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산위의 풍경
산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아픔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블로그기자단 기장군홍보단 기장군민필진 한국방송통신대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Notice

Recent Post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Archive

꿈에 부풀어 시작했던 2016년도 이제 몇시간 남지 않았습니다.

어느새~라는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2017년도 꿈을 가지고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한국방송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 할때만해도 나이들어 뭐하러 공부하냐고

핀잔만 주던 주변인들이 이제 4학년이 되니 금방이라면서

격려를 많이 해주시네요.

2017년 한해 남은 공부도 마저 열심히 하고요~

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건강도 잘 챙가족겨야 하겠고, 가족들 건강도 잘 보살필 수 있도록

식재료등도 잘 챙겨서 먹여야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이웃님들께 감사 인사도 하고 말입니다.

올 한해도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한 새해맞이 하시길 바랍니다.

기쁜 새해 만드시길요~

오늘은 제주에 갔을때 붉은빛 노을에 너무 감동해서(물론 혼자하는 감동이겠지만요~)

어릴때는 노을을 거의 매일 볼 수 있었는데,

결혼해서는 노을을 거의 못보았습니다.

아련하게 항상 그리움이 있었어요.

아 !

 노을 보고 싶다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요. 어디를 찾아가야지만 볼 수 있는 저녁노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제주여행을 갔을때, 저녁노을을 보려는건 아니었는데, 김녕성세기 해변에서 숙소로 넘어가던 길이었는데,

마침 해가 지는 시간이라 하늘이 온통 붉은빛으로 물드는 겁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한라산과 함께 보이는 저녁노을빛, 석양에 물든 하늘은 너무 아름다웠거든요.

그래! 내가 저런게 보고 싶었다고~ 하면서 기뻐하니까, 남편도 멋지다고 합니다.

운전하느라 남편은  잘 못볼뻔했지만, 그래도 정면에서 노을이지고 있어서 운전하면서도

같이 볼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지나가면서 차에서 보는 노을, 이런 경험 제겐 흔하지 않은 경험이라 신선했습니다.

지는 2016년 마무리 잘 하시고요~ 이웃님들, 2017년도 잘 부탁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posted by 산위의 풍경

 

위미동백군락지

위미항을 찾아가다가 만난 동백군락지는 겨울여행의 환상적인 즐거움을 주는 곳이었습니다.

충혼비가 앞에 즐비하던데 6.25에 참전했던분들을 위한 충혼비라고 합니다.

잠시 마음으로라도 감사의 묵념을 해야할것 같습니다.

위미 동백군락지는 개인 주택이기때문에  안에 들어가려면 1천원의 입장료가 있던데요, 대신에 귤을 맘껏 드시라고 하시더군요

전날 비가 오면서 꽃이 많이 지고 새로 핀 꽃만 남아서 아주 예쁘다고 주인께서 말씀해 주셨어요.

그런데 입장료 일천원뿐인데도 '뭐야 입장료 천원이야?'하면서 그냥 들어가는 얌체 입장객들도 있었습니다.

개인의 주택에 들어가면서 예의가 아닌것 같아요.

아름다운꽃을 보는데, 그만한 값어치는 충분한데 말입니다.

대신에 귤을 맘껏드시니 사실 입장료치고는 너무나 저렴합니다.

마음고운 그 주인 덕분에 이겨울 만난 분홍 동백의 만개한 모습은 비바람친 제주 여행날

뜻하지 않은 보물같은 여행이었습니다.

여기서 길건너 동백밭도 보이던데 귤밭 둘레에 동백나무가 심겨진것인지, 입구를 찾지못해서 건너편 동백 군락지는

통과했습니다.

많은 청춘들이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꽃잎이 진 모습도 아름다웠습니다.

원래의 동백은 홑잎이지만 이곳의 동백은 거의다 개량종으로 분홍동백이었습니다.

그래서 꽃잎 한잎 한잎 휘날리는거지요.

재래종 동백은 수분이 이뤄지면 꽃송이 자체가 똑 떨어지거든요.

아름다운 동백, 위미 동백군락지에서 실컷봐서 원래 가려던 카멜리아힐은 생략해 버렸네요.

렌터카 네비게이션이 업그레이드를 안했는지 위미 동백군락지 하니 나타나지를 않아서 남원 큰엉 해안 경승지를 치고 갔답니다.

가다보니 길가에 두둥 나타나는 꽃~ 눈이 즐겁고 마음도 활짝 개이는 여행이었답니다.

 

 

 

 

posted by 산위의 풍경

 

도산서원의 전신은 도산서당이라고 합니다.

도산서당은 퇴계선생이 직접 설계하시고 4년동안 지으면서 꼭 설계대로 짓도록 외출시에는 편지로서 감독하면서

정성을 들여 지으신 서당이라고 합니다.

