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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의 풍경
산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아픔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블로그기자단 기장군홍보단 기장군민필진 한국방송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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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8. 18. 14:30 영화in screen

고려말, 무인시대 칼의 힘이 법인 시대가 있었습니다.

세명의 무도인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의형제같은 사형간입니다.

설랑은 특히 덕기의 뜻은 곧 자신의 뜻이라며 따릅니다.

그들의 사형 풍천은 매우 의로운 사람이었으며 민란을 이끌던 사람이었습니다.

백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데 앞장서는 무도인 풍천이었습니다.

이들이 서로 대치되어 풍천이 덕기를 해하려하자 설랑은 풍천을 베어버립니다.

풍천을 베어버린 후회로 세상안으로 숨어버린 설랑입니다.

설랑은 차를 다리는 다원을 운영하며 아들과 딸을 키우고 있습니다.

홍이가 자라면 복수할 대상을 알려주겠다는 월소(설랑)

홍이는 자신의 무예를 시험할겸 무도대결장을 찾아가 덤벼듭니다.

이에 세상에 존재가 알려진 홍이.

그의 운명이 걸린 삶.

그러나 복수를 위해 딸을 키우고 이제 너는 내딸이 아니라 나를 죽여야 하는 너의 원수.

너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라며 말하는 엄마.

이부분이 가장 개연성이 떨어집니다.

영화의 이야기는 무겁고 진중한데 왜 무거워야 하는지 이유를 알수 없는 영화 협녀.

자신이 죽인 사형 풍천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 자기가 사랑한 남자와 자신을 자기가 낳은 딸에게

시키는 이런 잔악 무도한 영화가 또 있을가요?

그렇다면 설랑은 왜 그 옛날 덕기의 뜻이 자기뜻이라며 덕기를 따르겠다고 했을까요?

협이란 사사로움을 떠나는것이라는데,

설랑 자신도 사사로운 감정때문에 사랑하는사람 덕기를 위해 사형 풍천을 죽였습니다.

풍천의 자식 홍이를 지키려 했지만 풍천의 아내와 홍이 역시 죽었습니다.

덕기사이에서 낳은 딸 홍이는 왜 까닭없이 풍천의  딸로 키워져 자신의 엄마와 아버지를 처단해야 할까요?

누구를 위한 협인지, 누구를 위한 복수인지 모를 협녀.

가냘픈듯 굳센 홍이 김고은의 연기, 앞이 보이지 않는 설랑으로 살아가는 월소 전도연.

자신의 뜻을 위해 사형도 피도 눈물도 없는 덕기 적성공 송유백 이병헌.

이야기가 뚝뚝 끊기는 개연성이 2% 부족해 보이는 영화입니다.

무겁고 진중한 복수의 영화 협녀는 이래서 관객이 적은걸가?

좌석에 사람이 드문 영화관에서 관람하게 되었네요.

여기서 영화 협녀의 첫장면, 홍이가 뛰어노는 해바라기 꽃밭이 인상적인데요.

바로 전라북도 고창의 학원농장이라고 해요.

해바라기 꽃밭을 가보고 싶어 지네요.

 

 

 

 

posted by 산위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