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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의 풍경
산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아픔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블로그기자단 기장군홍보단 기장군민필진 한국방송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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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기수원지는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식수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요즘은 일반인들에게 개방된 곳이어서 많은 시민들이 찾는 곳이예요.

쭉쭉 뻗은 나무들이 시원스레 자리한 법기수원지는  산책하기 좋은 곳이지요.

비가 온 다음 날, 시원한 곳을 찾고 싶어 친구에게 연락을 했지요.

시간이 어떤지 물어보고 같이 법기수원지에 갔다가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어요.

전에 남편과 왔을때도, 그때 참 좋은 기억이 있던 곳입니다.

남편은 출근한 시간이니,

친구랑 같이 느릿 느릿 걸으니 그거또한 즐거운일입니다.

오랫만에 와 보니 위쪽에 전망대가 생겨있네요.

데크 계단을 따라 오르니 숲길이 예쁘게 나타나네요.

숲길은 비온뒤라 후끈한 습기가 올라오는데, 다행히 살짝 살짝 바람이 불어주어 조금 낫네요.

전망대에서 잠깐 쉬고 내려섭니다.

아래로 보여지는 나무들이 시원해서 또 감탄해 봅니다.

올때마다 이어지는 감탄은 역시 숲.

여기 올때마다 보이는 강우규 의사의 항일운동 사건에 대해 적힌 안내문.

꼭 한번 읽고 간다.

65세의 나이에도 항일을 위해 사이토마코토에게 폭탄을 던졌던 강우규의사.

우리가 이땅에 평화롭게 살게 하기 위해 온몸을 사르신 어르신들, 참 감사합니다.

친구랑 점심먹으러 슈우웅~~ 산책하고 나서 먹으니 점심도 꿀맛일듯~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여전한 법기수원지의 반송, 나무가 참말로 예쁩니다.

 

깊은수심주의 수영금지 -양산 소방서장

 

원정윤군생

'깨끟난 물은 많은 생명체를 윤택하게 한다"는 말이다

일제 강점기 시기(1910~1945)에 조선총독부 총독을 지낸 사이토 마코토의 글씨이며 왼편의 세로로 새겨진 자작 재등실은 글ㅆㄴ이인 사이토 마코토의 이름이다.

자작은 작위 명이며 사이토 마코토는 1925년도에 일본왕실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았다. 이글은 1932년 법기수원지 댐 완공 시에 석각한 글이다.

강우규 의사 항일의거 사건

법기수원지 댐에 '원정윤군생'이라는 기념 글을 남긴 사이토 마코토에게 폭탄을 투척한 사건이다. 이름하여 '강우규 의사 항일의거 사건'이다. 3˘1운동이 일어나  그 해

1919년 제3대 조선총독 부임을 위해 사이토 마코토 일행이 9월2일 오후 5시 남대문역(현 서울역)에 도착하였다. 환영행사를 마치고 막 관저로 떠나는 사이토 마코토의 마차를 향해 강우규 선생은 민족의 분노와 독립의 염원이 담긴 폭탄을 힘껏 던졌으나 사이토 마코토는 죽지 않았다. 부상자 중에는 총독부 정무총감과 육군소장, 미국 뉴욕시장의 딸 등이 포함되었다. 65세 노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던진 이 한 방의 폭탄은 우리민족의 독립의지를 다시 한 번 세계만방에 알리게 했다.

거사 15일 뒤 9월 17일 강우규선생은 가희동 하숙집에서 일제의 앞잡이 한국인 순사 김태석에게 붙잡혔다. 이듬해 서대문 형무소에서 사형을 다하였는데 순국 직전 "단두대 위에도 봄바람은 있는데, 몸은 있어도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상이 없으리오"라는 사세시를 남겼다. 이 사건 가담자로 강우규 외 5명(최자남, 허형, 오태영, 장익규, 한인곤)이 더 있었으며 장익규, 한인곤은 심한 고문으로 옥사하였다. 지금 역사의 현장인 서울역에 강우규 항일의거비가 있다.

강우규(1855~1920)평안남도 덕천 출생, 독립운동가 1917년 광동학교 설립, 1919년 대한국민노인동맹단, 요하현지부장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법기수원지 전망대에서 수원지를 바라보는 친구.

비온뒤 깔끔한 공기를 마시며 여유로운 산책.

posted by 산위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