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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의 풍경
산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아픔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블로그기자단 기장군홍보단 기장군민필진 한국방송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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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고산 윤선도 유적지를 찾아가보면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과 녹우당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녹우당 뒷쪽으로 윤고산의 사당이 있으며 그 왼쪽으로 어초은 사당이 있고 조금더 걸으면 추원당이 있습니다.

해남윤씨인 윤선도의 삶과 그의 후손들의 여정까지도 만나볼 수 있는 곳이예요.

특히 윤선도 유물전시관은 희귀한 고서적들이 많고 해남윤씨 집안에서 보유한 보물들도 다수 있습니다.

우리가 공부할때 배우던 '지봉유설' , 퇴계집등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은 마치 영화 '관상'의 수양대군을 보는듯한 전율같은게 느껴질 정도로 극 사실주의적 작품 같습니다.

 

1층 특별 전시관은 학생들이 방문해 있어서 설명해 주시는 선생님이 계셔서 덕분에 잘 들었답니다.

<금강유상록>은 윤정희가 63세에 금강산 유람을 떠났던 기록이라고 합니다.

대단하지요? 조선시대에 그것도 해남에서 금강산까지의 기행이었다면 대단한것 같습니다.

고산 윤선도 유적지에 와보니 기록과 보관의 중요함이 얼마나 큰 일인지

새삼 깨닫습니다. 특히 조선전기에는 재산의 분배가 남녀 동등하게 된다고 들었는데

윤고산선생의 분재기를 보면 비교적 조선 중후반기인데도 자식들에게 동등하게 분재가 되면서

제사를 모시는 사람에게 조금더! 적용되었다고 하니 특이할만 합니다.

지금처럼 장자 우선이 된것은 그리 오랜 역사가 아닌데도 우린 조선시대는 굉장히 남녀차별히 심한것으로만

기억을 하게 되었었는데, 고산 윤선도의 집안에서는 남녀 동등해 보이는 여러 면면히 보입니다.

여성들이 집필한 서적등도 있는것을 보면  안팎으로 대단한 학자의 기류가 넘쳤던것 같습니다.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윤선도의 '오우가'나 '어부사시사'는 기록으로 남았으니 알고 또

대단한 시문학이라고 느끼는 거잖아요?

하여튼 해남에 갔을때는 해남 윤씨 종택 녹우당과 유물전시관에서 귀한 자료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좀더 자세히 보고올걸, 하는 후회도 좀 드네요.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다음에 다시 한번 들러보고 싶은곳이예요.

이곳은 좀 촬영이 가능해서 사진을 담았는데 유물전시관에는 사진 촬영 금지라서 찍지 않았어요.

녹우당의 사랑채는 특히 효종이 대군시절에 사부였던 윤고산에게 수원에다가 지어 하사했던 집이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낙향할때 모두 해체해서 이곳으로 옮겨다 지었다고 합니다.

녹우당 마당의 은행나무는 500살이 넘은 고목입니다.

이곳은 어초은 윤효종이 터를 잡은 해남윤씨의 종가이지요.

관람시간은 오전9:00~오후 18:00이예요.

관람요금은 일반 2천원/단체 1500원

어린이 1천원/단체 5백원

청소년 ,군경 1500/단체 1천원이예요.

매주 월요일 휴관이고요~ 천천히 둘러보시길 권할께요.

녹우당 뒷편으로 500년 비자림이 멋지다는데 올라가다가 뱃터리가 다 되가지고.....

휴대전화 뱃터리도 나가고.....올라가다가 내려왔는데 두고두고 아쉬워요.  다음기회에는 꼭 올라가보고 와야겠어요.

 

 

 

 

고산 윤선도 유적지 매표소

 

매표소앞 '녹우당( 사랑채)은 종가 사정으로 인하여 개방하지 않습니다' 라고 안내문이 있어요. 공사중이었어요~

 

고산 윤선도 유적지

 

 

 

 

 

 

 

 

녹우당의 모습들이 담겨 있네요.

 

윤고산 유물전시관 입구인데요, 이곳에 들어가면 촬영금지라고 되어 있어서 찍지 않았습니다.

 

 

 

 

 

 

녹우당 사랑채는 방문했을때 한참 공사중이었습니다. 방문일 11월 27일

 

녹우당옆 골목길을 걸어올라 가면 윤고산 사당을 만나게 됩니다.

 

고산사당

고산 사당은 고산 윤선도(1587~`671)를 배향하고 있는 불천지위(不天之位)사당이다. 고산

사후인 1727년(영조3년)에 불천지위로 지정되었다.

불천지위는 안사당에서 4대까지 모시고 묘로 가는 대신 영구히 사당에 모실 수 있게 하고 있으며 보통 나라에서 공이 인정될 때 허락한 신위다.

매년 음력 6월 11일 이곳에서 기제사를 지낸다.

 

 

 

 

 

 

 

 

 

 

 

 

 

 

 

 

 

 

 

 

 

 

 

 

 

posted by 산위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