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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의 풍경
산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아픔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블로그기자단 기장군홍보단 기장군민필진 한국방송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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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 이주일 연속 가게 되었네요.

처음 전등사에 갔을때는 성돌이를 할 수 있다는것을 모르고

원피스에 구두를 신고 갔는데, 그래도 부득불 오르고 싶어 서문에서 북문을 돌아 내려 왔었지요.

부처님 오신날 전이라 대웅전 앞에 한창 등을 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산으로 내려왔는데, 뭔가 찜찜한 겁니다.

아, 전등사가면 양헌수 승전비를 꼭 보고 오려 했는데 그곳을 놓치고 못보고 온 것이지요.

다음주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이란 여행 카페에서 전등사를 간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신청을 해서 전등사를 다시 갔지요.

다른곳보다, 삼랑성 성돌이를 하고 꼭 양헌수 승전비를 보고 오리라.

삼랑성문인 종해루 (남문)을 지나 바로 왼쪽으로 올라갔습니다.

지난번에 왔을땐 서문에서 북문으로 올랐는데, 성이 허술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었어요. 잡석으로 만든 성이 위태로웠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지요.

이번에 오른 남문에서 서문가는길은 아름답게 잘 남아 있는 성의 모습입니다.

아 이곳은 산성답네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조금 있으면 해가 지면서 노을이 참 아름답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바쁜 걸음을 옮겨 봅니다.

서문에서 내려와 정족산 사고옆을 지나 내려오면 약사전과 대웅전앞에 등이 한가득 달려있지요.

이곳을 지나 동문쪽으로 바로 향해 봅니다.

바로 양헌수 승전비가 있는곳이예요. 지난번에 왔을때 못들러봐서 내내 아쉬웠던, 그래서 다시 전등사를 찾게된 그 목적지 말입니다.

승전비는 잘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개화기에 선진대국이던 프랑스를 맞아서 물리쳤다는 양헌수 승전비, 그의 기개, 이곳을 호령했을 그 때를 잠시 생각해 봅니다.

성을 지킬 당시의 360여명의 기록이 탑뒤에 새겨져 있다고 해요.

자, 이제 만족합니다. 승전비를 보고나서 바로 아에 있는 동문, 동문으로 내려가다 보니,,,,아차차~~ 나 남문쪽에서 들어왔지!

그쪽에 차량이 있으니 그리 내려가야 하는데, 다시 동문으로 들어가서 남문쪽으로 내려옵니다. 남문과 동문은 아주 가까운 지근거리 입니다.

이제 전등사 여행을 마무리 하는듯한 깔끔한 마음이 드네요. 일주일 내내 찜찜 했거든요.

전등사 가면 양헌수 승전비를 꼭 보고 오는게 예ㅡ의.

그것이 이나라를 위해 싸웠던 조상님들을 기리는 마음 아닐까요? 좋은 여행 마무리 해서 기뻤습니다.

 

 

문화재 구역 전등사 입장료

어른 3000원

청소년 2000원

초등학생 1000원

노인(경로) 65세이상 신분증 제시 면제

 

삼랑성

 사적 제 130호

 소재지: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산 41

일명 정족산성이라고도 한다. 성을 쌓은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단군이 세 아들에게 성을 쌓게 하고 이름을 삼랑성이라 했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보인다. 처음에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는데 삼국시대에 이르러 그 위에 막돌을 맞추어가며 쌓았고 성체 안에는 막돌을 채운 튼튼한 석성으로 축조되었으며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보강되었다. 선안에는 전등사는 물론 고려시대에는 가궐, 조선시대에는 사고와 선원보각이 있었다. 병인양요 때(1866)양헌수 장군이 프랑스군을 물리쳐 이곳에 보관된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족보인 <선원보>를 지켰다. 1976년에 남문인 종해루를 원형대로 복원했다.

 

 

1976년 복원된 종해루

남문

 

앞주에 갔을땐 아직 연한 연두빛이 많이 돌던 숲, 싱그럽다.

 

부처님 탄신일 전에 갔을때 아직 등을 달고 있어서 사다리도 보이고 그랬다.