3칸짜리 집으로 마루를 크게 한 한옥형태입니다.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올리고 마루쪽엔 눈썹지붕을 따로 설치해 비바람을 막았습니다.

처마는 짧게해서 빛이 잘들게 하고 두칸은 방과 부엌으로 하고 한칸은 넓은 마루 형태를 가진 간결하고 단아한 집으로 만드신거지요.

방 부엌, 마당, 창호의 크기와 위치는 겸손하면서도 정중한 분위기를 자아내도록 설계 하셨대요.

그렇게 정성을 들인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치셨지요.

그후 도산서원이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일천원권에 새겨진 퇴계 이황선생, 겸재 정선은 <계상정거도>에서 퇴계선생의 조용한 삼을 화폭에 담았다고 합니다.

,계상정거도>는 도산서당이 자리잡은 자연과의 조화로운 위치를 아주 잘 말해 준대요. 천원짜리의 그림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퇴계 이황 ( 1501~1570)은 줄곧 이이와 비교되는데요, 바로 (이황)성학십도와(이이) 성학집요. 성리학의 커다란 줄기이기 때문이지요.

도산서원은 조선시대 서원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합니다.

앞마당의 커다란 왕버들은 정말 이곳에 자리한 세월을 말해주는 좋은 증거이지요.

영남학파로서의 기둥으로 많은 제자를 이끌었던 퇴계선생이지요.

도산서원은 그렇게 화려해 보이지 않는것이 특징같아요.

자연 그대로의 모습처럼 점점 위쪽으로 자리하도록 설계되어 있더군요.

한번쯤 가볼만한 곳이지요. 도산서원 오래전에 다녀오고 이제서 이렇게 남기게 되네요.

 

 

 

 

 

 

농운정사

제자들이 공부하던 기숙사이다. 선생께서 제자들에게 공부에 열중하기를

권장하는 뜻에서 한자의 工자 보양으로 짓도록 하였따.

공부하면 동편 마루를 '시습제'라 하였고, 휴식하던 서편 마루를 '관란헌'이라 하였다.

 

도산서당

 

 

 

 

 

전교당

도산 서원의 중심 건물이지요.

보물 210호

 

 

 

 

 

정우당

퇴계선생은 꽃 중의 군자라는 연꽃을 심어 정우당이라 하였다. 연꽃은 진흙탕에 살면서도 몸을 더럽히지 아니하고 속은 ㅣ고 즐기는 곧아 남을 의지하지 않으며 향기는 멀수록 맑다.

 

 

도산 서당

퇴계 선생께서 4년에 걸쳐 지으신 건물로 몸소 거처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거처하시던 방은 '완락재'라 하였고 마루는 '암서헌'이라 하였다.

 

도산서원 상덕사 및 정문

 

 

 

심경부주

 

성학십도, 퇴계 이황선생께서 쓰셨어요.

 

성학십도

 

성리학의 커다란 줄기 두분을 따진다면 이이와 이황선생이겠지요?

 

도산십이곡

 

혼천의

 

열정, 식수로 사용하던 우물.

 

도산서당의 식수로 사용하던 우물로 역경의 정괘'정렬한천식'에서 의미를 취하였다. 우물은 마음이 떠나도 옮겨가지도 못하고, 퍼내어도 줄지 않는다.

이처럼 무궁한 지식의 샘물을 두레박으로 하나하나 퍼내어 마시듯 자신의 부단한 노력으로 심신을 수양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posted by 산위의 풍경

다산 기념관

이용시간 9:00~18:00(입장은 17:30)

 

 

휴관일 : 매주 월요일

관람요금

어른 개인 2000원, 단체 (20명이상 ) 1000원

청소년 개인 1000원, 단체 500원

어린이 500원, 단체 300원

전남 강진군 도암면 다산로 766-20

 

다산 기념관은 다산 정약용의 출생부터 성장, 관직생활과 유배생활, 해배 이후의 저술활동등 다산의 삶을 시기별로 나누어 전시되어 있습니다.

 

다산 기념관에 안내장에 쓰여진대로 다산 정약용의 약력을 옮겨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산(茶山)정약용

1762(영조38)~1836(헌종 2)

다산은 1762년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진주목사를 지낸 아버지 정재원과 어머니 해남 윤씨 사이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4세때 전자문을 배우고 10세때 자작 시집을 낼 만큼 총명하였다.

1777년 성호 이익의 저서를 접하고 실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따.

1783년 진사과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때 정조의 눈에 띄어 총애를 받게 된다. 1789년 문과에 급제한 후 정조의 총애 아래 규장각 초계문신을 거쳐 동부승지, 병조참의, 우부승지 등의 벼슬을 지냈으며, 배다리, 수원화성 거중기 설계 등 기술관료의 면모도 보여주었다. 경기도 암행어사 시절에는 백성들의 고통을 목격하고 목긴관의 의무를 절실히 깨닫게 된다.

