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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의 풍경
산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아픔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블로그기자단 기장군홍보단 기장군민필진 한국방송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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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6일은 아버지 기일이라서 친정인 양평을 가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성당에 올리셔서 제사는 지내지 않지만, 다같이 아버지 산소엘 다녀왔습니다.

다른 자매들도 모두 기일 기준으로 산소에 꼭 다녀갑니다.

이번엔 혼자 양평엘 다녀오려 했는데, 남편은 직장일이 엄청 바쁘면서도

제사도 못지내 드리게 되서 죄송한데 같이 가겠다고 동행을 했습니다.

산소엘 다녀오고 나서 엄마랑 식사를 하러 가려고 했습니다.

" 엄마 뭐 먹고 싶어요? "

엄마는 딱히 먹고 싶은게 없다하셨습니다.

" 고기 먹으러 가까요?"

고기를 먹고 싶단 생각이 없으시다는 엄마를 모시고 "엄마가 집에서 드시긴 힘들잖아" 하면서

엄마를 모시고 한우마을을 가게 되었습니다.

당연 인터넷으로 "양평맛집"을 검색하였지요.

자 출동~ 한우마을

한우마을은 셀프코너라서 밥 먹는곳과 고기를 구매하는곳이 따로 있어요.

얼른가서 고기를 사가지고 구우러 고고~!

셀프타운인 한우마을은 상차림 가격이 있습니다.

어른 1인당 3000원

초등학생, 유치원생 1500원

제대로 된 숯불에 지글지글 구우니 맛있는 냄새~

엄마는 정말 맛있게 드시더라구요

" 생각이 없었는데 고기가 정말 연하고 맛있구나" 하셔서 다행이었어요.

엄마랑 같이 맛있는 밥을 먹게 되서 행복하네요.

우리 꼬마 조카도 엄청 맛나게 잘 먹어요.

남편과 필자, 그리고 동생까지 기분좋게 맛있는 식사를 했습니다.

양평 한우맛이 좋긴 좋군요. 양평 한우가 유명하긴 하네요

고기를 구워먹고나서 된장 좋아 하는 남편은 된장과 식사를 하고 동생과 필자는

다 맛보자며 물냉면과 비빔냉면을 시켰어요.

비빔냉면이 필자는 더 좋습니다. 각자 입맛에 맞는걸로~

한우마을, 강변을 따라 드라이브길을 따라가면 있는 한우마을,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한우마을에서 키우는 채소들, 바로 따서 씻어 주시니까 엄청 신선합니다.

 

엄마와 우리내외, 동생과 조카하나

다섯명, 조카는 초등학교 저학년입니다,ㅋㅋ

다섯명이서 넘나 배부르게 먹은 꼬끼!

 

 

posted by 산위의 풍경

 

 

대한 성공회 강화성당

교회설립은 1893년 7월 24일 성당의 축성일은 1900년 11월 15일이라고 합니다.

백년이 넘은 한옥 성당인 성공회 강화 성당의 특색입니다.

사제관도 한옥으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번에 갔을때는 문이 잠겨서 애가타게 밖에서 바라만 보다 왔는데,

그 다음주에 들렀을땐 방명록도 쓰고, 성당 내부에 들어가

기도도 할 수 있어서 행복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초기 성당은 거의다 고딕형의 외국식 건물인데 반해

이곳, 대한 성공회 강화성당은 한옥 모습을 가지고 있어서 특이 했습니다.

성당 안에 들어가면 석조식 세례대가 있습니다.

국가 지정 문화재(사적 제 424호)인 강화성당은 외부는 전통 한옥양식으로 내부는 바실리카 양식으로 지어진 서구 기독교의 토착화 산물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한옥 성당이며 지금까지 매 주일 예배가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성당 안내서에서~)

현판은 성당의 정면부 위쪽 팔작지붕을 보면 天主聖殿이라 쓰여 있습니다.

내부에 들어가면 기둥마다 한문으로 새겨진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용흥궁 주차장에서 보면 한옥 건물이 보이실 거예요.

성당의 범종도 1914년 영국에서 강화성당에 기증한 종은 1944년 일제에 징발당하고 현재의 종은 범종의 형태로 1989년 교우들의 봉헌으로 제작하였다네요.

주변에는 철종이 왕이 되기전 살던  초가를 궁궐처럼 고쳐 지었다는 용흥궁이 있습니다.

또 고려궁지도 걸어갈만한 위치에 있고, 순교순례지도 있으니 찾아보는 여행도 좋을것 같습니다.