 

 

정족산 삼랑산성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사고인 장사각과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던 선원보각이 있던 곳이다. 조선은 초기부터 <조선왕조실록>을 춘추관, 충주, 성주, 전주 등 네 곳에 보관하였다. 임진왜란 때 유일본으로 남은 전주사고본이 묘향산 사고로 옮겼다. 다시 마니산 사고를 거쳐 현종 1년(1660)이곳으로 옮기고 오른편에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는 선원보각을 함께 지었다. 1931년에 간행된 <조선고적도보>에 이 사고의 사진이 수록된 것으로 보아 이후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실록은 1910년 국권침탈 이후 서울로 옮겨졌고 지금은 서울 대학교 규장각에서 보존, 관리하고 있다. 1998년 두 건물을 복원 후 옛 현판 '장사각'과 '선원보각'을 다시 달았다.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 67호

 

조선의 4대 사고

정족산 사고

태백산 사고

오대산 사고

적상산 사고

 

기록의 나라 조선

 

삼랑산성 서문

복원된 곳이다.

 

서문에서 올라서면 이렇게 숨은 문있는곳이 있다.

뒤로 보이는 강화도 정리된 논밭,(옛날엔 저곳은 모두 바다였다)

 

일주일새 녹음이 많이 짙어졌다.

 

 

이길을 따라 올라가면 서문으로 가는데, 정족산성중 가장 성다운 자태가 잘 남아 있는 곳이다.

 

성벽길을 따라 걷는 맛이 가장좋지만 또 가장 오르막길이기도 하다.

 

남문에서 올라오면 서문으로 가는 길, 성벽길이 아름답다.

 

 

서문, 박찾사 카페의 일행분이 서문을 촬영하고 있다.

 

 

부처님 오신날 지나서 가니 이제 사다리도 다 치워져 정리된 등, 대웅전앞에 한가득 등이 달렸다.

 

 

한창 불경을 외시는 스님을 바라보았다.

 

 

양헌수 승전비

 

 

1866년 병인 양요때 양헌수 장군의 승전비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을 물리친 양헌수 장군의 공적을 기리는

 비로 앞면에는 "순무천총양공헌수승전비"라고

새겨져 있다. 양헌수 장군은 헌종 14년(1848년)무과에 급제한 후

벼슬을 지내다가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을 물리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승전비에는 양헌수를 비롯한 367명이 프랑스 군대를 맞아 활약한 당시의

 상활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크기는 전체높이가 181cm, 비신의 높이가 163cm, 두께가 27cm이다.

 

동문

 

동문밖의 모습

 

posted by 산위의 풍경
2012. 2. 3. 06:31 산 그리고 사람

부산의 자랑, 부산인의 자긍심.
부산엔 금정산, 장산, 승학산, 백운산,백양산, 달음산, 봉래산,황령산,일광산,철마산, 아홉산,봉대산 등등
산들이 제법 많다. 그중 가장 부산을 대표 한다면 금정산이 될 것 같다.
전국의 많은 산꾼들이 찾기도 하고 당연히 부산 사람들의 건강챙기기의 터전이다.
금정산님과 같이 걸어본 금정산,
매번 오를때마다 느끼지만 크기도 크기지만 오르는 오름길도 어쩌면 그리 많을까?
금정산님의 말씀에 의하면 백여개가 넘는 길이 있다고 하신다.
이번엔 만덕에서 올라가는 들머리길로 올라본다.
사투리로 언덕을 산만덕~이라고도 하는데, 그야말로 만덕에서 오르는길은 산만덕 소리가 절로 나온다.
경사가 급하기도 하거니와 길기도 하다.
산에 오르기전에 들머리 까지 오르는데 지칠지경이다. 엄살이 좀 심하지....
상계봉에 오른다음 간단식으로 점심을 하고 또 걷는다. 여근곡을 지나며 금정산님은 이곳이 산성마을의 식수 근원지이라고 전해진다고 말씀해 주셨다. 대륙봉을 지날때가 2시가 넘었다. 산길 걷기 3시간째가 되어간다. 평평 바위를 지나고 수박샘을 지나 제 3망루는 붕괴우려가 있어 차단되어 있다.
부채바위와 무명바위가 멋지게 조망된다.
금정산의 조망중 일품이라 하겠다.
무명 바위는 사실 용호등이라는 이름이 있기도 한데 너무 여러가지 모양이라 이름을 지을수 없어 무명바위라고도 하고,
용과 호랑이가 등을 맞대고 있다고 하여 용호등바위라고도 한다나?
멀리 고당봉이 보이지만 일단 무명봉 아래길 여기서 하산 하기로 한다.
너무 일찍 하산한다 싶은데 하산할때까지로 따지면 일찍이 아니었다.
외대운동장까지 하산하는 길은 또다른 금정산의 모습이다. 완전 돌들의 전시장이라고 할까?
외대운동장부터 금정산 둘레길을 따라 걷는다. 온천장 지하철역까지 거의 일곱시간을 오르락 내리락 걸었다.
산을 잘 아시는 금정산님과 걸으니 마음이 편해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줄 모르게 편안히 걸은 것 같다.늘 산을 잘 모르는 풍경이 데리고 다니시느라 고생많으신 금정산님께 감사 할 따름이다.
오늘도 행복 산행해서 기뻤던 하루 너무 마무리를 잘 한것 같아 기쁨이 두배다.