정조 사후 천주고 사건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유배를 오게된다. 강진에서의 18년 유배생활을 학문연구와 저술활동으로 승화시켜 500여권의 방대한 저술을 이루게 된다.

해배 이후 고향으로 돌아간 다산은 자신의 저작을 총정리한 여유당집을 완성하고 1836년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자택인 여유당 뒷산에 묻혔다. 1910년 문도 文度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와서 다산초당에 머물며 집필에 집중했던 만큼 많은 업적의 서적과, 편지, 하피첩, 화성을 지을때 사용되던 거중기와 화성의궤등 정약용 관련 자료를 만나 볼 수 있는곳이 다산 기념관입니다.

정조를 만나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터 이지만

그것은 또다른 약점이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정조와 대립을 이루던 정순왕후 바로 영조의 계비에게는 눈엣가시가 되었을겁니다.

정조가 승하한후 11세의 어린나이의 왕위에 오른 순조.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이 시작되며 어린왕 순조는 아무 힘이 없었나봅니다.

정조의 업적이 거의 지워지다시피 하면서 정약용의 집안도 이 세월의 풍파에 휩쓸리게 되면서

유배의 길로 접어 듭니다.

그냥 좌절하고 주저 앉았다면 우리는 지금 정약용의 저서, 목민심서나 흠흠신서를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어질고 백성을 사랑했던 개혁의 왕 정조를 만나서

실학을 꿈꾸고 실천하던 선비 정약용의 나래를 펼치는 세상이었을것 같습니다.

10년 계획의 화성을 2년 8개월만에 완성했다는 것은 그만큼  과학적 설계와 실용학으로 실천했기 때문일것 같습니다.

화성행궁으로 행차시에 배를 연결해 만들었떤 배다리 아시죠?

어마어마한 왕가의 행렬을 백성들은 굉장히 우러러 보았을것 같습니다.

정조대왕은 화성으로 옮기어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양위를 할 생각이었다고 하는데,....

정조 대왕이 조금더 생존했었더라면 세상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는데요,

아무튼 정약용의 꿈과 이상이 담긴 서적으로 우리곁에 남겨져 있습니다.

다산 기념관, 강진 여행에 천천히 둘러 보시길 바래요.

 

 

 

 

posted by 산위의 풍경

그해 여름은 무더웠네

데일듯이 뜨겁던 태양

숨통을 조이듯,

인정사정 볼것없이

녹아내리고 타들어가던

여름날

그해 여름은 무더웠네.

끝남이 없을듯 한

지리하고 긴 여름은

익힐듯 뜨겁게 뜨겁게

마주하고 있었네

----------여름을 보내고서

 

지난 여름날 그 무더운 여름날 제주여행을 신나게 갔었지요.

남편과 다시한번 제주를 찾았을때,

카멜리아 힐을 가게 되었는데, 드넓은 카멜리아힐  정원을

그 초록의 정원도 더위에 지쳐 걷기 싫을만큼,

그 예쁜 정원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만큼 무더운 8월에.....

그렇게 떠났었지요.

그런데 필자는 뭘하다가 이렇게 추운 겨울에

여름 사진을 꺼내들고 희덕 대고 있을까요?

ㅋㅋㅋ

다음주에 다시 제주여행을 떠납니다.

사진을 뒤적이다가 카멜리아 힐 생각이 난거지요.

더웠지만 아름다웠던,,,,,아름다웠던 생각이 이제야 나는,,, 그땐 더위에 너무 지쳤었나봐요.ㅋ

카멜리아 힐이 원래 동백언덕....ㅎㅎ 그쯤이잖아요?

동백이 펴야 아름다운곳을 여름에 찾아가서 초록잎만 왕창 보고 온거지요.

이번 겨울 여행에 다시 가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카멜리아 힐에는 동백꽃 종류가 무척 많습니다.

원래 우리나라 동백은 홑 동백인데요, 이게 수정만 되면 바로 꽃이 떨어져 버리거든요.

그럼 꽃이 안 떨어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수정이 않되게 해야 오래 가겠지요?

그래서 말입니다.

개량종 동백은 겹 동백이면서 꽃술을 없앤것이 많이 있지요.

그래야 오래오래 꽃을 볼 수 있으니까요.좀 잔인한것 같지 않습니까?

우리가 보는 아름다움은 이런  역 자연의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꽃은 떨어지는 것인데요.......

아무튼 카멜리아 힐의 동백꽃을 제대로 못봐서 아쉬웠던 여행이었다는 말씀 이었습니다. ^^

 

 

 

 

 

 

 

 

posted by 산위의 풍경
prev 1 2 3 next