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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의 풍경
산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아픔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블로그기자단 기장군홍보단 기장군민필진 한국방송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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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 시인은 1919년9월16일 태어나서 2004년 5월11일 향년 84세로 별세하셨습니다.

구상시인은 낙동강변의 왜관에서 사셨는데, 그곳에 구상 문학관이 들어서 있습니다.

구상 문학관은 구상 선생이 생존해 계실때 만들어졌기 때문에 특이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인 구상은 1999년과 2000년에 노벨 문학상에 노미네이트 되었습니다.

그만큼 세계적으로도 알려진 시인입니다.

유명한 시 시리즈로 그리스도 폴의강을 한번쯤은 들어 보셨을 겁니다.

 

그리스도 폴의 강

      

                           구상

 

오늘 마주하는 이강은

 어제의 그강이 아니다

내일 맞이할 강은

오늘의 이 강이 아니다.

우리는 날마다 새 강과

 새 사람을 만나면서

옛강과 옛사람을 만나는

착각을 한다.

      강24

 

 

구상 문학관에는 고 박정희 대통령과 고 이중섭 화가와 구상시인의 격의 없이 친근한 우정을 대변하는 친필 서한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중섭 화가는 구상선생의 화목한 가정을 보고 그림을 그려주셨다는데요, 그것도 구상 문학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특별한 애정을 표시하는 것 같습니다.

구상선생은 일제 강정기에 태어나서 북쪽에서 생활을 하셨고, 천주교 집안이셨다고 합니다.

또 6.25 전쟁때는 종군 기자로도 활동을 하셨다고 해요.

피란시절 대구지역에 모여든 문학인들과 향촌동에서 예술에 대해 많은 논의를 하셨다고 합니다.

가을날 구상 선생의 문학관을 찾아보면서, 시한편, 읊조리게 됩니다.

가을 하면 왠지 시가 굉장히 잘 어울릴듯 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주말 보내시면서 가벼운 책한권, 잡아 보시면 어떨까요?

 

 

 

 

 

 

 

 

 

 

세계 200대 문인에 선정된 시인 구상

 

 

 

 

 

 

 

 

 

천재화가 이중섭

 

 

구상시인에게 보낸 이중섭 화가의 친필 서한

 고 박정희대통령께서 구상 시인에게 보낸 친필서한

 

 

 

그리스도 폴의 강

      

       구상

 

오늘 마주하는 이강은

 어제의 그강이 아니다

내일 맞이할 강은

오늘의 이 강이 아니다.

우리는 날마다 새 강과

 새 사람을 만나면서

옛강과 옛사람을 만나는

착각을 한다.

      강24

 

 

 

 

 

posted by 산위의 풍경
2012. 10. 21. 06:30 풍경 기행

9월 3일 아버님이 돌아 가셔서 커다란 슬픔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니셨던 아버님은 돌아가시기전 중환자 실에서 대세를 받으셨습니다.

어머님이 원하셔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암으로 고생하셨고, 전이가 되고 뇌종양 수술 받으셨던 곳도 다시 재발하여 많이 힘들어 하시다가 가셔서 가슴이 아픕니다.

중환자실에 계실땐, 두 아드님들이 번갈아 밤을 지새우며 곁을 지켜 드렸구요....풍경이는 한것이 없습니다.

그저 고통스러운 모습을 지켜 보는것 말고는...

건강 하실때 풍경이가 해드리는 음식을 맛있게 드셨던 아버님.

그런 아버님 모습이 좋아서 어디가서 맛있는거 먹고 나면, 내내 시어른들이 걸려서

또 재료를 사들고 집에서 해보고, 시댁에 사들고 가서 다시 요리를 해드리곤 했었거든요.

그래서 아버님이 좋아 하셨어요.

늘, 돌아가시면 난 ~ 모른다고, 살아 계실때 열심히 하겠다고 했었습니다.

돌아 가시기전 아무것도 못드시고,중환자실에 계신 모습은 정말 보기 힘들었습니다.

고통 스러우니까요, 힘들어 하시는 아버님 보는것도 힘들고, 돌아가신 친정 아버지 생각 나는것도 싫고...

이래저래 마음 고생만 하고 있던 풍경이었습니다.

병원에서 포기하면서 요양 병원으로 옮겼는데, 일주일 만에 돌아가셨거든요.

처음엔 어안이 벙벙해서 눈물도 나지 않더라구요.

어머님이 성당에서 장례를 치루기를 원하셨어요.

성당 장례식장이 협소하다는 생각을 못하신거였습니다.

새벽에 돌아 가셨기 때문에 정말 삼일장을 오롯이 치뤄야 하는데, 장소가 협소 하다보니, 상주들이 쉴곳도 없을뿐더러

성당에서는 돌아가신분을 위해 위령 기도를 연도라고 하는데, 자매님들이 오셔서 연도를 바쳐 주시는겁니다.

그럼 상주들도 같이 무릎 끓고 앉아서 연도를 같이 드리고, 또 문상객이 오면 맞이 하고.....

그렇게 쉴곳도 없이 계속되는 장례의식을 치루며, 보내드리는 마지막이다 싶어서 힘들다는 내색도 못할 지경이지요.

문상객들도 밤샘 하시기가 힘드셨구요. 너무 죄송스러웠습니다.

아버님은 기장 정관에 있는 추모 공원에 모셨습니다.

대세를 받고 가셨기 때문에 기도가 많이 필요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돌아 가시는 날부터 계속되어온 49일 동안의 기도는 오늘로 끝이 났습니다.

매일 새벽 일어나면 주섬 주섬 옷을 입고, 촛불을 밝히며 기도를 시작 했지요.

위령 기도서를 들고, 새벽이라 이웃들에게 피해를 줄까봐 노래를 하지는 못하고 그냥 작은 소리로 읽는 것이지요.

아버님이 좋은 곳에 가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 말고는 아무것도 해드릴게 없어서 기도만 했습니다.

이제 완전한 이별을 합니다.

아버님, 고통의 시간들 , 이승의 미련은 버리시고 천상 낙원에서 평안한 삶을 누리셔요.

고이 잠드소서!

49제를 맞으며 아버님을 보내 드립니다...... 사랑합니다. 아버님.

 

 

posted by 산위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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