    사진 담고 계신 금정산님

 

   여근바위

   평평바위

   산행중 만난 멋진 소나무를 보고 계신 금정산님

   나비바위
   무명바위를 조망하는 금정산님

   금정산성길이 이어진다.

   부채바위



posted by 산위의 풍경
2009. 8. 3. 22:14 산 그리고 사람

 

 

 


새벽 일찍 등산 나서는 남편 도시락을 챙겨 주고나니 6시 조금 못되었다.
좀더 있다가 나도 등산을 좀 가야지 싶은 마음에 새벽 댓바람부터 마음이 바빴다.
청소도 좀 해놔야 하고, 손빨랫감은 또 손빨래대로 해야하고....
혼자서 아침을 먹고 치웠다.
일요일이라고 만판 늦잠자는 아들애들을 깨우고 싶지 않아서...

8시 30분쯤 길을 나선다.
미남 로타리 위에서 만나기로 한 지인들과 같이 걷는다.
금정산으로 올라서는 길이 아! 또 이런길도 있구나 싶다.
금정산이 크긴 크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든다. 참으로 길도 갈래 갈래 많기도 하다.
석불사 일명, 병풍사를 들러 정말 불자의 세계로 빠지듯 금정산 한 모퉁이 얌전히 자리한 조용한 산사는 오래묵은
이무기처럼 말없이 금정산을 보듬는다. 아니 금정산이 병풍사를 보듬은거지..
능선으로 올라서니 시원한 바람에 마음도 상쾌 발랄하다.
앞으로 상계봉이 지척으로 보이는 장소에서 한장 추억을 담고, 여유롭게 앉아 커피도 마시고 복숭아 한잎 크게 베어물고
아작아작 씹는다. 향기롭다.
남문쪽으로 향하다가 산악회 지인들을 또 만났다.
반가운분들 ~ 잠시 쉬며 이야기를 나눈다.  같이 점심을 먹게 돼서 남문아래 음식점 한곳에 찾아 들었다.
오리구이가 참 맛있기도 하지만  좋은 분들과 자리한 곳이라서  마음이 편한가보다.
배부르게 점심까지 먹고 다시 왔던길을 돌아 남문쪽으로 향하던 다시 왼쪽 능선으로 올라선다.
길을 놓칠세라 열심히 따라 걸었다.
아~ 금정산에도 이런 계곡이 다 있네 !!
감탄을 하며 물소리 조잘 거리는 곳으로 내려서 손도 담가 보았다.
사직동 쪽으로 내려오늘 길이다.
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고 항상 금정산 하면 바글거리던 인파에 몸살을 알았는데....조용한 산길 호젓하게 걷고 나니 행복가득 미소를 품는다.
posted by 산위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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