네요.

모든 젊은이가 절망하고 힘들던 시기에

배움을 세상에 펼치고자 했던 지성인 송몽규,

그리고 문학의 힘으로 일제에 맞서려했던 윤동주.

다소 여성스럽고 여린듯한 시인의 감성때문에

자칫 여리고 힘없어 보이게 비치던 윤동주 시인이

죽는날까지

그야말로 한점 부끄러움 없이 살고 싶어 했을것 같아요.

삶도 닮은듯 다른 삶을 함께 한 윤동주와 송몽규는

후쿠호카 감옥에 투옥되며

죽음도 함께 하는 기막힌 운명을 맞이합니다.

윤동주 시인이 죽고 6개월후 독립이 되었습니다.

안타까움은 말로 다 못하겠지요.

영화 동주는 시인 윤동주의 삶보다는

송몽규 독립운동가의 삶을 비춰보는 거울인 듯 합니다.

3.1절입니다.

영화 동주를 보면서 우리나라 광복이 거저 이뤄진게 아님을 다시한번 뼛속깊이

새겨야겠습니다.

영화 장면과 겹쳐지는 윤동주의 시가

가슴에 깊이 박힙니다.

 

 

 

 

 

 

posted by 산위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