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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의 풍경
산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아픔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블로그기자단 기장군홍보단 기장군민필진 한국방송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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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뒹굴거리다가

문득 기장 향교에  5시까지 가면 내부를 볼 수 있다는 소리를 들어서

서둘러 기장군 기장읍 교리로 향했다.

대중 교통을 이용해서 기장 향교를 가려면 교리초등학교앞에서 하차하면 된다.

특별히 기장 마을버스 6번은 문화그린 아파트까지 가니까 그곳에서 하차하면 된다.

 마을버스 6번의 회차지점이기도 하고, 시내버스 39,139,183,36, 좌석버스 1003번까지 가지만 집에서 출발 할때가 이미 4시가 넘은 시간이라

급한 마음에 택시를 잡아 타고 갔다.

향교앞에 서니, 옆에서 얼큰하게 한잔 드신 어르신이 말을 걸어 오신다.

" 향교가 뭐하는덴줄은 알아?"

안그래도 향교 문이 잡겨 있어서 어쩌나 하고 있었는데

" 여길 볼 수는 없나요?"

했더니 지금은 볼 수 없다고 평일 오후 5시 전까지 오면 볼 수 있다고 하셨다.

" 그럼 직장인들은 기장향교를 절대 못보겠네요?"

하면서 "여기 올 때마다 잠겨 있어서 못봤어요"

했더니 거짓말이라고 하셨다.

정말 기장 살면서 휴일에 여러번 기장 향교엘 갔지만 항상 문이 잠겨 있는 모습만 보았다.

여기저기 알아보면서 향교를 관리하는 곳이 있다는것을 알았고

전화번호를 알게 되었다.

확인전화를 했더니 역시나 오후 5시전까지 와야 볼 수 있다고 했었다.

그래서 어떻게 지금 볼 수 없느냐고 말씀드렸더니, 지금 풍화루가 풍화되서 공사중이라 하셨다.

들어가 보라고 길을 알려 주셨다.

감사한 마음에 들어갔더니, 일하시는분 두분이서 대패밥을 마대에 담고 계셨다.

역시 부산 광역시 기념물 제 39호로 지정된 기장향교를 복원하는 일이라 제대로 나무를 깍아서 원형을 유지 하는것 같다.

한양에 성균관이 있었다면 각 지역의 교육은 향교가 담당 했을텐데, 전국에 향교가 많이 남아 있는것은 우리 민족이 예전부터 교육열이 높았나보다.

고려말에서 조선시대까지 대표적 관학 기관이며 지방의 민풍과 예속을 순화하고 인재를 양성할 목적으로 제행과 교육및 교화의 기능을 담당한것이 향교라고 한다.

기장 향교는 광해군 9년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지금 남아 있는 대부분의 건물은 이때 조성된 것이다.

건물의 배치형식은 직선축에 전학후묘의 전형적 배치로 경사지의 위계성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외삼문은 3칸의 솟을 대문으로 세심문 이라는 현판을 달았다.

세심문 뒤로 풍화루가자리하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익공양식에 겹처마 팔작지붕의 조선후기 건축양식을 취하고 있다.

대성전 정면은 기둥의 중간부분까지 초석이 올라와 독특한 입면을 이루고 양쪽 측면 벽에도 방화벽을 잡석으로 샇아 건물을 보호하려는 의지가 보인다. 정면 3칸의 맞배지붕인 대성전 내부는 넓은 대청으로 이뤄져 있다.

시도유형문화재 제 215호 (1983.08.12 지정)  문화재 215호 | 문화재 216호
 
분류
유적건조.. > 교육문화 > 교육기관 > 향교

기장 향교 :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차성로 417번길 35

 기장향교

051-721-3287

기장에 오래 살았지만 기장향교를 처음 들어가 보는 것도 새삼 스럽고 놀랍다.

풍화루가 제대로 복원이 되서 깨끗한 기장향교를 다시 만나고 싶다.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KS_01_02_01&VdkVgwKey=23,00390000,21&queryText=(`기장향교`)z_title

 

 

 

 

 

 

 

 

 

 

 

 

 선현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

 

 

 

 사당인 대성전

 

 대성전으로 연결되는 돌계단....

 

 

 

 

 

 

 이 대청에 앉아서 교육을 받았겠지.

 

 

 명륜당

 

 

 

 

 

 

 

 

 

 

 

 이 향교는 1617년(광해군9)에 창건한 것이라 하며, 1855년의 상묘중수기가 남아 있다. 지금 남아 있는 경내의 건물은 대부분 이때 조성한 것이다.

향교는 1440년(세종22)선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지방의 중등교육 및 지방민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이 자리한 전학후묘로 전형적인 배치양식이며, 경사지의 위계성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외삼문은 3칸의 솟을 대문으로 만들었고, 세심문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세심문 뒤로는 풍화루가 장대하게 자리한다.

보통 누각이 대문의 기능을 겸하는 것과는 달리 정면3칸, 측면 2칸에 중충인 푸화루는 익공양식에 겹처마, 팔작 지붕의 조선후기 건축양식을 띠고 있다.

명륜당의 좌우에는 교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가 있으나 대성전에는 동서무가 없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인 대성전의 정면은 기둥의 중간 부분까지 초석이 올라와 독특한 입면을 이루고 있다.

양측 측면 벽에도 다시 방화벽을 잡석으로  쌓아서 비바람으로 부터 보호하려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 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다.

지금은 봄과 가을에 석전제를 봉행하고 있다.

돌담에 박하나 덩그러니....

 2014기장향교 충효교실 청소년 하계인성예절교실 개강 현수막이 붙어 있다.

 돌담이 푸근하다.

 

기장향교 세심문

posted by 산위의 풍경






칠갑산 자락에 자리한 청양 장곡사는 850년(신라 문성왕12년)에 보조선사가 처음 건립하였다고 전하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변천이 있어 지금은 대웅전이 상.하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다.

상 대웅전의 석조대좌에 안치된 철조약사여래좌상이다. 화강암으로 된 사각형 대좌의 네 귀퉁이네는 기둥을 세웠던 둥근 자리가 있다.

3단의 지대석 위에 있는 상대는 위로 핀 연꽃, 하대는 엎어진 연꽃으로 꾸몄고 하대석의 네 귀퉁이네는 다시 귀꽃으로 장식하였다. 

 중대는 전후에 2개씩, 그리고 좌우에 1개씩의 안상을 조각 장식하여 화려한 느낌이 든다. 

불상은 대좌에 비해 작은 편이나 단정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머리는 나발이며 법의는 오른쪽 가슴이 드러난 우견편단이다.

오른손은 무릎위에 놓았고, 왼손에는 질병과 무지의 병까지 고쳐 준다는 약사여래에서 볼 수 있는 약단지를 들고 있다.

불상 뒤에 있는 광배는 나무로 된 배 모양인데, 연꽃과 모란으로 장식한 두광과 신광의 주변을 불곷문양으로 꾸몄다.



하대웅전은 조선 중기에 건립되었다.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맞배식으로 되어 있다. 

대체로 소규모의 맞배식 건물에는 주심포 양식을 따르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건물은 특이하게 다포식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기둥위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포가 배치되어 있는데, 특히 중앙칸은 간격이 넓어서 공포가 두 개 배치되어 있다.

  자연석의 기단위에 다듬지 않은 주춧돌을 놓고, 기둥은 민흘림에 가까운 배흘림의 둥근 기둥을 세웠다. 

 대웅전에는 석가여래를 주존으로 모시는 것이 보통이나, 이 건물 내에는 금동 약사여래좌상을 모시고 있다.

-장곡사 안내판에서


































posted by 산위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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