 

고려궁지-----------------------

 

진무영 순교성지

진무영은 1700년(숙종26년)에 해상 방어를 위해 설치된 군영이며 동시에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지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1868년 5월 22일

최인서 :요한 애오개 회장 59세

창치선: 요셉 성인의 조카 59세

박서방 :베드로의 형

조서방

특히 장치선은 병인박해(1866년-1871)로 성직자 12명중 9명과 신자 10,000여 명이 처형되자 생존 성직자중 한분인 리델 신부를

배로 천진으로 탈출시키고 서양 배를 불러다가 신교의 자유, 남은 교우들의 구출, 성교 전파 등의 목적으로 상해까지 다녀왔다는 죄로 처형되었는데,

축성 백주년 기념비

 

천주성전

 

한옥 사제관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면서 까지 성직자의 보호와 선교의 자유 그리고 복음전파를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다가 마침내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진무영 순교성지--------

카톨릭 신자들이 처형되었던 곳이래요. ㅜ,ㅜ

 

 

posted by 산위의 풍경

전등사, 이주일 연속 가게 되었네요.

처음 전등사에 갔을때는 성돌이를 할 수 있다는것을 모르고

원피스에 구두를 신고 갔는데, 그래도 부득불 오르고 싶어 서문에서 북문을 돌아 내려 왔었지요.

부처님 오신날 전이라 대웅전 앞에 한창 등을 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산으로 내려왔는데, 뭔가 찜찜한 겁니다.

아, 전등사가면 양헌수 승전비를 꼭 보고 오려 했는데 그곳을 놓치고 못보고 온 것이지요.

다음주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이란 여행 카페에서 전등사를 간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신청을 해서 전등사를 다시 갔지요.

다른곳보다, 삼랑성 성돌이를 하고 꼭 양헌수 승전비를 보고 오리라.

삼랑성문인 종해루 (남문)을 지나 바로 왼쪽으로 올라갔습니다.

지난번에 왔을땐 서문에서 북문으로 올랐는데, 성이 허술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었어요. 잡석으로 만든 성이 위태로웠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지요.

이번에 오른 남문에서 서문가는길은 아름답게 잘 남아 있는 성의 모습입니다.

아 이곳은 산성답네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조금 있으면 해가 지면서 노을이 참 아름답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바쁜 걸음을 옮겨 봅니다.

서문에서 내려와 정족산 사고옆을 지나 내려오면 약사전과 대웅전앞에 등이 한가득 달려있지요.

이곳을 지나 동문쪽으로 바로 향해 봅니다.

바로 양헌수 승전비가 있는곳이예요. 지난번에 왔을때 못들러봐서 내내 아쉬웠던, 그래서 다시 전등사를 찾게된 그 목적지 말입니다.

승전비는 잘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개화기에 선진대국이던 프랑스를 맞아서 물리쳤다는 양헌수 승전비, 그의 기개, 이곳을 호령했을 그 때를 잠시 생각해 봅니다.

성을 지킬 당시의 360여명의 기록이 탑뒤에 새겨져 있다고 해요.

자, 이제 만족합니다. 승전비를 보고나서 바로 아에 있는 동문, 동문으로 내려가다 보니,,,,아차차~~ 나 남문쪽에서 들어왔지!

그쪽에 차량이 있으니 그리 내려가야 하는데, 다시 동문으로 들어가서 남문쪽으로 내려옵니다. 남문과 동문은 아주 가까운 지근거리 입니다.

이제 전등사 여행을 마무리 하는듯한 깔끔한 마음이 드네요. 일주일 내내 찜찜 했거든요.

전등사 가면 양헌수 승전비를 꼭 보고 오는게 예ㅡ의.

그것이 이나라를 위해 싸웠던 조상님들을 기리는 마음 아닐까요? 좋은 여행 마무리 해서 기뻤습니다.

 

 

문화재 구역 전등사 입장료

어른 3000원

청소년 2000원

초등학생 1000원

노인(경로) 65세이상 신분증 제시 면제

 

삼랑성

 사적 제 130호

 소재지: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산 41

일명 정족산성이라고도 한다. 성을 쌓은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단군이 세 아들에게 성을 쌓게 하고 이름을 삼랑성이라 했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보인다. 처음에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는데 삼국시대에 이르러 그 위에 막돌을 맞추어가며 쌓았고 성체 안에는 막돌을 채운 튼튼한 석성으로 축조되었으며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보강되었다. 선안에는 전등사는 물론 고려시대에는 가궐, 조선시대에는 사고와 선원보각이 있었다. 병인양요 때(1866)양헌수 장군이 프랑스군을 물리쳐 이곳에 보관된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족보인 <선원보>를 지켰다. 1976년에 남문인 종해루를 원형대로 복원했다.

