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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의 풍경
산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아픔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블로그기자단 기장군홍보단 기장군민필진 한국방송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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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군에는 옛날 읍성, 산성의 모습이 일부 남아 있다.

전체의 완전한 모습이 남아 있으면 좋겠지만 불완전한 모습으로 일부분만 남아 있어서 아쉬운 부분이다.

기장읍성은 정말 일부, 텃밭의 구획부분이 되거나, 남의집 담장이 되거나 현실은 그렇다.

일부 남아 있는것도 언제 허물어질지 모른다. 기장초등학교 옆에 기장현 공덕비들이 모여 있다.

도로확장때문에 이동시켜 놓은것이다.

요즘 기장 장관청이 복원되었다.

2011년까지만 해도 일반 가정집처럼 변개되어 사용되던것을 최근 복원한것이다.

복원 되기전 장관청 모습은 형편없었다.  예전모습 확인 ===>(http://blog.daum.net/kang72/11795841 한국산 호랑이)

다행히 기둥이나 내부 상양등은 예전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기장 장관청은 기장군 소속의 군관들이 사용하던 집무소라고 한다.

이점이 가장 특이한 점이다. 이 건물은 17세기 후반이래 이 지역 관아건축의 양상을 보여주는 몇 안되는 건축 유구일 뿐 아니라 한반도 동남단 해안의 전략 요충지인 기장군의 역사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반면, 허술한 관리로 허물어지고, 더군다나 일반인의 가정집으로 쓰일정도로 엉망이었지만

최근 복원되어 단아한 관아모습을 되찾았다.

기장읍 기장 초등학교 근처이므로 접근성이 좋으니, 기장현 공덕비군과 기장관청, 그리고 얼마 남아 있지 않지만 기장읍성의 모습을 연계해서 확인해 볼 수 있는 주요 관광자원이다.

 

 기장장관청에 대한 설명.

기장읍성 내에 위치하고 있는 기장 장관청은 당초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였으나 지금은 정면 8칸, 측면 2칸으로 변형되었으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나 기와는 최근 누수를 막기 위해 시멘트 몰탈을 덮어서 지붕 윤곽만 드러난 상태이다. 기장 장관청은 조선후기 동남해안을 지키던 기장군 소속의 군관들이 사용하던 집무소이다. 17세기 후반에 건립된 후 몇 차례의 개·보수를 거쳐 오다가 최근에 크게 변개(變改)되었지만 주요 구조부재 등은 원형대로 남아 있다. 이 건물은 동래부의 장관청과 함께 전국적으로도 그 유례가 드문 군관용 관아 건물이다. 비록 변개가 심한 상태이지만, 조선중기 이래의 간소한 굴도리식 건물로써 건축사적으로 크게 주목될 뿐 아니라 문화재적 가치도 뛰어난 소중한 건축유구 이다. 특히 금강공원에 있는 독진대아문과 양식이 흡사해서 건립 연대나 건립배경 등도 추가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 이 건물은 17세기 후반 이래 이 지역 관아건축의 양상을 보여주는 몇 안되는 건축 유구일 뿐 아니라, 한반도 동남단 해안의 전략 요충지인 기장군의 역사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기장 읍성

부산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 40호

소재지 :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동부리.서부리.대라리 83-4 일원

이 성은 1356년 (공민왕5)에 축성된 옛 기장현의 읍성이다.

원래 옛 기장 시가지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고 한다. 기장읍성은 고려 무왕때 교리에 있던 읍성이 왜구에 침입으로 함락되고 관아가 불타버리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현재의 읍성이 있던 곳으로 치소를 옮겨 울산과 언양 등지의 주민을 동원하여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장 읍성은 둘레가 968m, 높이가 3.6m 였다.

성의 형태는 북쪽의 내외측 모두를 돌로 쌓는 협축 방식이이만, 지형이 높은 곳은 성벽의 밖은 돌로 쌓고, 내부는 흙으로 채우는 편축방식으로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동서남북 4대문 가운데 동.서.남문에는 반원형의 옹성이 있었으며, 동문터 부근에서 적대가 확인되었다.

성안에는 관장의 집무처인 동헌을 비롯한 관청 건물이, 성 밖에는 망풍정등이 있었으나, 일제시대에 철거.파손되었으며 장관청 건물만이 남아 있다.

일부 남아 있는 기장 읍성,

 

 

 

 

기장 동부리 회화나무는 부산시 지정 기념물 제 58호이다.(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동부리 216번지)

회화나무는 우리선조들이 최고의 길상목으로 손꼽아 온 나무로 집안에 심으면 가문이 번창하고 큰 학자난 인물이 나며 잡귀신이 감히 법접을 못하고

좋은 기운이 모여든다고 하여 우리선조들은 이 나무를 매우 귀하고 신성하게 여겨 함부로 아무곳에나 심지 못하게 하였다.

회화나무는 회화목, 회나무, 홰나무, 괴화나무, 괴목,괴수 등으로도 부르는 활엽수이다. 키 45미터,지름 3미터쯤까지 자라는 이 나무는 우리나라에서는 은행나무 다음으로 몸집이 크게 자란다. 수형이 웅장하고 단정하여 품위가 있어 정자나무로도 인기가 있다.

기장 동부리 회화나무는 기장읍성 내 장관청의 남쪽에 위치해 있다. 높이 20미터, 수관이 사방 18미터에 이르며 수령은 기장현청이 교리에서 옮겨올 때 기념식수한 것이라고 전해지기도 하지만 장관청 뜰에 심어진 것으로 보아 장관청 축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부리 회화나무는 기장의 역사, 장관청의 역사와 관련성이 있고, 동제의 당집 및 서낭당으로 사용되었으며, 나무 자체의 인문학적 특성, 노거수로서의 식물학적 가치 등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다.

 

 

 

 

 

 

기장장관청 내 뜰

 

 

 

 

동부리 회화나무, 기장장관청 앞마당을 지키고 있다.

 

기장 장관청 뒷뜰모습

기장 장관청 새로 복원되었는데, 기장 초등학교앞 저 간판 방향으로 100m 정도 내려가면 기장장관청이 있다.

 

 

기장 읍성의 일부가 남아 있다.

 

기장 공덕비는 조선 때 동래방면에서 기장현청으로 들어오는 요소골 장승매기를 비롯하여 남문 밖 그리고 종로거리의 현청사 종원에 새워져 있던 각종 비석 36기가 도시 확장과 새마을 사업등으로 유실될 것을 우려한 (공태도선생 당시 국제신문 근무 향토사학자)의 노력으로 1972년 기장초등학교 정문 왼쪽에 모아 보존되어 왔다. 2004년 도로 확장을 하면서 동문 앞 현 장소로 옮겨 정비했는데 이 비석들은 현재 기장군의 중요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관찰사비 7기, 수군절도사비1기,어사비1기, 현감비 14기,군수비5기, 아전비2기,객사건성비 1기,교량개축등 2기 기타 2기 가 보존되어 있다.

posted by 산위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