 

 

1976년 복원된 종해루

남문

 

앞주에 갔을땐 아직 연한 연두빛이 많이 돌던 숲, 싱그럽다.

 

부처님 탄신일 전에 갔을때 아직 등을 달고 있어서 사다리도 보이고 그랬다.

 

 

정족산 삼랑산성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사고인 장사각과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던 선원보각이 있던 곳이다. 조선은 초기부터 <조선왕조실록>을 춘추관, 충주, 성주, 전주 등 네 곳에 보관하였다. 임진왜란 때 유일본으로 남은 전주사고본이 묘향산 사고로 옮겼다. 다시 마니산 사고를 거쳐 현종 1년(1660)이곳으로 옮기고 오른편에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는 선원보각을 함께 지었다. 1931년에 간행된 <조선고적도보>에 이 사고의 사진이 수록된 것으로 보아 이후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실록은 1910년 국권침탈 이후 서울로 옮겨졌고 지금은 서울 대학교 규장각에서 보존, 관리하고 있다. 1998년 두 건물을 복원 후 옛 현판 '장사각'과 '선원보각'을 다시 달았다.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 67호

 

조선의 4대 사고

정족산 사고

태백산 사고

오대산 사고

적상산 사고

 

기록의 나라 조선

 

삼랑산성 서문

복원된 곳이다.

 

서문에서 올라서면 이렇게 숨은 문있는곳이 있다.

뒤로 보이는 강화도 정리된 논밭,(옛날엔 저곳은 모두 바다였다)

 

일주일새 녹음이 많이 짙어졌다.

 

 

이길을 따라 올라가면 서문으로 가는데, 정족산성중 가장 성다운 자태가 잘 남아 있는 곳이다.

 

성벽길을 따라 걷는 맛이 가장좋지만 또 가장 오르막길이기도 하다.

 

남문에서 올라오면 서문으로 가는 길, 성벽길이 아름답다.

 

 

서문, 박찾사 카페의 일행분이 서문을 촬영하고 있다.

 

 

부처님 오신날 지나서 가니 이제 사다리도 다 치워져 정리된 등, 대웅전앞에 한가득 등이 달렸다.

 

 

한창 불경을 외시는 스님을 바라보았다.

 

 

양헌수 승전비

 

 

1866년 병인 양요때 양헌수 장군의 승전비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을 물리친 양헌수 장군의 공적을 기리는

 비로 앞면에는 "순무천총양공헌수승전비"라고

새겨져 있다. 양헌수 장군은 헌종 14년(1848년)무과에 급제한 후

벼슬을 지내다가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을 물리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승전비에는 양헌수를 비롯한 367명이 프랑스 군대를 맞아 활약한 당시의

 상활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크기는 전체높이가 181cm, 비신의 높이가 163cm, 두께가 27cm이다.

 

동문

 

동문밖의 모습

 

posted by 산위의 풍경

고코투어에서 숙소를 우선 검색해 보았습니다.

김포, 강화여행을 계획했기 때문입니다.

결혼식이 있어서 인천에 가는김에 부산에서 오기 쉽지 않으니까

강화도 여행을 하고 내려 가기로 했습니다.

숙소를 검색하니 강화도는 많은 펜션이 있더군요.펜션들은 경치좋은곳에 있지만

주로 좀 외진곳에 있기 때문에 먹거리를 사들고 들어가서 조리를 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지요.

될 수 있는데로 호텔을 검색했는데, 호텔이 눈에 안띄는....인천의 호텔을 검색하니 거의다 공항근처에 있더군요.

김포에 라르 호텔을 정했습니다.

강화도 여행을 마치고나서 찾아간 라르호텔, 강화도에서 나오는 시간이 차가 너무 막혀서 늦어버렸네요.

어느 유명한 포구에 들으가서 맛있는 낙지 탕탕이를 먹으려 했는데, 차가 밀려 늦는 바람에 식당이 문을 닫았어요.

겨우, 문을 열고 있는 칼국수집을 찾아서 해물 칼국수 한그릇 먹고 호텔로 들어갔어요.

비지니스 호텔처럼 좀 좁은 룸이라 살짝 실망 했는데, 기온은 쾌적했습니다.

욕실에 비치된 어메니티도 맘에 들었어요. 다행이지요. 이거 좋아 하거든요.

사용하고 가지고 가서 다음 숙소에 갔을때 맘에 안들면 이것을 다시 사용합니다.

특히 다음 숙소에서 덕용이 비치되어 있으면 그건 사용을 거의 안합니다.

가져간 개인용품을 사용하거든요.

여행을 다니다보니 그냥 이런 습관이 생긴것 같아요.

남편은 하루종일 운전을 하다보니 피곤했나봅니다.

하루종알 사진 찍은거 노트북에 옮기고 정리하고 글을 쓰는 동안 씻고 잠드는 남편~

고생했어요. 운전하느라 ~ 굿잠!

근데 라르 호텔 근처엔 조식먹을때가 없어서 한참 헤메었습니다.

고건 살짝 불편했지요.

호텔 자체의 불편함은 아니구요~

호텔 주차장은 타워식 주차구요, 주차장 들어가는길은 일방통행길입니다.

그러니까, 입구를 잘 찾으셔야 한다는거~~~~~ 기억해 주세요.

 

 

posted by 산위의 풍경

고려궁지는 사실 피난을 갔던곳이죠?

개성의 고려왕실은 몽골의 침입에 못견뎌 강화도로 피난을 갑니다.

최고의 천연 요새인 강화도로 들어가서 39년간 고려의 도읍체제로 유지되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외규장각을 만들어 왕실의 도서관의 많은 자료와 서적을 보관하였는데

병인양요때 프랑스에 패하면서 많은 서적및 자료가 프랑스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참 안타까운 부분이지요.

고려궁지에는 강화 유수부 동헌과 이방청. 동종, 외규장각 건물만 남아 있고 이것들도 사실 다 복원된 것이지만요.

실제 고려궁지로서 남아 있는 건물은 없습니다. 터만 남아 있는 것이지요.

이 고려 궁지를 둘러싼 성은 산책길처럼 한바퀴 돌 수 있습니다. 고려궁지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왼쪽길을 따라 올라가면 벚꽃길로

강화산성북문을 만나게 됩니다.

북문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강화산성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힘든길은 아니고 아이들을 데리고 걷기엔 조금 위험하다 싶긴합니다.

연인과 걷기는 괜찮을것 같아요.

남편은 북문앞에 앉아 있다가 성곽길로 올라선 저를 보고 금방 사진만 찍고 내려올줄 알았대요.

그럴리가요~ 저는 성곽을 따라 걸었지요.

북장대까지 올라서 (북장대 안내는 있지만 건물같은것은 없습니다.)

안내표지판을 따라 내려 섰더니 다시 고려궁지 뒷길쪽이네요.

커다란 나무 아래서 사진한장 찰칵 남기고 내려왔습니다.

강화도는 우리역사에서 많은 이야기 거리를 품은 곳이에요.

용흥궁은 철종임금이 임금이 되기전에 머물던 곳이라고 하던데, 그곳은 못가봤어요.

이규보 능도 있고 돈대, 초지진 같은곳, 광성보 등등 가볼곳이 엄청 많아요. 다음에 다시한번 또 가봐야겠어요 ^^

고려궁지를 가기위해 차를 세운 주차장에서 성공회 성당이 보이는데요~

다음엔 이곳 성공회 성당을 소개할게요.

기분좋은 휴일 보내세요 ^^

 

 

 

 

강화 나들길

 

용흥궁 공원

 

강화도 유수부 동헌

 

큰나무

 

외규장각

 

고려궁지

이곳은 고려시대 궁궐이 있던 곳이다. 고려가 대몽항쟁을 위해 고종 19년(1232)에 도읍을 개성에서 강화로 옮긴 후 궁궐을 건립하고 39년간 사용하였으나

화친하여 환도(1270년) 할때 몽골의 요구로 궁궐과 성곽 등을 모두 파괴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왕이 행차 시에 머무는 행궁 외에도 유수부 동헌, 이방청, 외규장각, 장녕전, 만녕전 등을 건립하였으나 이 또한 병자호란과 병인양요 때 대부분 소실 되었다. 1964년에 사적 제 133호로 지정 되었고, 1977년 강화 전적지정화사업으로 보수 정비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조선 시대 유수부 동헌과 이방청, 외규장각(2003년 복원)등이 남아 있다,

 

 

 

posted by 산위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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